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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생에게도 권리는 있다 (김종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0:13
조회
317
김종현/ 청년 칼럼니스트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오늘만 세 번째다. 졸업학기에 접어드니 학교에서 보내주는 문자 메시지가 부쩍 많아졌다. 각종 공지 메시지들이다. 취업특강, 잡 코칭, 국내·외 인턴십, 취업 박람회, 취업 설명회…. 이뿐만이 아니다. 지도교수의 졸업논문 상담, 졸업사정과 진로상담 안내 메시지는 조용한 내 휴대폰을 쉴 새 없이 깨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졸업준비생이자 취업준비생으로서의 정체성을 새삼 깨닫곤 한다. 그래, 나도 졸업을 하긴 하나보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 비판적이지만, 솔직히 나도 학교가 주관하는 취업특강에 종종 참여한다. 졸업 뒤에 먹고 사는 문제는 나에게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강이 끝난 뒤 내 수첩은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이력서 쓰는 법, 매력적인 자기소개서 작성법, 면접의 기술, 요약하자면 ‘잘 뽑히는 기술’이다. 아니, 차라리 철저히 ‘자신을 버리는 기술’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가득 정리된 요령들은 취업 준비생으로서 내가 따라야 할 의무이다. 그 속에 나의 권리는 없다.

노동자의 권리 투쟁을 역사 속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거듭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도, 40년 전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분노했을 뿐 오늘날의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래도 다들 인간답게 사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난해 여름, 지상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는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에게서 전태일을 만났다. 40년 전의 이야기를 오늘날의 현실로 마주하면서 난 당혹스러웠다.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완전한 거짓이었다. 노동자는 여전히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김진숙 위원을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돌아온 것은 경찰의 최루액과 진압봉. 쓰라린 아픔 속에서 흘렸던 눈물엔 동정과 분노, 아픔이 섞여있었다.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전태일은 더 이상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었다. 유성기업 노동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대법원 확정 판결조차 소용이 없었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외로운 싸움은 그 옛날 전태일의 분신과 다름이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취업 프로그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취업이란 나에겐 곧 노동의 시작이다. 하지만 수많은 취업 특강 가운데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노동 기본권은 무엇인지, 노사 교섭은 어떻게 하는지, 부당 노동행위를 당했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기업의 요구와, 그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는지만 강조할 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전태일의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바로 노동권에 대한 교육 없이 취업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 이 같은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대학생 친구를 원했던 전태일이 만약 취업 특강에 참여한 나를 봤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내 앞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야!”라고 고함을 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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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5번 김소연 후보(왼쪽)는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을 지냈고,
기호 7번 김순자 후보(오른쪽)는 후보 등록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울산과학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얼마 전, 유력 대선 주자에서 사퇴한 안철수 후보의 거취에 여전히 모두의 관심이 쏠려있는 동안 두 명의 노동자가 18대 대선 후보등록을 마쳤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이끌었던 김소연 전 노조위원장과 진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이다. 노동권조차 아직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혹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집권 여당과 야당의 대선 후보보다는 이 두 명의 노동자가 아닐까?

그러나 우리의 외면 속에서 두 노동자 후보는 험난한 선거전을 치루고 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현실에서 취업 준비생의 권리를 말하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외쳐본다.

“취업 준비생에게도 권리는 있다, 취업 준비생의 권리를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