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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정신력을 요구하지 말라 (김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03
조회
270

김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었다. 난데없이 엄마가 재미있는 ‘캠프’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캠프파이어를 하고 레크리에이션도 하는 재미있는 곳이라 했다. 그 말에 속아 멋모르고 간 캠프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곳은 바로 ‘해병대 캠프’였던 것이다. 12살의 나이에 언니, 오빠들과 함께 했던 PT체조나 기합 등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교관들은 힘들어하는 캠프 체험자들한테 언제나 이렇게 외쳤다.

“정신력으로 버텨!”

교관들은 언제나 몸의 컨디션 여부와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종용했다. 퇴소식 때가 되자 캠프체험자들은 울면서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겠다며 온 몸에 군기가 바짝 든 채 집으로 돌아갔다. 훗날 필자의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온 필자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네가 너무 어리숙하고 부모님 말도 잘 안 듣고 공부도 열심히 안하니까 거기에 보내봤지. 거기에 다녀오니까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지?”

그 때 참가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해병대 캠프에 보내졌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도 필자는 ‘정신력 싸움’이란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고 3 수험생 때 담임선생님이나 입시학원 선생님한테 “정신력으로 무장한 채 공부하라”는 말도 들었고 심지어 운동회 계주 때도 들었다. 22살이 된 지금, 정신력을 강요하는 이러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면 문득 근현대사 책에서 읽었던 유신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하면 된다”로 유명한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유신시절은 뭐든지 정신력 문제로 결부시키곤 하는 작금의 상황과 상당부분이 연결된다. 박 전 대통령은 국방정신교육원을 설립해 국군 장병들을 훈련시키고 새마을 운동이나 국기강하식, 교련 등을 통하여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을 정신교육 시키고자 하였다. 마치 일제의 파시즘 교육처럼 말이다. 때문에 군인 정신교육을 받은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은 각자의 개성과 의견은 무시된 채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에 매몰되기 쉬운 존재가 됐다.

유신시절의 폐해는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다. 사실상 군대식 정신 교육을 받은 이 시절의 시민들은 오늘날 기성세대가 돼 청소년들에게 나약한 정신력을 운운하며 자신감, 리더십 등을 얻을 것을 요구한다. 마치 필자가 겪었던 병영 캠프 체험처럼 말이다. 그래서 청소년 개개인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학교나 가족들은 입시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정신력으로 버티라며 하루 종일 공부하길 강요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라며 극기 훈련 체험장이나 병영캠프 같은 곳을 보낸다. 그러고는 청소년들에게 이건 모두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주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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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해병대캠프 희생자에게 같은 반 친구들이 보내는 추모 메시지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과연 진정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왜 청소년들은 굳이 정신력 싸움을 해가며 매 순간을 버텨야만 하는가? 왜 청소년들에게 이에 대해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고 기성세대에 의해 강요당하는가?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 하고 즐거운 것, 재밌는 것, 흥미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에게 왜 나약한 정신력을 운운하며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하는지 의문이다.

지난 7월 19일에 문화기획자 탁현민씨가 SNS에 올렸던 글이 생각난다.

“시를 가르치고 음악을 들려주고 그림을 그리게 해도 모자란 시기에 해병대 캠프가 대체 뭐랍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군대 안가거나 몸에 지병이 있어야만 하는데 왜 아이들에게는 해병대 캠프니 군인정신을 가르치려 합니까?”

그렇다. 재밌는 경험도 많이 해보고 음악도 많이 듣고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기에도 모자란 시기에 왜 이렇게 청소년들에게 ‘버티는 것’을 강요하는지. 이러한 현상은 사실상 청소년들을 위한게 아니라 가족, 학교, 더 나아가 사회라는 조직에 청소년들을 묶어두고 쉽게 다루려는 기성세대들의 속편한 마음과 다를 바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쉽게 국가에 종속시키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기성세대들은 더 이상 청소년들을 두고 정신력 무장을 운운해선 안 된다. 대신 청소년들을 더욱 즐겁고 개성을 살려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지난 7월 18일 충남 태안에서 벌어졌던 공주 사대부고 해병대 캠프 사고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김지영씨는 위안부, 쌍용차 노동자 등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