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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보수 기독교계,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 (김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2:49
조회
610

김 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 되다 최절정에 이른 지난 2008년 6월 28일 오후, 정부는 “심야 불법·폭력 시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고 저녁엔 서울시청 앞 광장을 경찰병력으로 에워쌌다. 그리고 6월 29일 새벽 서울 한복판 태평로에서는 “착검한 총만 없을 뿐 1980년 ‘5·18’의 광주 모습 그대로”가 재현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6·29’선언과 함께 항복한지 정확히 21년 후였다. ‘두 달 가까이 광화문을 무법천지로 만든 시위대’를 비난하는 정부와 ‘두 달 가까이 외쳤는데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오만함’에 분노한 시민들의 싸움, “청와대 앞까지 진출하려는 군중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관용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과 “오죽하면 청와대까지 가려하겠는가? 대통령과 대화를 원한다”는 입장은 서로 정면으로 대립한다. 4·19때 경무대로 달려가던 시민들이 지금은 청와대로 달려가려 한다, 혁명보다 소통을 요구하면서.

그러한 정면충돌은 기독교계 안에서도 그대로 재생된다. 한편에서는 사탄을 들먹이며 이명박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기도가,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이라는 제목의 시국미사 강론이 낭독되었다. 둘 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인들인데 어찌 그리 서로 정반대일까?

촛불집회가 날로 격화되던 지난 2008년 6월 5일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청와대 비서관과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은 촛불집회에 기름을 끼얹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주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기도회 축사에서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며, “마치 모든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순수한 학생에게 촛불을 주고, 마치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인이 버리는 것을 국민에게 먹이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세력은 거짓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고 했다. 또 김홍도 목사(금란교회)는 “경찰,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동원해 빨갱이들을 잡아들이라!” “그러면 (촛불집회 하는) 그 사람들이 쑥 들어가고 국민들 지지율이 다시 올라간다”고 주장했으며, “지금 이 촛불은 이명박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고, 좌파 노릇을 하는 엠비시(MBC), 케이비에스(KBS)를 척결해 달라”고 기도했다 한다.


080702web02.jpg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지난 6월 30일 저녁 ‘국민존엄 선언·국가권력
회개 촉구 비상시국 미사’를 집전하려고 십자가를 앞세운 채 서울시청 앞
광장 한복판으로 줄을 지어 들어서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반면에, 사제단은 지난 2005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반대 때 이후 3년 만에 다시 시국미사에 나섰다. 사제단 주최로 ‘국민존엄과 국가권력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열린 2008년 6월 30일 저녁 7시 30분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신부와 수녀, 평신도 및 일반시민 1만여 명이 참가했으며, 시국미사가 끝난 후 사제단 200여 명과 시민 8천여 명(경찰 추산, 주최 측 추산 12만여 명)은 오후 9시 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시내 거리를 행진하여 약 1시간여 만에 다시 서울 광장으로 돌아왔다. 십자가를 앞세우며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다. 오늘 비폭력 원칙이 만약 깨지면 촛불은 영영 꺼지는 것”이라며 비폭력 원칙을 강조하며 평화행진을 주도한 사제단은 “국민에게 힘이 되는 시점까지 우리 사제단은 단식을 계속 하겠다”며 천막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오늘 신부들이 외치는 비폭력 구호에 많이 공감했다” “비폭력일 때 더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사제단의 등장으로 그동안 정부와 경찰의 ‘불법시위 엄단’ 방침과 일부 시위대의 과격 폭력이 충돌했던 최근의 촛불집회 양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촛불집회에 종교계가 가담하면서 집회가 비폭력적으로 순화되는 면은 있지만, 그동안 대열에서 이탈되던 일반 시민들이 가세하며 집회가 다시 장기화될 것 같아 검찰과 경찰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7월 4일에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의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제1차 시국법회,’ 5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1천인 기독교 합창단’ 행사 등 비폭력 평화 기조의 종교계 집회가 잇따라 예정되어 있다. 예상치 않은 복병이 특히 기독교, 더 나아가 범종교계임을 알게 된 개신교 장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기도를 할까? 하느님께서도 대략 난감해하시지 않을까?

정의구현사제단은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이라는 강론에서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개탄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었다. 특히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이라며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 드는 맹목적 사대주의”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를 강하게 규탄했다. 아울러, 이번 대통령은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뽑혔을 뿐이고 국민의 그 기대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데,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렇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올바른 통치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 통치자는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며, 고관들은 “법대로 나랏일을” 본다. 그들은 “바람을 막아 주고 소나기를 긋게 하여 주고 메마른 곳을 적셔 주고 타는 땅에 바위처럼 그늘이 되어 주리라. 민정을 살피는 눈이 어두워지지 아니하고 민원을 듣는 귀가 막히지 않으리라”(이사야, 32).

그 정반대로, 통치자와 고관들의 민정을 살피는 눈이 어둡고 민원을 듣는 귀가 꽉 막힌, 혹은 특유의 오만함이 그 귀를 꽉 막은 현 상황, 즉,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가톨릭교회는 “국민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러한 거부와 저항은 도덕 의무이기도 하다. 양심에 따르는 이 거부권은 법 처벌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곧 통치 행위 또는 공권력의 행사가 실정법에 근거한 것이라도, 그것이 그보다 우위에 있는 자연법의 근본 원리를 위배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것은 정당하다. 인간의 양심을 저버리도록 강요하거나 인권 침해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법이나 제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그것에 복종하는 것만큼이나 도덕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물론, 비폭력 저항을 강조하면서.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