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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이름으로 더 이상 예수를 팔지 마라 (홍승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3 09:34
조회
373
한해가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
어느덧 2008년. 쥐의 해다.
정신없이 한해가 지나가서 도무지 2007년에 개인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해가 마무리될 무렵의 일과 기억은, 앞으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겠다는 생각에 좀체 머리에서 그 기억이 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런저런 분석과 전망들이 있지만 어쨌거나 별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그저 그나마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를 너무 심하게 저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마저 생긴다.

얼마 전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성탄의 의미에 대한 설교 중 ‘금관의 예수’를 목이 메며 부르시는 것을 들었다. 가끔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어 찾아보아도 없던,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였다.

 

1.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2.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전곡을 다 부르지 않고 설교를 이어갔지만 마음속으로 나머지 가사를 읊어보았다.

70~80년대의 혹독하고도 암울한 상황과는 다른 지금이지만 여전히 상대적 핍박과 빈곤과 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숱한 비정규노동자들과 영세업체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이주노동자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한국의 숱한 개신교회와 천주교회 등에서 소리 높여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지만 마구간 구유에 첫 보금자리를 튼 예수는, 기득권층인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를 공격했고 또 그들로부터 계속 감시와 노림을 당해왔으며, 세리와 창녀들과 가난한 민중을 친구삼아 함께 먹고 마시며 어울렸던 불온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을 옥죄던 ‘율법’ 대신에 사람을 가장 중심에 놓는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던진 혁명가 예수는 내가 보기에 구약의 이스라엘 부족신인 ‘여호와’와는 많이 거리가 있는 존재로 보인다.

어쨌거나 한국의 개신교를 비롯해 천주교든 성공회든 예수가 아니고는 이스라엘 민족 종교인 유대교 틀 안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예수가 가장 중요한 틀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예수가 오늘날의 한국에 온다면 과연 어떠할까?

과히 어렵지 않은 상상이니 독자 여러분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긴다.

 

070328web01.jpg  2006년 12월 21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열린 개정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위한 총회 총대 비상기도회에서 목회자들이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에는 옷차림도 괜찮고 얼굴에 기름기도 번지르르한 일군의 사람들이 머리를 깎는 진풍경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개신교의 유력한 목사들이었다.

아마도 개신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장로들이 사립학교를 경영하는 통에 그 눈치를 아니 볼 수는 없겠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들의 행태에 쉽게 동조하다 못해 머리까지 깎은 일은 안쓰럽다 못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 또는 부당해고 노동자 등 절박한 입장에 몰린 약자를 위하는 일이었다면 모르겠으되 이 나라에서 아주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가진 자들을 위해 머리를 깎는 그들은 이미 돈의 위력이 막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들의 ‘개’가 되기로 기꺼이 작심한 것일까?

그 누구보다도 사회적 가치 이상의 가치와 도덕을 가르치고 설교해야 그들이 아예 발가벗고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나팔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예수를 팔지 말고, 과감하고 솔직하게 이 사회에서 예수와 기독교라는 종교의 가치는 이제 폐기되었다고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이 사회는 ‘맘몬’이라는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정정당당하게 밝혀야 하는 게 아닐까?

더군다나 그들이 발 벗고 나서서 지지와 성원을 아낌없이 보냈던, 친기업적 정책과 능력 중심의 입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 중심주의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이제 아무 눈치 볼 일 없잖은가?

교회에 아무리 부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이 넘쳐도 “신자유주의여 만세!”라고만 외친다면, “부자들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들의 위상과 주머니도 더욱 든든해질 테니 그야말로 ‘지상의 천국’이 당신들에게 보장되지 않겠는가?

물론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하느님과 내세의 부활 및 천국이란 없다고 믿는 불신자들의 전형이니 이생에서라도 맘껏 누리겠다는 생각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단지 그들이 믿지 못하는 종교의 이름으로, 강단에서 궤휼로, 온갖 궤변과 감언이설로 숱한 사람들에게 거짓을 늘어놓으며 혹세무민하지 말고 하루빨리 정체를 밝히길 바랄 뿐이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