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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호’ 버려야 촛불이 산다(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0-02 13:34
조회
3172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주말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이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한편으론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검찰 개혁’에 동의하는 마음은 이미 촛불과 함께 있지만 ‘조국 수호’ 슬로건에는 반대하거나, ‘공수처 설립’이 곧 검찰 개혁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들이다. 누군가는 촛불 연합의 붕괴를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박근혜 탄핵 촛불 때 잠재했던 차이들이 드러나고 경쟁하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차이가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차이를 넘어 연대하는 것이다. 연대하려면 최상위 슬로건에 합의해야 할 텐데, 그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조국은 조연에 불과하다


 문제는 지금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조국 수호’를 ‘검찰 개혁’과 등가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김민웅 교수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나는 김민웅 교수를 좋아한다. 그가 지난여름 <프레시안>에 연재한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보면, 그가 얼마나 해박하고 매력적인 지식인인지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지난 주말 촛불집회 연단에 서서 “지금은 조국이 검찰 개혁”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행태가 과도하기 때문에 이제 조국은 사퇴할 수 없고, 조국을 내어주면 대통령까지 위험하다. 그러므로 조국을 지키는 게 검찰 개혁으로 가는 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조국 장관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나, 행정가로서 능력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이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현 정세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지금 벌어진 ‘검찰 개혁 정국’을 만든 건 조국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점이다. 검찰이 ‘오버’하지 않았다면 촛불집회도 없었을 것이다. 검찰의 오만함이 ‘조국 논란’을 ‘윤석열 사태’로 바꾼 것이지, 조국이 특별히 무엇을 한 결과가 아니다. 지금 무대에 오른 연극에서 조국은 전개상 필수적인 에피소드를 제공한 조연에 불과하다. 굳이 조국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주연, ‘촛불’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극의 결말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검찰이 조기 참전하지 않았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론이 돌아선 상황이었다. 최근 <한겨레> 보도를 보면, 고심하던 대통령으로 하여금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게 한 주된 이유가 윤석열의 ‘조국 불가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조국은 조연에 그친다.
 물론 지금은 사퇴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면 거기서 그쳐야 한다. 최소한 촛불집회의 메인 슬로건에서는 ‘조국 수호’를 빼야 한다. 그것이 외연을 넓히는 길이고 촛불집회가 성공하는 길이다. 조국 수호에 갇히면 민주당원들만의 잔치가 되고 만다. 진정한 검찰 개혁도 어려워질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공수처 설립은 철 지난 과도기적 방안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참여연대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종의 과도기적 개혁안이다.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원천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하지만 이걸 단번에 분리하기는 쉽지 않으니 일단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또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검찰을 견제하자는 논리다. 나는 공수처가 언제든 대통령의 칼로 변할 수 있으며 최소한 또 하나의 대검 중수부(지금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될 가능성이 크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수사 총량이 늘어나므로 인권 신장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반대해 왔다. 결정적으로 이 방안은 검찰의 부패나 비리 등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선민의식에 빠져 선출권력까지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행태를 막는 데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오히려 공수처와 선명성 경쟁을 한답시고 더 전방위적이고 무리한 수사를 벌일 가능성도 농후하다.
 요컨대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전망이 어둡던 시절에 만들어낸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견제에 초점을 맞추느라 권력 축소에 소홀했던 과도기적 방안이다. 더 이상 매달릴 이유가 없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에도 검찰 개혁이 제1의 과제로 꼽혔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는 어려웠다. 각론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검찰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 사회적 흉기인지 소상히 알게 됐다. 둘을 분리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어두운 소식이 들린다. 조 장관이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만들었는데(이탄희 판사 같은 훌륭한 분을 모셨다고 한다) 주요 논의 과제가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 방안이라고 한다. 또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축소해야 할 게 아니라 아예 폐지해야 한다. 지금이 평시도 아닌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래서 그가 검찰의 분탕질 없이 무난하게 법무부 장관이 되었더라도 검찰 개혁을 잘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검찰이 10월 1일 특수부 축소 방안을 발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직접수사 축소는 검찰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어차피 얘기 되는, 그래서 문제 되는 직접수사는 과거의 중수부, 지금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수사이기 때문이다. 일단 특수부를 유지하기만 하면 나중에 필요할 때(이번 조국 일가 수사처럼) 얼마든지 인력을 늘릴 수 있다. 대검 중수부를 폐지할 때도 서울 특수부가 그 역할을 대신 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깜짝 놀란 듯 하루 만에 내놓은 대책이지만, 나는 검찰이 여전히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 수사권 박탈하고 기소법정주의 도입해야


 공수처 설립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은 어차피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타 있다. 그건 그것대로 흘러가게 두고 근본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마치 공수처가 설립되면 검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촛불집회 구호에서 ‘공수처 설립’을 빼야 하는 이유다. 그냥 검찰 개혁이면 충분하다. 세부 내용은 국회가 채우면 된다. 굳이 법무부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검찰을 국가기소청으로 축소해 기소와 공소유지만을 담당하게 할 수 있다. 기소편의주의는 기소법정주의로 반드시 바꿔야 한다. 검찰 마음대로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가 얼마나 많은 부정과 비리의 원천인지 알만한 사람은 안다. 미국의 연방수사국 FBI 같은 국가수사청을 만들어 수사 기능을 맡기는 방안도 가능한데 제2의 검찰 특수부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사실 기소권만 없어도 지금의 검찰 같은 패악질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각계의 여론을 모아 근본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개혁방안논의 과정 자체를 축제처럼 기획한다면. 그렇게 해서 나온 방안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발표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다수당이 된다면 입법을 통해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마련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