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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적들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9 22:06
조회
252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후 가히 ‘김수환 추기경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열풍이 우리 사회 곳곳에 불어 닥쳤다. 이 신드롬의 기미는 이미 김 추기경 선종 직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명동성당으로 이어진 40만 명이 넘는 추도 대열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 가는 길에 각막을 기증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전 사회적인 신드롬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매스컴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대로 김 추기경 사후 장기기증 신청이 급증하면서 장례 기간을 포함해 일주일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장기기증을 희망한 이만 150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천주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와 사회 각 분야도 김 추기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해외 언론들까지도 김 추기경으로 빚어진 기이한(?) 현상을 앞 다투어 보도하며 ‘기적’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까이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미국이나 스페인 등지에서도 김 추기경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불어 닥친 현상을 특집으로 다루며 그의 이름 앞에 ‘성자(聖者)’라는 표현을 붙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보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품게 됐다. 김 추기경의 삶과 그의 죽음에 어떤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고인의 살아생전 잠시나마 이어졌던 인연의 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기자로서의 삶에 발을 들여놓고 얼마 되지 않아 선배 기자로부터 물려받은 취재처 가운데 하나가 당시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 집무실이었다. 알려진 대로 김 추기경의 하루 일정은 거의 분 단위로 짜여 있어서 어떤 때는 거의 하루 종일 추기경 옆에 붙어있다시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큰 명절이라 할 크리스마스 때나 부활절 무렵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장소를 옮겨 다니며 수행해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김 추기경의 모친과 필자가 같은 종씨여서 종종 추기경의 살가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런 고인과의 만남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추기경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었다. 어느 해 성탄절 무렵인가에는 오전 오후에 걸쳐 몇 군데의 철거민촌과 사회복지시설들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 때마다 추기경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따뜻한 아버지’나 ‘인자한 할아버지’ 상 그것이었다.



090428web01.jpg철거민촌을 찾은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 MBC 스페셜



   그런 김 추기경의 상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 고인이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고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지 30년 만에 물러날 당시 이미 77세로 연로한데다 지병까지 있었던 김 추기경이었지만 은퇴 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누구 못지않은 권위를 누렸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추기경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던 필자의 눈에 추기경의 적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물론 이전에도 추기경 주위에는 그를 흠집 내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때만큼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추기경이 지병 등으로 집무실을 벗어나 가난한 이들 가운데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줄어들자 고인의 주위는 이른바 ‘방귀깨나 뀌는’ 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그의 육체만큼이나 정신도 어려움에 놓이게 됐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고인이 사랑하며 늘 관심을 기울이던 ‘가난’과 그 가난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멀어지면서 ‘성자’로서의 그의 삶에 흠집이 하나둘 늘어갔던 셈이다. 이미 김 추기경이 갔음에도 그의 적들은 지금도 활개를 치며 다른 대상을 찾아다니고 있다.

김 추기경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관심’이 사그라질 때 내면으로부터 자신의 적이 생겨나고 결국에는 그 적들에게 서서히 질식당하고 마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존재가 삶으로 보여준 진리라 더욱 시리게 다가온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