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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김현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53
조회
340

김현진/ 자유기고가


오원춘 사건은 물론 끔찍하고 무섭다. 게다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가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다 변을 당한 젊은 비정규직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무능력이 한참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은 한국의 치안 수준은 세계적인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는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으나 범죄자 검거율이 높다는 통계를 봤으므로 그 말이 맞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검거율에 기여하는 것은 CCTV 설치나 전 국민이 필수적으로 지문을 국가에 등록해야 하는, 국민을 감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발상에 큰 몫이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가 안전하다고 좋아하기에는 찜찜한 점이다. 최근 이자스민씨가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는 등 이른바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대부분 혐오로 불탄다. 다문화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단문화일까? 주부들이 주로 방문하는 대형 커뮤니티에는 정부의 다문화 정책 반대에 서명해 달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도 실업 때문에 고통받는데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이 일할 자리를 다 빼앗아 버린다는 주장이 가장 흔하고 그 다음으로는 안산이나 가리봉 등 거리 분위기를 외국인들이 다 망친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기 전에는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신고제라니 일하고 싶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모양새는 아닌 셈이다. 즉, 외국인이 꾸역꾸역 입국해서 일자리를 선점해 일하고 싶은 한국인에게서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일할 내국인이 없으니 이만큼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라고 국가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내가 태어나서 먹어 본 것 중 가장 황홀한 중국음식은 가리봉동 <미미식당>의 음식이었다. 한국어가 씌어 있는 메뉴판도 없었다. 어쨌거나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면서 이런 장점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이런 말을 할라치면 너나, 네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이 바로 돌아온다. 물론 내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내 인생의 상당 부분은 망가질 것이고, 아마 나는 가해자를 평생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 혹은 조선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라는 종을 미워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마음 먹으면 여자 하나 죽이는 건 쉬운 사회다. 특히 보호자 없는 젊은 여성 하나 죽이는 건 쉽다. 그러니 <살인의 추억> 같은 사건이 아직 미제로 남았을 것이다. 여자 뿐 아니라 아이도 그렇다. 한국 사회가 더욱 강퍅해지면서 힘센 놈이 마음만 먹으면 저보다 약한 것 짓밟는 것이 점점 쉬워진다. 사회의 정글화가 심화된다. 얼마 전에도 성폭행당한 후 가해자를 신고했다가 신원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아 앙심을 품은 가해자에게 피해 여성이 결국 살해당했다. 남자친구의 힘을 빌려 염산 테러를 한 사건도 그렇다. 십대들도 토막 살인 후 땅에 묻었다. 남자와 여자 구도로 갈라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부자와 빈자뿐 아니라 강자와 약자간의 거리 역시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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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안산 중앙역 앞에 서 있는 수코초(인도네시아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젖어들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한국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이런 사회일수록 증오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은 상식이다. 오원춘은 경제적으로는 약자였지만 완력으로는 강자였으므로, 그가 광적인 증오를 표출하고자 했을 때 노동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 여성은 간단히 희생되었다. 경찰은 그 여성을 구해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의 경우에도 통계상 살해당한 여성의 대다수가 현재, 혹은 과거의 파트너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한다.

점점 약한 사람이 희생당하기 쉬워지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려면, 밟기 쉬워지는 나라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려면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해 처음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주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대신에 조선족이 문제야! 중국 놈이 문제야! 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쉽고 간단하다. 오원춘 사건은 그가 미친놈이었기 때문이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한국인이었다고 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습게도, 외국인 노동자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지만 영어 학원의 백인 강사들은 무섭지 않다. 그들도 외국인 노동자가 틀림없지만, 젊은 층이 주로 하는 ‘랭귀지 익스체인지’에서 백인들은 어떤 동네에서 왔든 인기 만점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도 프랑스인 제빵사가 손수 빵을 굽는다고 소문이 난 서래마을은 누구나 가고 싶어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영어권의 백인이라면 설사 그가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들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청년이 잔인하게 살해된 적이 있는 이태원 역시 여전히 인기다. 서래마을과 이태원은 좋지만 가리봉과 안산은 싫은 것이다.

최근 어느 광역시를 방문했다가 침체되어가는 상가를 살리기 위한 시의 계획이 실린 팸플릿을 읽었다. ‘영어마을’을 모델로 한 것 같은 ‘영어상점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카페나 식당, 옷이나 액세서리 가게 등 여러 가지 상점을 유치하되 모든 점원을 원어민으로 고용하겠다는 내용이 그 팸플릿에서 가장 큰 글씨로 씌어 있었다. 아마 그들이 말하는 영어에 능한 원어민이란, 절대로 영어를 모국어로 쓴 필리핀은 아닐 것이다.

아까 가 본 대형 커뮤니티에서 어떤 사람들은 요즘 조선족 가정부들이 서로 담합해서 휴일을 요구하고 임금을 올리자고 한다며 무조건 가정부 여권을 주인이 틀어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는 사장들이 풀어 줘서 그렇다, 무섭게 할 때는 찍 소리도 못하던 것들이 인권센터(아마 그들 생각에 인권연대 같은 곳은 아마 '주적'일 것이다) 같은 인권팔이(그들의 표현이다)가 끼면서 제 세상인 듯 날뛴다는 의견도 흔했다. 결국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구나. 불과 몇십 년 전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중동 지역에 노동자로 떠났던 한국인들도 외국인 노동자였건만 그새 우리나라가 참 잘살게 되긴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게 꼭 좋은 일 같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