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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가마니처럼 (박보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1:36
조회
256

박보경/ 청년 칼럼니스트



“거기는 치료도 못하고 깁스도 못해요. 당분간 가마니처럼 가만히 집에서 쉬세요.”

쇄골이 욱신거려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경고했다. 23년 평생 자전거 페달 한 번 밟아본 적 없는 주제에 자전거 국토 종주에 도전한 대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넘어지기를 몇 번, 급기야 고개를 내려가다 낭떠러지로 굴렀다. 뼈에 금이 간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이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다치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 사고를 쳤으면 철이 좀 들 법도 했지만, 가마니처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러 사람이 말렸지만 나는 이틀 만에 제주도로 떠났다. 내 하루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내 쇄골은 튼튼하다. 1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며칠 전, 집으로 가는 길. 김해 중심가에 조촐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는 다섯 명.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박근혜 정부 OUT”이라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행인들은 흘깃 쳐다볼 뿐 다들 제 갈 길을 갔다. 초라한 모습.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어디선가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괜히 끼지 말고, 가마니처럼 가만히 쉬세요.’ 끝내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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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참세상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배 안에서 죽어간 아이들,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잔인한 체제, 무능한 정부, 실망스러운 언론…. 세월호 참사를 보며 분노하는 사람들은 많다. 특히 SNS로 보면, 세상은 분노한 사람들로 가득 찬 듯하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정부에 분노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평화로운 침묵을 택했다. 피해자는 한 명도 없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죄송하다고 속삭이는 대통령과, 현실에서는 아무 행동도 않으면서 SNS로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는 얼마나 다를까.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여러모로 그렇게 볼만한 측면이 있지만, 특히 하나를 꼽아보자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만히 있으라’고 주문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답답한 공간에 꼼짝없이 갇혀, 누구를 향하는 건지도 모를 침묵만을 속삭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마니처럼 있다간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내일을 위해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던 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박보경씨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