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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를 위한 변명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22:20
조회
272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숙제를 푸느라 사회 각계에서 말들이 많다. 이 많은 말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를 빌며 숟가락 하나 얹어야겠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가장 책임이 큰 집단으로 검찰과 언론이 거론되고 있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하이에나 근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까. 스스로 몸담고 있는 업역에 대해 심하게 말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차제에 검찰과 언론이 정명(正名)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주지하다시피 검찰과 언론은 공생 관계다. 검찰은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고 언론은 뉴스 소스를 얻는다. 사실 검찰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정부 기관 또는 기업들이 언론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왜 검찰과의 관계가 유독 문제인가.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스스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특종 혹은 단독 보도에 대한 욕심, 속보경쟁 때문이다. 누구누구를 무슨 혐의로 소환할 계획이라는 기사는 전체 브리핑 형태보다는 특정 언론의 단독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공식 브리핑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사안일 경우 검찰은 이런 식으로 특정 언론사에 정보를 흘린다. 낙종한 언론사들은 사실 확인에 바쁘고, 반까이(‘만회’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하려고 열을 올린다.


   언론들이 마차를 끄는 말이라면 검찰은 뒤에 앉아 고삐를 쥐고 있는 마부다. 진행 방향과 속도는 전적으로 검찰이 좌우한다. 검찰이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아젠다 세팅을 언론이 아니라 검찰이 하게 된다. 프레임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한 검찰의 브리핑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및 가족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다. 검찰의 수사망이 노무현 본인을 향해 점점 죄어오고, 언론사들의 경쟁이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이 수사는 정치적인 수사니까 나는 물먹어도 돼, 라고 생각하는 기자는 이 세상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스크도 없을 것이다.

지난 주 한겨레신문은 이례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사의 검찰 발 기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자기비판은 사실 한겨레신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사 차원에서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일개 기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겨레의 검찰 출입 기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취재하고 기사를 썼을 것이다.



090610web01.jpg지난 5월 30일 오후 3시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이 대검청사별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수사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는 자기비판과 함께 검찰 위주에서 법원 위주로 보도의 중심을 옮기거나 적어도 검찰의 기소 전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안 기사를 썼다. 그러면서 한 언론사라도 앞장섰으면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 언론사는 당연히 한겨레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계에서 촌지 문화를 뿌리 뽑는데 선봉이 되었던 한겨레가, 모든 언론사가 권력에 굴종하던 시절 과감히 성역을 깨는 보도를 했던 한겨레가 앞장서야 한다. 검찰 발 기사를 두고 언론끼리 벌이는 특종 경쟁은 업계 용어로 이른바 ‘시간차 특종’이다. 몇 시간이나 늦어도 하루가 지나면 모두가 알게 되는 내용이다. 검찰의 입에서 나온 정보이기 때문에 검찰 말고는 검증할 방법도 없다. 이 불안한 특종을 향한 경쟁이 역으로 검찰의 권력을 이렇게 비대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몇 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이 남는다. 검찰은 고급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기자들은 기사를 매개로 검사와 접촉하고 정보를 얻는다. 때로는 기자가 정보 생산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기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정보를 고급 정보로 보고 계속 좇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난감한 문제가 있기는 하다. 언론의 취재 활동을 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만약 검찰이 여당이나 청와대의 비리 혐의에 대해 단서를 잡고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개연성 또한 높다. 수사를 하지 않다가도 언론 보도에 따라 마지못해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쉽게 결론 낼 성질의 주제는 아니지만,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런 정보들은 대개 해당 기관 밖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검찰 출입을 한 적이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경험상으로 보면, 검찰도 비슷할 것이다. 검찰 발 기사를 포기하는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또 하나, 그럼 검찰 출입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기자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검사 방에 드나들기보다는 재판정에 갔으면 한다. 순진한 이야기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서민들이 법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주눅이 드는지 기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많은 기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누구를 (자리에서) 날리거나 하는 특종을 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을 살리고,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 잡는 특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나쁜 특종에의 유혹을 떨쳐 버리고, 낙종의 민망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차별화된 언론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특종 경쟁이 나쁘다는 주장이 아니다. 빨리 쓰고 먼저 쓰는 건 언론사의 1차적 존재 이유다. 그러나 검찰 발 기사에 관한 한 과도기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인권 보호 차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이자 우리 사회 권력구조를 정상화하는 첫 단추에 해당하는 과제다. 어떤 국회의원이 몇 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다는 기사가 더 이상 특종이 아니게 될 때(아무도 기사를 베껴 쓰지 않으면 특종이 아니게 된다) 비로소 검찰 중심의 법조 보도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에 쏠린 과도한 권력도 제자리를 찾으리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내가 신문사 안에서 몇 년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꽤 많은 동료들에게 이런 문제의식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계신 분들에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에게도 용기를 줬나 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