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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내 새끼’와 ‘우리 자식’을 위해(오항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3-17 15:27
조회
1044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2017년 작. 대략 내용 –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뉴욕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발주한 4천 장에 이르는 베트남전쟁 연구보고서) 특종 보도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힌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알려진다. 전쟁 상황은 불리한데도 미국 정부는 계속 승전(勝戰)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날리며 파병을 계속했다.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뉴욕타임즈를 국가기밀 유포로 인한 안보 위협을 이유로 법원에 기소하였다.


 지금과 달리 뉴욕타임즈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워싱턴포스트. 편집장인 벤(톰 행크스)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즈에게 제보했던 동일 인물에게 입수한다. 벤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조작한 사실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회사와 자신, 모든 것을 걸고 세상을 바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지역 신문이었다. 유능한 기자를 충원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 상장을 고려하던 중이었다. 은행과 주주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캐서린을 설득한다. 보도하면 안 된다고. 스필버그의 연출력과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볼만하다. 무엇보다 식자공(植字工)이 활자를 찾아 넣는 과정과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는 언론의 자격을 묻는 장치로 등장한다. 영화 ‘1987’의 동일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전문적인 영화평은 넘어가자.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사진 출처 - 네이버


 하나는 확인하자.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던 미국 언론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보도 태도 등과 꽤나 거리가 있는 영화의 설정이 그것이다. “1964~1972년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한 작은 농업 국가의 혁명적 민족주의 운동을 파괴하기 위해 원자탄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군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 그리고 패배했다.”(하워드 진, 유강은 옮김, 《미국민중사》2, 이후, 2006)


 1946년부터 8년간 미국은 베트남의 대프랑스 독립전쟁에서 프랑스의 전쟁 비용 80%를 댔다. 프랑스가 1954년 패퇴하자 1954년 응오딘디엠이라는 꼭두각시 대통령을 앉혔다.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전쟁 동안 모두 700만 톤의 폭탄을 베트남에 투하했다. 베트남 국민 한 사람 당 거의 200킬로그램 폭탄 하나씩.


 그 와중에 1968년 미군 중대 하나가 꽝응아이 성 미라이 마을에서 450~500명의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한 병사의 인터뷰가 뉴욕타임즈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에서 간행된 미라이 학살 기사는 미국 언론에서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당시 이미 미국은 베트남에 52만 명이 넘는 병력을 주둔시키고도, 20만 명을 추가로 파병하려고 했다.(영화에선 10만 명 더 파병했다고 한다.) 1971년 미국은 라오스, 캄보디아에도 대대적인 폭격을 저질렀다.


 공산주의 저지를 빌미로 한 미국의 침략전쟁은 처음부터 비판을 받았다. 민권단체는 물론, 징병 대상인 젊은이들은 이 전쟁을 피하고자 했다. 무함마드 알리는 징병을 거부했다가 챔피온 벨트를 박탈당했다. 대학의 반전 운동도 계속되었다. 학군단(ROTC)도 거부했다. 가톨릭 수녀와 신부도 행동에 나섰다. 참전 군인들도 반전 시위에 나섰다. 그런데도 1969년 대통령 닉슨은 “나는 어떤 반전 운동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드러났고, 2년 뒤 닉슨은 쫓겨났다. 닉슨은 물론 케네디, 존슨도 의회의 동의를 얻어 전쟁을 지속했다.(영화에선 마치 대통령 독단인 것처럼 끌고 갔다. 아니다. 미국 의회는 역시 대외 침략, 간섭에서 언제나 정부 편이었다. 멕시코, 필리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이라크 어디서나. 닉슨 하나를 꼬리 자르고, 미국 대외정책 시스템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예상대로 전개된다. 뉴욕타임즈에 대한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워싱턴포스트는 맥나마라 보고서를 보도하기로 한다. 그 결정은 언론사 사주(발행인이라고 부르는!)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했다. 아무튼 캐서린은 돌아가는 윤전기를 보며 편집장 벤에게 말한다. “남편은 기사야말로 역사의 초고라고 했어요!” 역사학도인 나로서는 이런 말은 듣기 좋다.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캐서린은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와 오랜 친구로 나온다. 나는 캐서린이 보도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맥나마라와 나눈 다음 대화에 있다고 본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자각보다 앞서는 훨씬 보편적인 이유.


맥 : 보도 기사를 다 읽은 모양이군.
캐 : 그래. 다 읽었어. 네가 많이 힘들 거란 건 알아. 하지만 그 일을 왜 그런 식으로 처리했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 어떻게 우리 모두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지?
맥 : 언론은 우리를 그저 거짓말쟁이라고 쉽게 쓰겠지.
캐 : 상황을 계속 내버려 두었잖아? 내 아들은 고맙게도 전쟁터에서 돌아왔지만…… 넌 내 아들이 전쟁터로 가는 것도 봤잖아? 우리가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너는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많은 우리 친구들이 자식들을 보내는 걸 두고 봤어.


 자식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캐서린이 보도하기로 결정한 건. 다만 이길 수 있다면 전쟁터로 내 새끼, 우리 자식을 보내도 되나? 그래도 되는 전쟁이 있나? 영광은 장군과 정치가가 가져가고, 이익은 군산복합체가 가져가며, 참전한 내 새끼, 우리 자식에게는 살아도 팔다리가 잘리는 부상과 트라우마, 아니면 싸늘한 시신뿐이다.


 둘째가 입대하던 날, 함께 갔다. 거기엔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가시지 않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문득 전쟁이 나면 저것들이 상한다는 걸 알았다. 저 꽃 같은 것들이. 내년엔 또 한 명의 ‘내 새끼’가 군대를 간다.


 캠퍼스에 봄이 왔다. 오고가며 복작거리는 젊은 생명들 덕에 나도 들뜬다. 올해도 쑥스럽게 교실 뒷켠에 자리 잡은 복학생들이 있었다. 안 오실 걸 알면서도 앞쪽으로 앉으시라고 권해본다. 앞으로도 봄이면 군대 갔던 그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실로 돌아오는 세상이 계속되도록 아니, 군대를 가든 안 가든 사는 데 별 상관없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