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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논란과 외모지상주의 (김창남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6:03
조회
187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키가 180센티미터가 안 되는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으로 시끄럽다.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대생의 이 발언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비난을 샀고 급기야 다급해진 KBS가 제작진을 교체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우려 하지만 네티즌들은 아예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단 그 여대생의 어이없는 발언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졸지에 루저라는 낙인을 받게 된 수많은 남성들이 분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런 발언이 논란을 낳으리라는 예상을 제작진과 그 여대생은 정말 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방송에서의 발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샀던 연예인, 방송인들의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대본에 따랐을 뿐’이라는 여대생의 해명이나 ‘대본은 강제적인 게 아니라’는 제작진의 변명은 더욱 무책임하다. 그런 식의 대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시청률 경쟁을 위해 일부러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자 한 게 아니라면, 이 프로그램 제작진의 한심한 ‘수준’을 폭로하는 일일 뿐이다. 이 발언이 나오게 한, ‘키 작은 남자와 사귈 수 있냐’는 질문부터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사실 이 ‘미수다’란 프로그램은 오래 전부터 교묘하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면서 출연한 여성들을 관음적 시선의 대상으로 만들어온 혐의가 짙다. 외국 여성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모습을 짚어본다는 취지로 가끔 의미 있는 담론을 들려주었던 예가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외국 여성들의 외모와 성적 매력을 강조하면서 남성적 시선의 눈요깃감으로 만들어왔다. 제목부터 ‘미녀’를 내세우고 있지 않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진을 교체하면서까지 이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키가 180이 안되면 루저”라는 여대생의 말은 그녀가 남달리 특별한 가치관이나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나온 말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는 어떤 ‘상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남녀를 불문하고 키 크고 잘 생긴 사람과 키 작고 못 생긴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이미 우리 누구나 알다시피 분명히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키와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상품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있다.

육체적 매력으로 평가되는 인간의 상품 가치를 편의상 육체 자본이라 불러 보자. 주목할 점은 육체 자본이 중요하다는 건 남녀를 불문하고 같지만 그 내용에서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남자의 경우, 육체 자본은 다른 사회적 가치(돈이나 지위, 권력 등)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의 경우, 그것은 온전히 육체 자체가 가진 가치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의 상품화, 요컨대 성적 가치의 결정성이 더 중요해 지는 것은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다. ‘미수다’의 여대생이 한 발언은 이제 남성의 성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압박도 여성 못지않게 강화되고 있음을 은연중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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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KBS 홈페이지


육체 자본은 대체로 타고난 유전적 특성에 의해 우선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게 결정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성형 수술, 피부 관리, 체형 관리, 헬스 센터, 다이어트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육체 산업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매력을 키워주는 것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 육체 자본을 높이려면 그만큼 돈이 든다는 말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돈을 들여가며 육체 자본을 높이려는 것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육체 자본이 클수록 더 많은 경제 자본을 얻어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육체적 매력이 높은 사람)이 이를 통해 돈을 벌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많은 육체 자본의 소유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육체 자본과 경제 자본은 상호 교환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 가치, 요컨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다른 가치를 압도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 자본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 특히 돈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언제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의 상품화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이며 삶의 조건이다. 그 속에서 시시각각 육체 자본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당연히 엄청나다.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아마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 떨어지지 않을 게다. 그런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 가운데 하나가 TV이다.

우리나라 TV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미인이고 미남이다. 그리고 물론 섹시하다. 언제부터인가 TV에서 공개적으로 섹시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수치스럽지 않게 되어 버렸다. TV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서슴없이 ‘섹시하시네요’ 같은 표현을 쓰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말을 한다.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데 대한 분노보다 자신의 육체 자본을 높이 평가해 주는 데 대한 고마움이 앞선다는 말이다. 연예인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섹시함을 과시하고 남들로부터 섹시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다. 그만큼 성에 대한 사고가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변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제 육체 자본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사회의 지배 가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수다’에 나온 문제의 여대생의 발언은 그와 같은 사회적 가치와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상식’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키 큰 사람이 더 좋다’는 수준이 아니라 180이라는 구체적 수치와 루저라는 자극적 표현을 통해 표현됨으로써 공분을 자아낸 것일 뿐이다. 자신의 감정과 상식에 충실할 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발언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사고할 만한 지성은 가지지 못했던 한 여대생을 두고 욕하고 돌팔매질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