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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비심이 절실히 필요한 외국인 환자들 (허윤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3 09:31
조회
359
우리나라는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7년 9월 30일 현재 국내체류외국인은 1,018,036명이고, 이들 중 합법체류자(등록외국인)는 788,873명이고, 불법체류자(미등록외국인)는 229,163명으로 불법체류율은 22.5%에 달합니다. 또한 결혼이민자는 2002년 34,710명에서 2007년 9월 30일 현재 107,641명으로 불과 5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100명 중 2명은 외국인으로서, 우리 사회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급속하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미등록외국인 단속을 강화하면서 인권침해의 지적도 받았지만, 범칙금 면제 및 입국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미등록외국인의 자진출국을 유도함으로써 외국인 체류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인권침해와 노동력 착취의 온상이었던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통한 합법적 노동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신매매의 형태라고 할 수 있었던 결혼이민자 여성들의 정상적인 한국내 정착과 올바른 가정확립을 위해 여성가족부를 통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 확대도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치료를 위해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외국인 산재환자 전용 치료병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노력과 개선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 바탕에는 국내체류 외국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애쓴 수많은 NGO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의 노력과 협력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외국인체류자들에 대한 배타성보다는 우리의 이웃으로 여기는 사회통합의 의지가 높아진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경제활동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사는 성숙된 사회가 된 것입니다.

 

071212web06.jpg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병원의 병실에서 한 환자가 침대에 누워 병마와 싸우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배려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가 아닌 지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2007년 10월 1일부터 국가의 의료비 지원이 중단되자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의 무료진료를 담당했던 병원들도 재정적 이유로 치료지원을 중단하였습니다. 특히 중병에 걸린(암, 뇌질환, 심장병 등)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를 중단해야 하며, 죽음의 위험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이들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자신의 병으로 인한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위협입니다. 사실 이들이 고국에 돌아간들 경제적 이유로 치료받기는 힘들고, 그 부담을 가난한 가족들이 고스란히 받아내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중병에 걸린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우리가 치료해 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이들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이들이 이렇게 중병을 앓는 이유는 한국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평소 지병이 있었지만 본국에서는 가난 때문에 병원 진료도 한 번 받지 못하고 그럭저럭 견디다가 한국에서 힘든 일을 하다 보니 그 병세가 악화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료1)노동사목위원회 외국인 상담소 통계(2006년 1월 1일-2007년 10월 30일)

위 상담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의료지원 요청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50%이상이 중병환자이며, 대부분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신분상의 약자로서 떳떳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 D씨는 38세의 베트남인으로서, 2004년 7월 15일 한국에 입국하여 산업연수생으로 일했습니다. 2년 전부터 배가 아팠으나, 베트남에서 가져온 ‘배 아픈데 먹는 약’을 먹고 견뎌왔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비 걱정 때문에 쓰러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 전부터 통증이 심해져 국립의료원(정부에서 의료비를 지원하는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검사결과 대장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사실 D씨로부터 도움의 요청을 받았을 때는 단순히 병원진료를 도와주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난감했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해서 급하게 수술은 하였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총 11번의 항암치료(항암제 주사와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데, 매번 230여만 원의 듭니다. 정부의 의료비지원도 중단되었기에 100%로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또한 치료 중 체류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현재 미등록외국인(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었고, 의료보험도 없어서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D씨에게 지금의 상태를 알려주었을 때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자신이 죽으면 가족이 죽는다고 어떻게 해서든 치료비를 마련하려 애쓸 테니, 꼭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저희도 이천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비용을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D씨의 가족은 아내(38세)와 딸(7살), 아들(2살)이 있는데, 베트남에 살고 있고, 고향에서 D씨를 도와 줄 수 있는 일가친척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의 치료비를 보테기 위해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녀가 벌 수 있는 금액은 우리 돈 5만 원 정도입니다. 남편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하루도 쉴 수 없는 상태이기에 아픈 남편을 간호하러 오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베다니아의 집(외국인 환자 쉼터-까리따스 수녀회 운영)에서 수녀님들이 D씨를 간호하며 치료 일정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먼 타국에서 죽을병에 걸린 남편의 소식을 접한 아내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어린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라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며, 안타까움 이상으로 공포심으로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픈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 치료하며 도와 줄 수는 없겠지만, 단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려 달라 외치는 그들의 부르짖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의 외침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걱정에 목메는 외침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도 6백 4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이민이든 노동이든 학업이든 다양한 형태로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이 모두 건강하게 차별 없이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어려움에, 특히 중병에 처한 이들을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을 돌보는 것이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가족들을 돌보는 일과도 같지 않을까요? 이들이 돌아가 고마움의 마음으로 그들 곁에 있는 우리 가족들을 잘 돌보아 줄 것입니다. 이것이 함께 사는 지구촌의 모습이 아닐까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3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앞으로 8번 남은 치료비 마련을 위하여 여러 기관과 선의의 뜻을 가진 분들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잘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무조건적인 자비심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