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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스피치 (김기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49
조회
401

김기림/ 청년 칼럼니스트


친구와 함께 밥 말리의 노래가 흥청대는 거리를 지나는데 빵빵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파파팍! 짝 날카롭고 짜릿한 아픔이 팔에 전해졌다. 흘러내리는 물컹한 액체가 손에 닿았다. 누군가 날계란을 던진 것이다. 지프차를 탄 백인 남성들이 달리며 우릴 향해 소리 질렀다 “헤이 차이니스~ 블라 블라” 그 뒤엔 F를 섞은 심한 욕설이 날아왔다. 뒤이어 또 다시 날계란 세례가 이어졌다. 뉴욕에서 가장 자유분방하다는 이스트 빌리지에서의 일이다. 당시 뉴욕에선 중국인들이 상권을 점령해가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중국인들을 향한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었다.


헤이트 스피치는 다른 것에 편견을 가지고 차별과 공격을 가하는 언어적 폭력 행위다. 폭언에 그치지 않고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증오범죄‘에 속한다. 나와 친구는 뉴욕 거리에서 인종 차별적 폭언과 물리적 공격을 당했고, 공포를 느꼈다. 동양인들은 종종 ‘헤이트 스피치’ 혹은 날계란 세례 같은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우릴 중국인인줄 알고 행한 범죄지만, 그 저변엔 동양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심리도 깔려 있는 것 같아 섬뜩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무서운 이유는 파급력이 빨라 사회 갈등을 조장할 수 있고, 또 폭력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 재특회(재일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민 모임)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6년 결성된 혐한 단체인 재특회는 각종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들에게 인정되는 특별영주자격을 박탈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들은 각종 시위에서 “한국인을 모조리 죽여라”, “조선인 목을 매라” 등 헤이트 스피치를 자행해 왔다. 2010년 재특회 회원들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계열 학교를 지원한 교직원 노동조합을 규탄하러 조합 사무실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헤이트 스피치가 폭력으로 키워진 대표적인 사건이다.


Hate-Speech-Gado.jpg디지털로 간 헤이트 스피치
사진 출처 - zennews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헤이트 스피치가 물리적 폭력으로 번진 사건은 없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선 헤이트 스피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정 지역과 여성 혐오를 접할 수 있는 일베 사이트와, 온라인 콘텐츠 아래 달린 악성 댓글들은 온라인 헤이트 스피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헤이트 스피치는 자정작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특정 개념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심어 줄 가능성이 크다.


20150909web01.jpg사진 출처 - 노 헤이트 스피치 페이스북


유럽 국가들은 이미 랜선을 타고 확산되는 헤이트 스피치를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에선 인터넷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접한 사람들(특히 청소년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와 의식 함양을 위해 2013년 ‘노 헤이트 스피치’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헤이트 스피치를 모니터링하고, 사람들에게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교육을 한다. 국가적 캠페인으로 헤이트 스피치가 확장되는 걸 저지하려는 활동이다.


일본에선 ‘혐오 발언 규제법’에 대한 국회 심의가 진행 중이다. 헤이트 스피치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정하며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을 막기 위한 게 법안의 골자다. 하지만 올해엔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 연립여당인 자민·공명당은 혐오 발언의 문제점 인식엔 동의했지만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소지를 놓고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헤이트 스피치 규제 법안이 생겨난다는 것 자체가 사유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인간됨’이 사라져간다는 방증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는 다른 이들의 인권을 지켜줄 때 용인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서 ‘표현’은 생각의 표현을 말한다. 생각이 깊어져 사상이 생기고 이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는 다양한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개개인 모두가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면 인권을 침해하거나, 후퇴시키는 표현은 거부돼야 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용인되는 마지노선은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해 주는 지점에서 합의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도 헤이트 스피치가 시나브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잠시 한눈팔면 순식간에 자라나 소행성을 부수는 어린왕자의 바오바브나무처럼 걷잡을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김기림씨는 고공 농성과 세월호 등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