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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이 만든 허구의 세상(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24 12:13
조회
562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가보안법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트루먼 쇼의 주인공과 닮았다. 언젠가는 그 허구를 깨달을 수 있겠지만 속고 사는 세상을 모른다. 그러니 비정상을 자각하지 못하고 정상으로 간주하며 불편함이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들 있다. 국가보안법의 억압에 갇혀 금기를 잔뜩 마음 켠켠히 쌓고 사는 사람들이 금기를 가슴 속 깊이 묻고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잊고 산다.


 국가보안법의 강요된 금기가 허구를 낳았다. 허구가 금과옥조의 진실이 되었다. 그 허구가 상식이 되고 주류가 되었다. 금기가 빚은 허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억압의 대상인 금기를 자각하고 이에 저항하여 금기를 대신한 허구를 깨뜨리는 순간 국가보안법이 만든 세상은 무너진다. 국가보안법이 만든 금기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는 순간 죽음과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공포를 부르는 금기에 대한 문제 제기나 검증은 금물이 되었다. 금기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회피하며 모른 척해야 편하다. 금기를 대신한 허구를 받아들여야 아무런 위협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금기와는 되도록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 안전하다. 그렇게 국가보안법이 만든 허구의 세상 안에서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지내고 사는 우리는 국가보안법의 억압과 공포에 길들여져 저항력을 거세당한 채 분단 트라우마에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영화 '트루먼 쇼'


 국가보안법은 반미와 친북, 연북을 금기시한다. 반미와 친북, 연북을 억압하기에 그 대신에 친미와 동족대결이 진리로 둔갑하였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할 수도, 동족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지지할 수도 없다. 국가보안법이 억압하는 금기를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우리가 무관심하게 금기를 자각하지 못하도록 세뇌되었기에 금기가 무엇인지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금기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무섭다.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연방제 통일, 주체사상, 선군정치, 강성대국 등등.


 국가보안법이 주는 억압과 공포로 인하여 금기를 당연시하는 세상이다. 국가보안법의 억압과 공포에 맞서 용기를 내어 금기에 저항하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세상이다. 금기에 도전하기가 두려워 허구가 진리로 둔갑한 세상이다. 우리 앞에 놓인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국가보안법에 복종하는 굴종과 복종의 삶을 옹호하기 위해 온갖 궤변과 자기합리화가 난무하는 한국사회다. 악마와 같은 반북 메카시즘에 저항하기는커녕 동족을 악마화하고 폄훼하기에 바쁜 어중이 떠중이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상전의 주한미군 철수 협박에 놀아나 방위비 분담금 명목의 조공을 바치고도 한미동맹 강화를 예찬하는 머저리들이 부지기수다. 동족을 악마화하고 폄훼하며 비방하지 않고서는, 동족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존립할 수 없는 국가보안법이 만든 허구의 세상이 한국의 사회의 현실이다.


 상전에 매달려 동족을 증오하며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국가보안법에 순응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러하기에 국가보안법의 우리에 갇힌 우리의 일상은 비정상적, 비상식적, 비양심적, 비이성적이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사상,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민생, 문화 등 전반에 지배적 영향력을 깊숙이 드리우고 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금기에 도전하는 저항력을 키워나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한국사회의 근본과제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한국 민중이 국가보안법이 금기시하고 억압하는 금기들을 깨뜨려 나가며 국가보안법이 만든 허구의 세상에서 탈출할 때 맞이할 수 있는 제2의 해방과도 같은 일이다. 한국 민중이 도전해야 할 국가보안법이 강요하는 금기는 부지기수이기에 한국 민중이 국가보안법의 억압에 맞서 해야 할 일도 도처에 무궁무진하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