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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헬조선을 외치는 이유 (남소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47
조회
291

남소연/ 청년 칼럼니스트


S양은 올해 25세로 나와 동갑이다. 둘의 공통점은 그뿐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나는 지방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의 재산은 이미 1,300억 원의 주식가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재산은... 빚도 재산이라 치자면, 1,300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전부다. 그녀는 화장품 회사의 경영을 준비하고 있지만, 나는 그 회사 가맹점포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 그녀는 비범했고 나는 평범했다. 우리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있다.


나와 S양의 가장 큰 차이는 노력이나 능력의 크기가 아닐 것이다. 운이다! 그녀는 이미 12살에 주식 일만 주를 보유했다고 하니 삼신할매의 랜덤 운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만하다. 당시 나의 조부모가 남겨준 유산은 아빠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S양과 나는 각자 부모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서 밟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학력이 그러하다. S양의 부모와 나의 부모의 학력 차는 S양과 나의 학력 차로 고스란히 옮겨온다. 그리고 그 부모 역시 그들 자신의 부모와 같은 삶을 살았다. 비단 S양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교육과 소득 수준 차이가 그 자녀의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여럿 발표됐다. 대물림이다.


요즘 청년들은 이런 사회를 ‘헬조선’이라 명명한다. 지옥이라는 뜻의 ‘hell’과 조선이 더해져, 현재의 한국이 지옥과도 같다는 뜻이다. 이들이 고발하는 헬조선의 모습은 꽤나 선명한데, ‘열정과 노력, 의지 세 단어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면서 ‘성수저설-인간은 날때부터 물고 태어난 수저의 재질로 인생이 결정된다-이론이 완벽히 성립하는 곳’이다. S양의 노력은 회사의 경영자를 만들어 낼 테지만 내 노력은 기껏해야 2년짜리 계약 인생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노력보다는 수저가 내 삶을 결정하는 사회,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노력을 해도 도통 나아지지 않는 사회다.


20150903web01.jpg사진 출처 - 사이트 ‘헬조선’-http://hellkorea.com


그동안 청년들은 이 사회 내에서 성공을 바랐다. 남과 비교하며 우위를 점해야 하는 경쟁은 아프긴 했으나, 청춘이라는 시간에 수반되는 고통으로 인식했다. 기다리면 지나갈 것이라고, 성장하는 중이라는 마약 같은 말도 더해졌다. 누구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한권씩 가지고 다니며 위로받기도 했다. 이제 청년들은 깨닫는다. 나를 아프게 하는 고통은 청춘이라는 시기가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가 가하는 것임을. 그러자 청년들이 현실을 바로 바라보고 외친다. “이곳은 헬조선이다”라고.


헬조선은 청년들의 선언이다. 제 사회를 헬조선이라 깨닫는 순간, 비로소 헬조선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청년은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왜 자신들에게 이러한 현실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고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미약하지만 변화의 거점이 될 것이다. 이미 지옥인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헬조선이라 외치는 일뿐이다.


남소연씨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느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