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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누구 편일까요?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1:32
조회
265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 들어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런 물음을 대할 때마다 대번에 머릿속에서는 이른바 ‘통박’부터 굴러가기 시작한다.

‘왜,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 데는 필자가 종교 신문에 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고는 하나 필자의 시각이 그리 객관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텐데 왜 이렇게들 묻는 지 그 의도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단순해서 어쩌면 묻는 이가 실망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잘 모르는 거지요.”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초강대국 미국마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아니 눈치 보게끔 만드는 유대인들이 세운 나라 이스라엘. 그래서 한때 그 위세가 부럽기까지 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분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무슨 일 당할 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정도만 나온 이들이라면 유대민족이 창조주께서 택하신 선민이고 그 때문에 그들의 선민의식이 대단하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필자도 중학교 도덕시간에 중동전쟁이 터지자 아랍인 유학생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귀국을 안 하고, 이스라엘 유학생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귀국했다는 전설 같은(?) 중동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애국의 표상인 양 귀가 닳도록 들은 기억이 있는지라, 더구나 우방인 미국과 절친한 대단한 나라라, 찬양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우러러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과대 포장된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며 그 ‘선민의식’이 안타까울 때가 적지 않다. 특히나 내면과 실재에서 드러나는 괴리를 대할 때면 인간적으로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현재 주한 이스라엘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갈 카스피(Yigal Caspi) 대사의 경우가 한 예가 될 만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으로 사상자가 1000명을 훌쩍 넘어선 데다 유엔 시설까지 폭격으로 파괴돼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센 가운데서도 카스피 대사는 국내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이 팔레스타인 무장정치조직인 하마스 탓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카스피 대사를 거론하는 것은 3년 전 쯤 그가 이스라엘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이스라엘 현지에서 만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는 만면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웃음으로 먼 이국에서 온 이들을 환대하던 평화주의자였고 자신은 이스라엘 땅에서 5%도 되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근본주의자들과는 다름을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만찬 중 자신은 근본주의자들과는 달리 유대인이 먹지 않는다고 하는 돼지고기나 새우 같은 것도 먹고 필요에 따라서는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까지 얘기했다. 필자가 놀랐던 것은 비록 공개되지는 않을지언정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가 근본주의적인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선선히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그는 “나는 유대인이지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유대인이 아니다”고까지 했다.

 

 

 

090129web02.jpg이갈 카스피 대사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 그의 태도에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분리장벽 설치문제가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들의 과민반응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민의 정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 사태는 전쟁도 아니고 하마스를 제거하는 군사작전일 뿐”이라고 하니 몇 년 새 영판 딴 사람이 된 것인지 어수룩한 우리가 속았던 건지 헛갈린다. 이도 아니라면 그가 그토록 아니라고 했던 5%도 안 되는 ‘근본주의자’들에 끌려 다니는 신세로 전락해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기억과 현실의 혼재 탓일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 분쟁에 대한 질문은 결국 “당신은 둘 가운데 누구 편인가” 하는 조금은 과격한 물음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민족이 유대민족이니 이스라엘 편이요”라고 하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모습일까.

하지만 유대인이나 아랍인 모두 한 할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민족이란 성서상의 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이스라엘이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라는 내 의심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고민하시는 하느님의 혼란도 좀 생각해줄 때가 되지 않았는지 이스라엘에 묻고 싶어진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