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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은 군인과 아이를 구별하지 못하네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01:28
조회
317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가 있더군요. 방송에 하도 많이 나오니 아무래도 제목이 수상해서 가사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헤어짐의 아픔이 총 맞은 상처처럼 가슴을 뚫어 추억이 흘러넘친다는 내용이지요. 그 노래를 무심히 흥얼거리는 아이에게 슬쩍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총 맞으면 넌 어떨 것 같니?”

전쟁 기념관에 갔더니 갖가지 무기가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구한말 의병들이 썼다는 날카로운 죽창을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친구가 사진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또 슬쩍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저 죽창에 찔리면 넌 어떨 것 같니?”

각종 언론을 통해서 쏟아지는 전쟁보도를 보면 마치 전쟁 기념관에 들어가 잘 만들어진 전쟁 찬양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이 전쟁의 정치적 배경이 무엇인지, 어떤 무기를 동원해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였는지, 서로간의 군사력을 비교 분석하고 누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에 대한 예상 답안까지 내놓지요. 덕분에 우리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어느 마을을 포격했는지, 아파치 헬기가 얼마큼의 포탄을 떨어뜨렸는지를 알고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도 압니다. 그러나 폭격을 당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어 갔는지의 과정을 설명해주는 언론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TV에서 포연에 휩싸인 폐허의 도시와 한방에 웅크리고 기도하는 겁에 질린 가족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금방 숨이 넘어간 듯한 아이의 머리를 무릎에 받치고 뺨을 비비는 어머니의 비명소리엔 눈물이 나기도 하구요. 그러나 그뿐입니까? 유감스럽게도 전장에서의 주검은 그 형체가 온전한 것만으로도 축복일 만큼 비참합니다.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 제멋대로 펄떡이는가 하면, 쏟아진 내장을 뱃속에 주워 담으며 위생병을 부르짖는 병사가 있고, 단 한방의 총성에 죽음의 고통조차 느낄 사이도 없이 풀썩 쓰러지는 여인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피 흘리는 젖가슴을 울면서 파고드는 어린 아기도 있습니다.

인종청소라는 섬뜩한 목표점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남쪽 라파 난민촌까지 공습하는가 하면 가자 씨티에 있는 유엔건물도 폭격했고 급기야 시가전까지 감행했습니다.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를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뉴스를 보거나 신문만 뒤적이는 것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졸일 때가 많습니다.

 

091221web07.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쟁기념관에 갔습니다. 구석기 시대에 쓰던 돌도끼나 외날찍개 등은 이름의 살벌함에 비해 외려 앙증맞습니다. 잘 벼려진 삼인검, 사인참사검은 내 심장을 세 번쯤 포개 놓고 뚫어도 뚫릴 만큼 날카롭고 길쭉합니다. 한국전쟁 때 썼던 총포류부터 현대화된 각종 최신장비까지 5천년 역사 속의 무기들을 총 망라한 듯 보였습니다. 죽임의 역사를 한데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저 무기들로 인해 나의 사지가 찢기는 듯한 상상을 하며 몸서리치는 순간 어린아이하나가 전시된 천자총통 위에 엎드려 포 쏘는 시늉을 하고 엄마는 그 모습을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죽였나”를 전쟁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자연스런 행동과 부모의 모습에서 미래의 또 다른 전쟁을 예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몇 해 전 미군의 개(犬)가되어 음부를 드러낸 채 그들의 군화를 핥는 아브그레이브 수용소의 이라크 포로를 우리는 기억 합니다. 그러나 윤간 뒤 생매장 당한 여고생과 젖가슴이 도려진채 나무에 묶여 표창 연습의 대상이 되었던 젊은 빨치산의 아내와 딸이 우리의 역사 속에 있었음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몽키 스패너에 혓바닥이 뽑히고 손톱과 발톱 밑에 대못을 박았으며 팔은 팔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사지를 찢어 전봇대에 전시했던 일이 (이산하의 시 한라산에서) 우리의 역사에 여전히 한으로 남아있음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빨치산 사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그 어미에게 물리는 참혹한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음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전쟁을 기념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꼭 해야 한다면 전쟁은 “어떻게 사람을 죽였나”가 아니고 “어떻게 사람이 죽었나”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폭격으로 죽은 아들을 묻고 돌아온 새벽. 또 다른 폭격으로 이미 숨져있는 딸아이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아비의 심정으로 피눈물의 역사를 선명히 기록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중의 역사입니다. 전쟁은 “지배 계급”에 의해서 준비, 결정, 조직되고.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전쟁을 치르며, 고통 받는 것은 바로 일반 민중이기 때문입니다. (베너 빈터스타이너)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음보살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어진 미소를 중심으로 양쪽에 각 20개의 손이 25개의 다른 세계를 계도하니 합이 천수(千手)요, 그 손에 눈이 하나씩 달려있으니 천안(千眼)이 됩니다. 그 많은 눈으로 뭇 중생들의 고단함을 살피고 그 많은 손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어 지옥불에나 떨어질 가난한 영혼들까지도 살핍니다.

그러나 총탄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습니다. 아이와 군인을 구별하지 못하고. 병원과 군수공장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유엔 인권 이사회의 이스라엘 규탄 결의안에 기권을 하고 내놓은 정책과 추진하는 입법마다 민생을 옭아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부도 눈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입법을 꿈꾸면 어떨까 상상 합니다. 꽃이 준비 되지 않으면 그 어떤 싸움도 할 수 없습니다.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했으나 정 그럴 수 없다면 꽃으로만 사람을 때릴 수 있습니다. 만약 법을 어길 시에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자연생태교육 몇 년. 평화교육 몇 년 등의 형량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 총탄이 우유공장과 탱크를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총탄이 날아온 그 숫자만큼 나무를 심어요 평화의 나무를
      포탄이 날아온 그곳을 향해서 노래를 불러요 평화의 노래를“

                                               -졸작 나무를 심는 사람들 중에서

 

물론 천수관음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요. 더구나 미디어 관련 7대 법안이나 사회개혁으로 포장된 반인권 법안에 골몰하고 있는 국회에서 언감생심 이런 꿈이나 꾸겠습니까?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