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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초임 삭감에 부쳐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21:34
조회
264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방법이 기가 막히다. 잡셰어링을 위한 대졸초임 삭감이라.
공기업과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경총이 앞장섰다. 전경련은 통계도 제시했다. 한국의 대졸초임이 일본의 대졸초임보다 더 높단다.

경제위기에서 자본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삭감이 현실화 된다면 기존의 대졸 사원의 임금이 어떻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노사간 올해 임금협상은 하나마나할 게다. 어거지 고통분담이지만 신입사원조차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는 지경에 이르러 임금인상은 언감생심이요, 임금동결은 감지덕지요, 임금삭감은 공생을 위한 고통분담 대타협이다. 연대하여 저항하지 않는다면 자본의 이간질에 노동자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090311web05.jpg지난 2월 25일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는 대학생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그나저나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이 걱정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 취업의 경쟁이 완화되어 문호가 넓어질 것으로 믿는단다. 애당초 그들이 저항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들의 대학생활은 처절했다. 오로지 취업준비로 대학시절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찌감치 학점, 토익점수, 자격증, 인턴경험 등 소위 스펙을 쌓는데 몰두해 왔다.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동아리 활동도 마다한 그들이다.

정작 대학졸업 후 취업의 문턱에 다다라 그들이 쌓아올린 스펙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고통의 시간들이 엄습한다. 면접 보기를 반복하고 주변 눈치 보기에 지쳐나간다. 졸업 후 백수 신세가 되는 것은 아찔하기만 하다.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한 학자금 대출 원리금조차 갚을 길이 없다.

누구는 부모님 등쳐먹지 말고 자립하란다. 눈높이를 낮추면 기어들어갈 일자리가 많단다. 생뚱맞은 훈계라도 채찍질이다. 눈높이를 낮추면 백수 신세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건 맞는 소리 같다. 나아가 눈높이를 낮춰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행정인턴 일자리라도, 시중의 알바 일자리라도 열심히 하면 부모님 등쳐먹지 않고 자립할 수 있단다. 이건 사기다. 눈높이를 낮춘 일자리를 통해 졸업 후 자립이라 함은 어림 반 푼어치 없는 정말 귀신 씨나락까먹는 헛소리다.

백보 양보하여 운 좋은 이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우선은 일자리에서 절대 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비정규직 고용연한을 4년으로 늘리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다. 권리 주장하다가 짤리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다. 일하면서 다치지 않아야 하고 정말 몸이 건강해야 한다. 눈높이를 낮춘 일자리는 일은 빡세고 급여는 낮다. 최저임금도, 4대 보험 보장도 없기 십상이다. 중병이라도 걸리고 산재사고라도 당하는 경우 손 벌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무조건 고시원에 살아야 한다. 고시원 월세도 만만찮다. 쥐꼬리만 한 급여로 살아갈 곳이 고시원이 아니라 집이라면 행운아다. 연애, 결혼, 임신은 함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꿈도 꿔서도 안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로또 행운을 기대하는 편이 낫다. 신용불량자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게 더 낫다. 다단계가 솔깃해지고 만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그들에게, 요행을 기대하는 그들에게 저항을 기대할 수 없으니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본이 항거불능의 그들을 이용하여 고통분담 대타협의 매서운 공세를 취하는 게 틀림없다.

자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더하여, 신입사원과 기존 사원의 임금의 갭까지 유도하는 작금의 사태는 민주노총이 빠진 노사민정 대표자 회의에서 고통분담 대타협 합의의 후과다.

자본은 안다. 그들에게 손해를 볼 장사가 절대 아니다. 원래 줄 돈에서 나눠서 고용할 뿐인데. 그들에게 요구할 고통분담의 목록은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조용히 사라지고, 자본의 손해를 강요하는 시도는 불순하게 만든다. 마침내 노동자 전체에게 임금삭감을 강요하는 형국이 도래하고 있다. 자본이 취하는 절대 이득이다.

 

 

090311web06.jpg사진 출처 - 경향신문



   취업 준비하랴, 면접 보랴 허덕이며 불안과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을 인질로 잡고 노동자 전체를 상대로 최악의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다. 꽃놀이패를 쥐고 즐기는 자본의 미소가 느껴진다.

저항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본의 의도는 잘 보이지 않으리라. 허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대졸 초임 임금삭감이라는 반노동자적 작태를 보며 노동자에게 고통과 피해를 전가시키는 이 얄팍한 구조를 어찌 방치할 것인가.

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의 위기를 서민대중의 생존의 위기로 치환하는 그들의 작태를 용인할 수는 없다. 경제위기에서 자본의 위험을 회피하고자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행태에 맞장을 떠야 한다. 자본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들의 요구에 절대 순응하지 아니하며, 그들을 향해 노동자가 단결하여 연대하고 저항하는 바로 거기에서 노동자의 희망이 도래하고 자본으로 말미암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경제가 열린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