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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국제정치: 반공-친미-친일의 트라이앵글(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1-17 10:10
조회
501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제강점기의 후유증은 세기가 바뀌어도 지속된다. 해방 이후 물러난 일본의 자리에 미국이 들어왔다. 한국인 상당수에게 미국은 일본을 몰아낸 해방자였다. 동시에 한반도의 남쪽에 군정을 시작한 또다른 점령자이기도 했다. 식민지 시대 엘리트 친일파들에게는 생존의 열쇠를 진 권력이었다. 일본을 대체한 미국이 친일파 청산에 나설까 두려워하며 이들은 친미적 자세를 취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은 대세였지만 실제 청산까지는 하지 못했다.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회의’에서 격론과 진통 끝에 ‘부일협력자·민족반역자·전범·간상배에 관한 특별법률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미군정장관이 조례의 인준을 거부하면서 미군정기에서 친일파 청산은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남조선과도입법회의 자체에도 친일파들이 상당수 포진해있었지만, 패전국 일본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공산세력의 남하를 막고자 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친일파를 단죄하면서 일본의 친미화에 힘을 뺄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식민지 엘리트들은 친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닌 힘과 관용의 그림자에 숨어 자신들의 흑역사를 은폐하고, 미국이 수호하는 가치, 즉 반공주의와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일제강점기 때의 기득권을 유지했다.(홍승표, 『태극기와 한국교회』, 331-332)


 

미국식 반공주의는 식민지 엘리트들이 과거청산의 흐름으로부터 자신들을 보존하기 위한 생존수단이었다. 친일파는 친미주의자로 변신했고,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친미적 이승만 정부 시기를 지나면서 ‘반공-국가주의’가 정치의 주요 지향이 되었고, ‘반공’은 ‘국시’가 되었다. 반공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처벌하고 국민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정도까지 강화되었다. 미군정 시기 반공주의가 식민지 엘리트들의 생존수단이었다면,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를 지나면서 반공주의는 상당수 국민의 생존수단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엔 냉전적 세계관이 내면화되었다. 많은 한국인이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과 자신을 운명공동체처럼 인식했다. 미국이라는 친구와 소련·중국·북한이라는 적을 이원론적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선과 악의 도식으로 구분했다. 공산세력과의 투쟁을 성전(聖戰)처럼 여겼고, 여기에 민족주의가 개입하면서 반공주의는 더 내면화되었다. 내면화할 수밖에 없도록 정부는 강력하게 개입하고 내내 추동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 미국은 ‘북조선 괴뢰정권’의 적화야욕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는 구세주이자, 반공, 민주, 발전 등의 ‘교리’를 통해 한국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했다.(강인철, 『경합하는 시민종교들』, 제2장)


 

반공주의는 미국 중심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공산주의=억압’, ‘민주주의=자유’라는 도식이 일상화되면서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마치 국호처럼 사용되었고,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이나 ‘반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말에는 반공과 친미가 전제되어 있었다. 반공주의와 친미주의가 동전의 양면 관계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의 엘리트 친일세력들은 동전의 양면 모두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이런 흐름에 익숙한 이들이 보수의 주류를 형성한다. 한국의 보수는 특히 정치적 차원에서 일본과 미국의 현실적 힘과 타협하며 친미-친일-반공의 트라이앵글을 형성해왔다. 보수 정부일수록 ‘친일적 친미’를 기반으로 ‘반공’을 내세워왔다. 해방과 전쟁 이후 수십 년이 넘도록 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런 구도는 계속되어왔다. 2023년의 대통령도 전형적인 반공-친미-친일 도식 안에 갇혀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 순으로 멀리 하고, 미국, 일본 순으로 가까이 한다. ‘친일적 친미’ 혹은 ‘친미적 친일’의 자세로 반공/반사회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북한과의)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 ‘(북한을) 100배, 1000배로 때리기’ 같은 말, ‘미국의 핵우산’, ‘자체 핵보유’ 같은 발언을 예사로 하는 것이 그 사례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국내 기업이 대신 하게 한다든지, ‘일본의 군비증액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발언으로 일본 보수 정치의 치밀한 전략을 긍정하는 모양새도 그렇다. ‘UAE의 적/위협국가는 이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UAE에서의 발언은 우리의 외교가 아닌 미국의 외교를 대신 해주러 간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치명적이다. 이들은 모두 친미, 친일, 반공이라는 보수 주류의 흐름이 거의 체화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출처 - 중앙뉴스


근본 문제는 이런 트라이앵글이 아주 낡았다는 점이다. 세계는 이런 구도 안에 있지 않다. ‘반공’ 같은 반대와 분열의 프레임에 갇혀서는 지구마을 시대를 감당하지 못한다. 생태위기에 내몰린 인류세 시대에는 도리어 자멸로 이끄는 위험한 태도다.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분열적 대립을 넘어서는 상위의 질서를 탐색하고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국가영향력이 세계 6위란다. 지구 전체를 향하는 안목을 갖추고 인류가 박수를 보낼 만한 정책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반대, 보복, 분열을 정당화하는 프레임 정치는 더 이상 안된다. 상대방의 마음과 다양한 입장을 이해할 줄 아는 인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그것이 ‘크게[大] 거느리고[統] 다스린다[領]’는 대통령의 무한 책임과 중차대한 의무다. 제발 불가능한 주문이 아니길 빈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