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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가족 VS 가.족. (김현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9-11 11:23
조회
52


김현진/ 회원 칼럼니스트


 가족의 이야기는 참 많다. 그 내용은 따뜻하며 결말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런데 나는 가족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왜냐하면 가족 구성원 어느 한 명의 희생이 아름답게 그려지거나, 말썽만 피우다가 집 나간 자식이 돌아와 가족이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됐다는 이야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족은 ‘정상 가족’이어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은 비정상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의 이야기 외에도 복지 사각지대, 가정 폭력 문제, 노령화 문제 등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것들을 비정상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감독은 비정상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가족이 ‘혈연’에 의한 관계로 구성됐을 경우에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혈연에 의해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친권’이라는 희한한 권리가 있고, 그 친권은 자녀를 가난과 폭력 속에 가두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에, 가족을 늘 두들겨 패는 아버지라도 그가 친권자라면 미성년 자녀는 친권자와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성년 자녀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다. 이런 현상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어떠한 ‘개인’인지와 상관없이 ‘그래도 아버지인데 참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로 합리화되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가족은 항상 즐거운 일을 함께해야 하고, 여행도 함께 다녀야 하며,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어야 한다. 가끔 가족에게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가족이니까, 그냥 참는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단위?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최소한의 사회? 혈연관계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혈연’이라는 말만큼 추상적인 말이 있을까? 피가 섞인 구성원으로만 가족은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미 여기서 정상과 비정상 가족이 구분되고 차별이 시작되지 않는가?


 비정상 가족인 어느 가족도, 가족으로 산다. 하지만 [어느 가족]에는 누구 하나 온전한 개인이 없다. 할머니를 비롯해 할머니의 연금에 빌붙어 사는 성인 남녀, 두 손을 딱딱 맞대다가 슬그머니 물건을 훔치는 아이. 4번 손님에게 유사 성행위를 하며 돈을 버는 소녀. 겉으로는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가족에게, 추운 겨울에 쫓겨나 있다가 비정상 가족의 가족이 된 쥬리.


 유사 성행위를 정기적으로 하러 오는, 누군가의 가족일지 모르는 4번 손님은 어느 날 소녀에게 옵션으로 무릎베개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소녀는 주절주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4번 손님은 가만히 누워 소리 없이, 운.다. 가족과 터놓고 하면 좋을 일들을 돈을 내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가족은 ‘괜한 기대를 하게 되’는 대상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비정상 가족에게 괜한 기대는 처음부터 접고, 그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온기로 사는지 모른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온기는 느낄 수 있는 비정상 가족.


 혈연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마음의 복지가 아닐까 한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복지가 너무나 당연한 것인 만큼, 의식주를 해결한 개인들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복지도 중요하다. 이는 어디에서 올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가장 원활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가족이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이건 아마도 가족을 한 덩어리로만 보는 우리 사회의 습관 때문일 것이다. 가족을 이루는 개인들이 자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에 묻히니 가족이 건강할 리 있겠는가? 아무리 혈연관계라도 말이다. [어느 가족]은 위태로운 개인들이 모여 만든 비정상 가족을 보여주며, ‘도대체 가족이 뭐야?’라고 묻고 있다. 부모에게 늘 매를 맞으며 추운 겨울에 복도에 쫓겨 나있던 쥬리가 왜 그 움막 같은 집과 가족, 늘 물건을 훔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오빠를 그리워했는지. 다섯 살 여자아이의 최소한의 존엄성도 지켜주지 못한 정상가족은 그저 덧없다.


 영화는 가족은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해, 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있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구성원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여할 수 없다. 나의 삶이지, 내 딸, 내 아들의 삶이 아니다. ‘나’ 없이 무슨 엄마, 아빠, 딸, 아들이 될 수 있을까? 엄마, 아빠, 딸, 아들은 역할일 뿐인데.


 우리 가족은 이번 여름에 모두 흩어져 있었다. 이제 그 시간이 끝났다. 솔직히 아쉽다. 엄마가 아닌 나로서 자유롭게 지내는 시간들이 늘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그 시간은 내게 재충전의 시간이었고, 또 영화 [어느 가족]을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즐겁게 지낸 이번 여름, 다시 모인 우리 가족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자기만의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을 함께 하지 않았어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지 못했어도 다시 모인 우리는 가족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로 살다가 가족으로 결합하고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 ‘나’로 살기를 반복하는 가족이다. 그렇게 가족으로 산다.


김현진 : 18년 간 국어교사로 살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어서 직업을 바꾼 철들기 싫은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