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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단상 (정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6 23:06
조회
257

정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 1964년은 아시아 최초로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그 해 미국에서는 풍진이 유행했는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에도 풍진이 옮겨왔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 풍진에 걸리면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갖는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 오키나와에는 그 무렵 500여명의 청각장애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을 위해 오키나와에는 기타지마 고등농학교가 설립되는데 이 학교 학생들의 고시엔(甲子園,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별칭) 도전기를 다룬 만화가 ‘머나먼 갑자원’이다.

그런데 이 만화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투수-타자 대결구도를 줄거리로 하는 일반적인 고교야구만화와는 전혀 다르다.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고시엔에 도전하는 과정이 일반인과 비교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청각 장애’가 아니었다. 고등농학교는 고시엔 자체에 출전할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고시엔에 출전하려면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입해야 하는데 고등농학교는 ‘정식 고등학교’가 아니라서 연맹가입이 불허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고등학교 지위를 인정받아 고시엔 출전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 이 만화의 주된 내용이다(기타지마고등농학교는 고시엔 지역예선에서 3년 동안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선천적 장애보다 사회 제도의 제약임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몇 년 전 조총련계 학교가 고시엔 출전자격을 얻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정식 고등학교’가 아니므로 고교야구연맹 가입이 그동안 불허되어왔던 것이다).

 

 

080827web02.jpg사진 출처 - 네이버



  # 1988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린 서울올림픽에서는 베이징올림픽 중국 관중들의 반한(反韓) 응원 못지않게 우리 관중들의 반미(反美) 응원이 대단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이 경기를 할 때 관중 상당수가 ‘U.S.S.R’을 외치며 소련을 응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8년만큼 서울 하늘에 적성국 국기가 휘날리고 국가가 울려 퍼졌던 때도 없었다. 지금은 정치인이지만 그 때는 검사였던 함승희는 「성역은 없다」라는 책에서 88올림픽 당시 잠실주경기장에서 소련 국가가 연주될 때 주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련 국기를 향해 경의를 표할 때 저 많은 사람들을 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었다고 고백하였다. 검사라는 직업이 일반인과 다른 상식에 근거해 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었다. 요즘 검찰이 벌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함승희의 글을 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 베이징올림픽 선수단이 마지막 귀국 준비에 여념이 없던 지난 8월 25일 오전 베이징올림픽 덕을 톡톡히 본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법률가대회 개회식에서 유달리 ‘법치주의’를 강조한 연설을 했다. 우리 사회에 최근 “선동적 포퓰리즘의 폐해가 심각하며”, “국가의 존재의의와 공권력의 권위를 무력화시키고, 주권자인 국민이 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행동도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생각하는 법치주의란 ‘준법정신’ 한 단어로 요약되었다. ‘법을 지키자’는 것이 전부이다. 법치주의에 대한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이러한 인식 수준은 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추어 본다면 ‘올림픽 예선탈락’ 정도의 수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법치주의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공동체 보장과 기본권 보장이라는 상위 가치에 복종한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가지는 원리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법치주의는 법치주의가 달성해야 할 상위가치에 복종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아마도 ‘일단 법을 지켜라’일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변호사로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예전에 배운 것에 비추어 생각해 보았을 때 그 결론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특히 업무상 배임죄가 그렇다. 언제가 돼야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찾을 수 있을까.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