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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이’들이 사는 세상(임아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2-24 16:14
조회
157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즘 나와 비슷한 30대 또래들의 대화 주제는 주식이다. 주식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어 주식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마치 시대적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뒤처진 사람처럼 여겨지거나, 돈에 대해 금기시하며 혼자 고고한 척하는 ‘씹선비’ 취급을 받는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주식투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식투자로 인해 주식시장이 살아나는 것은 다양한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몇몇 자본가들에 의해 기업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적더라도 가치 있는 업체들이 안정적으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이와는 크게 다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주식을 막 시작한 ‘주린이’들은 주식을 매개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관심 갖는 사회적 가치는 돈과 경제(특히 내 돈)에 한정돼 있다. 기업의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도, 국제정세와 국내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대개의 경우 내 돈이 얼마나 불어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배팅을 하는 것 같다. 경마에 돈을 걸듯이, 스포츠토토를 하듯이 주식을 한다. 경마도 말과 기수의 실력을 분석하고, 스포츠토토도 각 팀의 경기력을 꼼꼼히 분석해야만 승률이 높다. 처음엔 재미 삼아, 경험 삼아 적은 돈을 넣어보다가 생각지 못한 수익을 내기도 하고, 승패를 분석하는 재미가 들기도 해서 점점 더 판을 키운다. 주식을 하는 것인지, 도박을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투자하는 대상만 다를 뿐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는 ‘영끌’에,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빚투’까지, 20~30대 청년들의 삶이 도박과 같은 주식투자로 물들어 가고 있다.


 “10년 이상 보유할 주식이 아니라면 10분도 투자하지 마라” (워런 버핏), “주식은 사고 파는 게 아니라 모으는 것이다” (존 리) 라는 주식 명언에 감탄하다가도, 수익이 주식투자의 전부인 사람들에게는 이름난 투자 귀재들의 조언도 무의미한 듯하다. 아침 9시, 장이 열리는 순간, 오늘은 얼마가 오르고 떨어졌는지, 밤사이 내 돈은 무사했는지, 언제 주식을 빼야 하는지 체크하는 게 직장인들의 일상이 되고 말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사회의 책임이 크다. 실제로 주식에 뛰어든 지인들을 보면 “이렇게 월급만 받아서 살다간 아무리 수십 년을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도 없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30년 이상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월급만 받아서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현실이 대규모 ‘주린이’를 양산한 것이 아닌가 싶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노동 없는 부가 동경의 대상이 된 사회에서 주린이들이 꿈꾸는 대박주의 기회는 찾아올까? 과거를 반추해 보면 70~80년대 땅 투기로 대박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부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다시 30년이 지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대박을 꿈꾸게 될까? 노른자 땅을 노리던 시대에서 대박주를 좇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향해 왔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편집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