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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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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어느 S대 법대생에 관한 오래된 기억(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1-10 09:34
조회
470
 

최낙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법무부 국정감사에 관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일개 임명직 국무위원이 "저는 다 걸겠다. 장관직을 포함해 앞으로 어떤 공직이든 다 걸겠다. 의원님은 무엇을 걸 것인가" 했다는 기가 막힌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는 몽땅 올인! 쫄리면 뒤지시든가” 하는 어떤 영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국정감사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무슨 화투판의 끗발을 확인하는 일과 같은 것일까요? 관련 동영상을 찾아봤더니 자신에게 뭔가 불리하다 싶으면 무조건 발끈하며 떼를 쓰는 철부지 같기도 해서 조금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그 기사와 동영상을 보고 나니 문득 30여 년 전에 시시비비를 가렸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기에 이야기가 분명하고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했습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실향민의 자식으로 서울 변두리에서 나고 자란 저는 ‘고향’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은 듯한 A라는 친구가 자기 집으로 며칠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집은 경북의 P라는 시 근교였습니다. 지금도 비슷하겠지만, 당시 지방은 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거의 시골과 같았습니다.


친구의 기꺼운 초대로 P시의 시골 같은 근교에서 이틀 정도 고향의 맛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A가 자신의 고교동창 B를 만나기로 했으니 P시에 나가 같이 술을 한잔하자고 했습니다. B는 우리와는 달리 전교 1, 2등을 다퉜으며 S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했습니다. A는 자신이 B 같은 대단한 친구와 친하다는 것을 은근 자랑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녁 무렵 시내에서 처음 만난 B는 그야말로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웃는 얼굴로 A와 저를 번갈아 보는 B의 눈빛과 표정은 뭔가 당당해 보였습니다. 간단한 수인사를 마친 후, 점잖게 말을 아끼던 B는 술 몇 잔을 마신 후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술도 잘 못하고, 말도 잘 못하지만...”이라고 시작된 그의 말은 곧 연설처럼 길어졌습니다.


“이 사회라는 게 말야... 정의라는 게 말야...”


1차, 2차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 들어온 여인숙에서까지 B의 말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곤했던 친구 A가 B에게 “그래, 니는 똑똑하니까... 알았다. 니 말이 다 맞다. 이제 그만 자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A의 얼굴을 쳐다보던 B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호통치듯 말했습니다.


“알아? 니가 뭘 알아?”


갑작스런 B의 태도에 잠시 놀랐던 A가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뭘 알겠나, 됐으니까 그만 자자.”


“되긴 뭐가 돼?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지금 잠이 오냐?”


B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여인숙 유리창에 재떨이를 던졌습니다. 유리창이 깨지고 A와 B의 말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여인숙 주인이 올라왔습니다. 여인숙 주인을 보고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A와 달리 B는 더 흥분한 듯 보였습니다. B가 여인숙 주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퍼붓듯이 소리쳤습니다.


“아저씨가 뭔데, 남의 방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오는 건데?”


A와 B의 말다툼이 이제 B와 여인숙 주인의 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숙 주인이 막무가내의 B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여인숙 주인의 속이 썩어들어갈 때쯤 다 필요없다는 듯이 대뜸 B가 말했습니다.



출처 : wallpaperbetter


“아저씨, 우리 경찰에 가서 시시비비를 따져볼까?”


황당하기 짝이 없는 B의 말에 A는 깜짝 놀라 여인숙 주인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우리는 파출소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파출소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저희를 불렀습니다.


“니들 뭐 하는 쉐끼들이고?”


잔뜩 졸아 있던 저와 A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OO대학 OO과 1학년 학생입니다”


“학생? 이 쉐끼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서운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던 그 경찰관은 고개를 돌려 우리와 달리 빳빳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B에게 물었습니다.


“니는? 니는, 어느 학교 다니는데 그래 꼴값을 떨고 있나?”


“지는 S대 법대 다니는데예.”


B의 대답에 그 경찰관은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A와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여인숙 주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 사장님, 혈기왕성한 젊은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경찰관의 S대 사법고시... 수재... 크게 될... 어쩌구 하며 이어지는 말에 여인숙 주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파출소를 나왔습니다.


그때 소장쯤 되어 보이는 경찰관은 B에게는 어색한 미소와 격려의 말을, A와 저에게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파출소 문을 나서면서 A와 저를 쳐다보는 그 때 B의 표정은 “시시비비 확실히 가렸지?”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해 가을에 자퇴했던 A는 바람대로 한의사가 되어 있는지, S대 법학과를 다녔던 B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집니다.


30여 년 전 일을 곱씹어보자니 정말 시간은 쏜살같이 빠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불과 6개월여... 시간은 마치 멈춰 있는 듯이 더디게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남은 4년 반이라니! 시간은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시비비(時時非非)라고 하면 엉터리 말장난이겠지요?


최낙영 위원은 도서출판 밭 주간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