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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체제를 위협하나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1:35
조회
257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와는 아주 간략한 인연이 있다. 내가 경찰청에 출입할 때 그는 경무기획국장이었다. 경무기획국장이라는 자리가 주로 내부 살림을 챙기는 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유독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보였다. 경찰보다는 경제부처 공무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라고 할까. 일본 파견 생활을 오래 했다는 그의 자기소개가 합리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서울경찰청장으로 승진한 그는 갑자기 기존의 자기 이미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승진 후, 유례없이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내던 그의 경찰청장 내정 소식이 들려올 무렵, 용산 참사가 터졌다.

용산 참사 직후, 청와대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할 것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대로 밀어붙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조중동을 중심으로 철거민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기사가 쏟아지더니, 수사를 시작한 검찰은 화재원인을 철거민이 제공했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갔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찰청장 내정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수사가 끝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불법 폭력 행위를 일삼다 스스로 죽은 걸 왜 경찰이 책임지나’라는 선언으로 들렸다. 결과적으로 예상이 들어맞아 도리어 참담했다.

며칠 전, 알고 지내는 한 대기업의 홍보담당 과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용산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하려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부잣집 도련님 스타일의 외모를 가진 그의 평소 성향을 생각하면 뜻밖이었다. 문화·예술에 관한 주제에서는 얘기가 잘 통하다가도 사회적인 주제, 예를 들어 조중동을 거론하면 무척 부담스러워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정권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이제 못 참겠네요. 임계치에 다다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090205web01.jpg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0일 밤 서울 양천구 목동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탤런트 박상원씨, 조국 서울대 교수, 김형민 에스비에스 부국장,
이 대통령, 정갑영 연세대 교수, 김민전 경희대 교수. 청와대 사진기자단         사진 출처 - 한겨레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 정부가 국민을 싸움의 대상 혹은 제압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번 무너지면 계속 밀린다.’는 식인데, 이건 정치이념이라기보다는 전투 개념에 가깝다. 조선일보 칼럼조차 사마천의 표현을 빌려 “각박한 법치”라고 우려할 정도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싸우려 드는 정부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백낙청 선생은 “내년 봄에 대규모 군중시위가 벌어지는 일은 그 누구도 막기는 어려울 듯하며, 정권이 하기에 따라 겨울이 채 가기 전에 그런 사태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예견했는데, 이 정부는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는 듯하다. 사실 집권 2년차에 대규모 군중시위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예상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이 정부의 일관되고 비타협적이며 투쟁적인 노선 때문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새삼 들이댈 필요도 없다.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이 정부의 세금정책은 조선 후기의 삼정문란을 연상케 한다. 부패한 집권세력과 아전들의 학정을 견디다 못한 민중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란을 일으켰고, 결국 나라가 망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 부자와 일부 집권세력만을 위해 일반 국민과 가난한 서민들을 짓밟는 철권통치는 반드시 거대한 저항을 부르게 돼 있다. 용산 참사는 그 신호탄이다. 여기에 권력형 부패 스캔들마저 터진다면 전 국민적 공분이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정부야말로 체제 위협 세력이 아닌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가리타니 고진은 역사가 6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역사는 30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박정희가 비극이었다면 이명박은 희극일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건 나만의 감상(感傷)일까.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