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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불매 운동과 업무방해죄, 그리고 지록위마의 교훈 (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3:09
조회
272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즘 광고 불매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형법이 제정된 이래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당연한 법리 적용인데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50년 동안 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하겠다는 것인데 논란이 없을 수가 없다.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형법에서 규정하는 업무방해죄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광고 불매 운동을 한 것이 형법에서 규정한 ‘위력’에 해당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결국 이 논쟁의 중심은 인터넷에서 광고 불매 운동을 한 것을 ‘위력’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력이란 어떤 사람이 난폭한 행동을 해서 다른 사람의 의사를 제압하고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자신의 생각과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한 것을 위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업무방해죄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석은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검찰이 이렇게 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원은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통해 여러 근로자들이 파업을 결정하는 것을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인터넷상의 카페로, ‘여러 근로자들’을 시민으로 바꾸면, 광고 불매 운동에도 업무방해죄를 규율할 수 있다는 논리가 쉽게 만들어진다. 검찰이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해 자신 있게 기소한 것, 법원이 그 관련자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단 검찰과 법원의 행동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왜 검찰과 법원은 50년 동안 광고 불매 운동을 처벌하지 않았던 것일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매우 자주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해 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불매 운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본 회사들이다. 멀게는 교과서 파동, 가깝게는 독도 분쟁에 이르기까지 일부 일본 정치인의 행동 때문에 의의 일본 회사들은 예기치 못한 손해를 입곤 하였다. 그들에 대한 불매 운동은 인터넷을 떠나 오프라인에서 존재하는 여러 단체에 의해 조직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한 기관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거나 그 관련자를 구속한 예는 아직껏 없었다. 이것은 한국 검찰과 법원이 국수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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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주도했던 다음 카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
지난 30일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 이름의 정식 언론운동시민단체로 출범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을 보면, 중국의 고사성어 중 하나인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떠오른다. 중국 진시황이 죽은 뒤 어린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삼은 환관 조고는 자기를 반대하는 중신들을 가려내기 위해 사슴을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이라고 하였다. 신하들 중에는 조고의 말이 맞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업무방해죄에 관한 형법 규정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광고 불매 운동에 그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사슴을 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슴이란 용어를 없애고 말 가운데 ‘뿔이 있는 말’과 ‘뿔이 없는 말’이 있다거나 ‘큰 말’과 ‘작은 말’이 있다는 식으로 분류하면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사슴은 ‘뿔이 있는 작은 말’에 속하게 된다. 조고의 말이 맞다고 한 진나라의 신하 중에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사슴을 말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석상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 사법 질서의 본래 취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대 사법 질서는 국가의 행동자유(行動自由)를 억제하고 시민의 행동자유를 확대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국가의 행동자유를 억제하는 가장 큰 원칙이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이다. 이걸 통하여 시민들은 군주나 귀족의 전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형벌은 과잉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도 포함된다. 형법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면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다. 모호한 규정은 본질적으로 형벌의 과잉 적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그 대표적 예이다. 우리가 사법시험을 치러 검사와 법관으로 임용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우리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법률가들이 정치적․사회적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을 적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요구가 없다면, 우리는 검사나 법관 역시 선거를 통해 선출하였을 것이다. 사회의 많은 부분이 민주화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사법 영역에서 선거 제도의 도입 문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국 검사와 법관이 이러한 취지를 무시한 채 법률을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그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면, 그것은 사법 질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초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사법부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 결과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사법 관료가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와 가치관에 빠져 사회 일반인의 상식을 깨기 시작할 때, 그 사회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인터넷상의 어떤 그룹이 일본 회사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전개하고 그 회사가 이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한 경우, 검찰과 법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이들을 처벌할 것인가? 만약 아파트 부녀회에서 특정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과 법원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