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망각과 음모 (김대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21:23
조회
238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난 요즘 너무 혼란스럽다. 꿈자리마저 꽤나 뒤숭숭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자꾸 뇌리에서 지워져 가고 있어 안타까운데다 그것이 내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데서 오는 분노까지 겹쳐 마음의 평정을 잃은 때문인 것 같다. 정말이지 요즘 쉼 없이 터지는 굵직한 사건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기억하려는 몸부림이 뒤섞여 나를 압박하는 느낌이다.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에 분개하여 동분서주하다 갑자기 일제고사로 인해 해직당한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때만 해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뒤늦게나마 성직자들을 모아 기자회견을 가진 뒤 선생님들과 함께 할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던 중 당한 일이라 그 미안한 마음이 더했다. 그러나 결국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분위기에 휩쓸렸고, 가끔 교육청 앞을 지날 때마다 언론과 시민들의 외면 속에 외로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그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경기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강호순에 대한 언론의 보도 때문이었다. 미해결 살인사건들이 갑자기 일거에 해결되는 것도 의아했는데 살해 동기와 방법, 현장검증 내용 등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으로 보도하더니 용의자의 신상공개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고 강호순이 책을 쓰고 싶어 한다는 내용까지 소재삼아 뉴스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 참으로 개운치 않았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음모가 있었다. 청와대의 한 행정관이 '이메일 보도지침'을 통해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해 용산참사를 뭉개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전에도 경찰이 직원들에게 용산사건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여 여론을 조작하려 했었고, 경찰청 홈페이지 게시물에 소방차 사전 배치 주장 등으로 왜곡을 시도하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우리는 그들의 음모대로 용산을 잊어갔다.

 

2009년 2월 14일 mbc 용산참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용산참사-진입을 시도하는 경찰 특공대원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다. 추기경의 선종과 관련한 언론보도는 정말이지 대단한 호들갑이었다. 추기경에 얽힌 일화와 덕담, 각계각층의 추모사에 더해 유리관과 목관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세밀한 분석, 스포츠 중계를 방불한 정도였던 끝없는 추도행렬에 대한 중계까지 언론은 추기경 릴레이를 이어갔다.

나는 그 보도를 접할 때마다 불편했다. 혹시 ‘또 다른 홍보지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예의가 아닌 줄 안다. 그러나 그 결례가 어찌 내 잘못만이라 탓할 수 있을까. 결국 청와대 홍보지침 같은 것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한 달 되는 날을 앞둔 2월 19일, 철거민 희생자 5명은 장례는커녕 입관조차 못하고 무관심속에 방치돼 있는 현실과 국내외의 깊은 관심 속에서 진행된 김수환 추기경의 입관식은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루었다. 용산참사 추모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열리지 못했고, 추기경 추모행렬과 달리 용산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줄었고, 용역업체의 철거작업은 슬그머니 재개되었다.

의심이 꼬리를 문다. 국회 문방위 고흥길 위원장의 미디어법 날치기 상정 장면을 보면서, 지뢰밭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어 무리한 수순을 밟는 이유가 궁금했다. 언론의 해석처럼 정치 역학이나 정부와 여당의 이해관계 정도로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그 행태가 과연 그렇게 상식적이었단 말인가. 분명 그 이면에 다른 음모가 있을 것이었다.

온갖 음모론에 해박한 친구가 있다. 심하게 말하면 과대망상이 질환 수준이라 할 정도이다. 얼마 전엔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에 마오주의자들이 많다고 어이없는 주장을 하다 나에게 구박 꽤나 받고 쫓겨난 적도 있다. 앞으로 그 친구 이야기에 귀 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누구 때문일까?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