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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교육, 범죄학교를 교정시설로 바꾸는 지름길 (곽노현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6:00
조회
244
-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제공받을 재소자 권리를 중심으로

곽노현/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 재소자 인권의 의미

지난 2008년은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반포된 세계인권선언이 60돌 환갑을 맞는 해였다. 세계인권선언은 ‘우리 시대 인류양심의 최고의 표현’이자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약속’의 핵심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인권, 즉 존엄성을 누리며 사람답게 살 권리를 존중, 보호, 증진하겠다는 것. 이러한 약속은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재소자도 비켜가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약자와 소수자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한테도 인권이 보장될 때 강자와 다수자가 인권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재소자로 통칭되는 교정시설의 수용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넘어 정신적, 도덕적 약자라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약자집단이다. 재소자의 인권상황은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인권보장의 실질적 척도로 기능한다.
재소자집단의 프로필

우리나라의 재소자 수는 08년 9월 현재 47,408명이다. 이중 31,842명은 기결수로 선고형량을 복역 중이고 15,503명은 미결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 63명은 감호처분대상이다.

기결수는 살인범 3,957명, 강도범 4,121명, 조직폭력범 1,838명, 폭행상해범 988명, 사기횡령범 3,545명, 절도범 5,393명 등이다. 기결수 중에는 누범(16,177명)이 초범보다 많다.

연령별로는 40대(9,846명)가 가장 많고 30대(9,350명), 20대(6,384명), 50대(4,378명) 순이다. 60대 이상도 1,269명이나 되고 16세 이상 20세 미만도 251명이다.

그 밖의 재소자 통계, 예컨대 학력별 통계라든가 형기별 통계 등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소자의 대부분이 빈곤층 출신으로 학력이 일반시민과 비교해서 현저히 낮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교육권, 특히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 특히 문해(literacy)교육 등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선진국 초입에 서 있는 지식경제사회에선 중등교육도 인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은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기 때문에 초중등학교의 중도탈락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초중등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지식주기가 짧아지는 시대상황에서 교육권은 불가피하게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로 바뀐다. 우리 헌법도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국가에 평생교육 진흥의무를 부과한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발생한 초중고교과정 탈락자 수는 초등학교 중퇴자 16,793명을 포함해서 총 55,525명에 달했다. 이들 중 43%(23,645명)가 학업에 복귀하지 않았다.

미복귀 탈락자 중 상당수는 교정시설로 흘러들어온다. 학업중퇴 수용자는 수용기간 중 중단됐던 초중등교육을 계속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재소자교육의 모습

교정시설에선 다양한 학과교육과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학과교육으로는 수용자의 학력수준에 따라 초중고교 검정고시 교육, 방송통신대학 교육, 독학학위 취득교육, 전문대학 위탁교육이 실시된다.

문자해독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가장 기초적인 문해(literacy)교육이 제공되며 소년수용자에게는 방송통신고교 교육과정이 제공된다. 정보화 교육과 외국어 교육도 가능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직업교육훈련이 실시되며 출소예정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창업교육 기타 출소준비교육이 제공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교정시설은 교육훈련 측면에서 구색을 갖춘 것 같지만 실질은 딴판이다.

아프지 않은 이상 재소자는 주간에는 거실 밖에서 작업을 하든가 교육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2007년 12월 현재 직업훈련 중인 수용자는 모두 3,279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업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한 탓에 현재 재소자 중 과반수는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거실을 하루 종일 지킨다. 이런 상황에서 교정시설이 범죄학교로 둔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인문학적 평생교육의 중요성

교정당국에서는 초중등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재소자들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계속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성인 수용자에게 계속교육을 제공하는 특성상 교육내용과 방법에서 많은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007년 이래 인권연대가 교도소 내에서 인문학 교육을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방적인 인성교육이나 실용적인 직업교육과 달리 자기성찰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인문학적 교육이 처음으로 교도소 담장을 넘은 셈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고병권의 진단에 따르면 “범죄의 기술은 삶의 기술의 부족, 즉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기술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지금과 다르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당신은 인문학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적 사고역량으로서의 인문학적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은 대부분 암기대상으로 전락하는 철학사강의를 개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필요한 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깨우침을 얻는 자기성찰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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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에 진행된 안양교도소 평화인문학 수료식 모습
사진 출처 - 안양교도소



쓸모 있는 직업교육의 중요성

중범죄를 저지른 장기 수용자들은 갖가지 자격증을 취득한 후 출소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과차별이 심한데다 쓸모없는 기술교육을 받은 탓이다.

출소-실업-재범-재입소의 회전문식 인생경로를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노동시장에서 쓸모 있는 직업교육훈련이다. 효과적인 직업훈련체계를 갖추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재범의 위험을 줄이려면 교정행정의 초점을 직업교육훈련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교도소별로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교정체계 전체로서는 매우 다양하고 수준 높은 직업교육이 제공되도록 기본방향을 잡으면 될 것이다.
맺음말

재소자들은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폭력에 노출되며 사람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 동네, 학교, 법집행기관 중 어느 한군데서도 인격적 대접을 경험하지 못한 탓에 반사회적 품행으로 기운 경우가 많다.

국가의 교정시설이 단순히 자유가 제약된 상황에서 죄 값을 치르게 하는 형집행 기능을 넘어서 진정으로 수용자의 교정교화를 원한다면 수용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인권피해자’로서의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내서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무 생각 없이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관성적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인문학적 교육이다. 일자리로 통하는 실용적인 직업교육과 자기성찰로 이끄는 인문학적 교육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제공할 때 비로소 교정시설은 범죄학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곽노현 위원은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