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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일베와 종북의 딱지놀이 (박보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8 13:31
조회
303

박보경/ 청년 칼럼니스트



심심할 때 페이스북을 본다. 타임라인에 뜨는 다른 사람의 글, ‘좋아요’를 누른 글을 읽다 보면 가끔 가다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요즘 내 경우엔 ‘자유주의’ 페이지에 올라오는 글이 그렇다. 이들은 선별적 복지를 찬성하고, 최저임금 1만원을 반대한다. 친일파 숙청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옹호하고, 대학 등록금은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

볼 때마다 짜증이 밀려온다. 이런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더욱 충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궁금하다. 그래서 다시 들어가서 보고 또 놀란다. 세계를 보는 관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다 며칠 전, 자유주의 페이지가 일베 ‘산업화’(?)를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안도했다. ‘이런 사람들은 역시 일베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 나는 분노와 함께 댓글 폭탄을 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거 일베가 만든 겁니다! 멋모르고 ‘좋아요’ 누르시는 분들,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그 뒤로 나에게 자유주의 페이지는 ‘일베 사이트’,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은 ‘일베충’이 되었다. 그렇게 이들에게 딱지를 붙이던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건 이런 글이었다.

참 피곤한 세상이 도래했다. 사회에 만연한 일베 혐오가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억압하는 세상이다. 일베가 절대악으로 취급되는 현 사회분위기에서,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행여 보수 의견을 내비쳤다가 일베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잠자코 논리 없는 정부비판들을 듣고 있자니 복장이 터져나간다.


……일베에 대한 극단적 혐오, 이른바 ‘일베포비아’는 보수와 일베가 더욱더 음지로 들어가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억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경상도 출신의 한 연예인이 본인의 SNS에 사투리를 썼다가 일베 말투 논란에 휩싸여 경위 설명에 나섰다. 모 개그 TV 프로그램에서는 부엉이로 분장한 개그맨을 출연시켰다가 일베 의혹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일베포비아가 만들어 낸 각종 사회적 금기들이 시민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행여 본인의 말이 일베의 그것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페이스북 ‘자유주의’ 페이지 글-


‘아니, 여성을, 외국인을, 진보주의자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일베가 일베 혐오를 비판한다니 말이 돼?’라며 어이없어할 수 있겠지만, 잠시 생각해보자. 윗글에서 ‘일베’를 ‘종북’으로 바꾸면 또 나름대로 괜찮은 글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베를 포용해야 한다거나, 종북은 일베같은 사회악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낙인을 찍는 태도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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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밥 걱정하다 ‘종북’으로 몰린 학부모들 ‘분노’”
3월 30일 JTBC <뉴스룸>
사진 출처 - PD저널



이를 테면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페이스북. 댓글을 보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좌좀’이니 ‘종북’이니 하며 험한 말을 쓴다. 심지어 홍 지사 자신도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을 ‘종북 세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을 보며 난 위기감을 느꼈다. 나도 잘못하면 내 나이 70이 돼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일베’ 낙인을 찍고 무시하겠구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 딱지를 붙여 몰아내면 당장은 후련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서로 증오만 쌓일 뿐, 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런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비판하기 이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헤아려볼 수 있으면 한다. 설득이나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주장이 나온 배경을 알게 되면 최소한 서로 경멸하는 딱지를 붙이며 모욕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그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올바른 일은 대개 쉽지 않은 법이다.

박보경씨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