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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의 거리 (박정훈)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02
조회
307

박정훈/ 청년 칼럼니스트



지난 9월7일, 서울 청계천에서는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동성 결혼식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건만 역시나 그날도 보수 기독교인들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결혼식 시작 전부터 한 기독교단체 소속 교인 몇몇이 예배를 드린다며 무대 설치를 방해했다. 앞서 이들은 경찰에 이 결혼식의 금지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는 따로 있었다. 한 기독교인이 결혼식장에 난입해 인분과 된장을 섞은 오물을 투척한 것이다.

자신을 교회 장로라고 소개한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분과 된장을 섞어 직접 먹어보고 가져왔다. 인분과 된장을 섞은 게 바로 동성애의 현실이다. 성경을 봐라. 내 말이 거짓말인가"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한 일”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없다고도 했다.

진보든 보수든,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면 맹신과 맹종으로 비치고, 타자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 기독교 내에서도 성경에 대한 해석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뉜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동성애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낸다. 동성애와 관련된 이슈가 있을 때면 여지없이 위의 결혼식에서처럼 동성애를 반대하는 직접 행동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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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의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와 결혼식장에 난입해 오물을 투척한 기독교인
사진 출처 - 뉴시스


 

사실 이런 행동에는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공리’를 사회 일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해서는 상대를 자신의 생각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기독교인에게서 받았던 것과 유사한 느낌을 최근 김조광수 감독에게서도 받는다. 얼마 전 김조광수 감독이 SNS에 올린 글에서도 그렇다.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 이혼, 낙태한 사람에게 자비(mercy)를 촉구한 것은 가톨릭 교황으로는 진일보한 발언임에 틀림없지만 여전히 '동성애, 이혼, 낙태'를 죄로 규정한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교황청이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사면한 게 1992년이다. 가톨릭 교회가 가장 늦게 변한다. 가톨릭이 '동성애, 이혼, 낙태'를 언제쯤 '죄로부터 사면'을 할지 궁금하다. 내가 죽기 전이길 바란다.”

SNS에 올렸으니 불특정 다수가 봤겠으나, 메시지가 겨냥하는 주요 독자는 개신교인 내지 가톨릭 교인이다. 김조광수 감독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권리를 주장하듯이, 보수적인 기독교회들이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는 것도 그들 나름대로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교리가 곧 신앙의 요체인 그들에게 교리가 잘못되었으니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동성애자들에게 동성애가 잘못이니 회개하라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행위라고는 해석되지 않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광신도의 신앙주의를 분석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흔히 이른바 좌파공동체 ‘안’에서 증명 없이 참으로 통하는 것이 ‘밖’에서는 증명해야 할 명제가 된다. 공리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에게 자기들 공동체 내에서나 통하는 얘기를 믿으라고 강권할 때, 사실상 그들은 광신적인 전도자와 똑같은 일을 하는 셈이다.”

사회의 소수자들이 하는 말이라고 해서 광신도의 말과 다르다는 보장은 없다. ‘안’에서는 타당하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밖’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일 수 있다. 기독교인들과의 ‘단절’이 아니라 ‘소통’을 원한다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발전적인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이 다른, 더군다나 상대하기가 버거운 누군가와 대립하고 있을 때에는, 무엇보다도 상대방과 같아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항상 살피고 견책할 필요가 있다.

박정훈씨는 노동과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