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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진도 만들어낸다 (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1-28 11:35
조회
461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재난(disaster, 災難)의 한자상 의미는 자연(물巛과 불火)의 힘이 커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게 된 곤란한 상황이다. disaster의 어원적 의미도 ‘별(aster) 또는 천체(astrum)의 어긋남(dis)’이다. 자연의 질서가 기존과 어긋난다고 느껴지는 현상을 재난이라고 한다. 이 때 자연 현상 또는 질서를 곤란한 상황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이다. 자연의 힘에서 인간이 곤란을 겪지 않고 피해로 느끼지 않으면 그것은 재난이 되지 않는다.


 가령 지진(地震)은 맨틀 위에 떠 있는 지각 판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움직임 자체는 자연의 질서이고 조화이고 끝없는 균형 과정이며, 지각들이 ‘빈틈’을 향해 움직이는 현상이다. 폭풍도 태양열로 데워진 대기의 순환 현상과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기압의 변화 과정이다. 그것은 ‘약한 곳’과 ‘낮은 곳’을 향해 움직이는 공기의 이동 과정이다. 대기가 급격하게 움직여 인간에게 피해가 닥치면, 우리는 그것을 천재(天災)라 하는데, 천재도 원칙적으로는 자연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문명이 시작되면서 자연의 힘이 재난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연이 인간적 성취의 과정이자 산물인 문명을 파괴하자, 인간은 그것을 재난으로 명명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문명이 자연의 흐름에 비해 대단히 나약하다는 뜻이다. 애당초 자연의 힘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문명을 인간의 대단한 성취인 양 여기는 태도에 이미 인간의 오만함이 들어있다. 자연에 의한 문명의 파괴는 천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재(人災)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이 만든 문명에 인명이 살상되고 온갖 성취가 인간을 덮치기 때문이다.


5a1ccb0f8b3549706837.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진도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건물이 부서지고, 기울고 사람이 다쳤다. 땅이 흔들려 사람이 다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문명에 사람이 다쳤으니 천재이자 인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지진의 경우는 이전과는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든다. 진앙에서 2km 떨어진 곳에 건설 중인 포항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지열발전소의 원리는 대강 이렇다. 지하 암반과 암반 사이의 틈을 벌려 그곳까지(포항의 경우는 땅속 4.3km 지점까지) 관을 심고 강한 압력으로 물을 주입하면 뜨거운 암반 사이에서 물이 데워지고 그 물과 수증기를 다른 관으로 끌어올려 터빈을 돌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상에서 고압으로 물을 주입할 때마다 다음날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일이 수십 차례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진도 그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스위스 바젤 등 해외에서도 지열발전소로 인해 소규모 지진이 계속 발생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물론 발전소 건설사측에서는 지열발전과정과 이번 지진은 무관하다면서 나름 해명 중이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5천8백t 정도의 소량만(?) 주입했기에 지진이 발생할 정도의 양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열발전 전문가가 아닌 마당에 나로서도 무엇이 옳다 그르다 단언할 능력은 없다. 다만 기존 암반 사이를 인공적으로 벌려서 외부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주입하는 이런 방식과 발상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땅속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하 10m에서 섭씨 15도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땅속 열에너지를 가정용 냉ㆍ난방 에너지로 활용한다는 소규모 지열 시스템만 상상해보던 나로서는 땅속 수천m 아래에 있는 암반의 간격을 강제로 벌린다거나, 암반 사이에 적게는 수천t, 많게는 수백만t의 차가운 물을 강제로 넣는다거나 하는 발상과 방식이 자못 두렵기까지 하다. 지진 그 이상의 천재, 아니 인재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평창올림픽을 대비해 인공강설 실험을 한다거나, 서해에 인공강우 커튼으로 중국발 미세먼지의 유입을 막겠다거나 하는 소식을 기술과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하는 뉴스를 보면 인간의 무모함에 겁이 나기도 한다. 어딘가에 홍수가 내리면 어딘가는 가물기 마련이다. 북경에 나비가 날자 뉴욕에 폭풍이 인다 하지 않던가. 인위적인 변화는 늘 위험을 초래한다. 자연을 독점할 권리가 특정 국가나 특정인에게 있다는 말인가. 자연은 반드시 빈틈을 따라 흐르면서 인간의 성취에 복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의 힘을 무모하게 강탈하는 행위를 대체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눈감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개인, 사회, 국가 간 합의를 통해 피차 자연에 대한 좀 더 겸손한 자세를 갖자는 합의를 어렵더라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북한의 핵실험으로 지진이 발생하고 백두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던 그 비판의 눈길을 이번 지진의 원인에 대해서도 거두면 안 될 것 같다. 인간이 지진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다 보니 인류의 미래가 더 불길하게 다가온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