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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마저 경제논리? (이찬수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6:20
조회
214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저출산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저출산종합대책’을 내놓고, 국회에서도 여당 중심의 ‘저출산대책위원회’가 발족되어 가동 중이며, 저출산 관련 사회적 논의가 봇물을 이룬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저출산 관련 리포트가 1401건, 논문이 260건, 전문자료 25건이 올라와있다. 이들은 대체로 저출산이 지속되면 고령화 사회가 급격히 진행되고, 생산 가담 인구, 즉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점점 더 노인 인구 부양 부담이 가중될 뿐더러, 결국 경제 구조가 악화되어 삶이 피폐해질 것이라는 논지를 편다. 그래서 육아에 대한 개개인의 경제적 구조적 부담도 줄일 수 있도록 보육시설도 확충하고 교육체계도 바꾸어야 한다며 여러 정책들을 내어놓는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프랑스, 미국 등도 같은 고민을 했다 하고 그 결과 출산율이 다소 높아졌다고도 한다.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해 출산장려책을 펼치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그 이유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제법 효과도 거둔다고 한다. 출산율이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고 있다니 말이다. 물론 이런 정책 자체는 얼마든지 긍정적일 수 있다. 좀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일단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으로 사태를 단순화시켜보면 누구든지 느낄 수 있는 일이겠으나, 출산을 장려하는 목적에 담긴 ‘비인간적’ 발상은 우려스럽다. 출산에 담긴 인간학적, 철학적 의미는 잘 묻지 않거나, 묻더라도 관료적 정책 중심의 사회에서는 곧 묻혀버리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출산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사건이다. 그 자체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그 인간학적 의미를 놓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인간적 길로 들어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생명이란 무엇인지,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성스러운’ 가치를 끝없이 물어야 한다. 생명 현상을 다른 숨겨진 의도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이 곧 파국의 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명을 생명의 원리에 맞게 키워가는 일은 그 생명을 낳은 이들, 그리고 그와 관계된 모든 이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생명의 원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자세가 ‘종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육아를 공동으로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도 확산되어야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키우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확대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 생명 출산의 주체인 여성주의적 시각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하되, 생명의 탄생을 기업 논리나 경제 논리로 몰고 가서는 절대로 곤란하다. 그리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관료주의적 시각도 늘 경계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에 의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사는 일만큼 인간다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인간이 비인간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 자명한 일도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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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산부인과병원 신생아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비인간적인 일은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런 일이 많을뿐더러, 구조 자체가 비인간적이다. 인간 세상이 왜 비인간적 구조 속에 놓이게 되었는가? 더 말할 나위 없이 인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구는 인간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 각종 갈등과 전쟁,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발생하는 인간 소외 등 각종 문제들은 사안별로 거론하기 불가능한 지경이다. 지구라는 큰 생명을 기준으로 보면 인간은 지구라는 몸에 생겨난 ‘암세포’에 비유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아이를 많이 낳으라니.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충분히 대접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도 아이를 많이 낳으라니. 물론 출산 장려가 생명에 대한 존중감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와 반대로 생명 문제마저 경제적 척도로 평가되고 장려하는 모양새라 심히 걱정스러운 것이다.

비인간적 현상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너무 많은 데서 온다. 모두 지구상에 인구가 줄어야 해결될 문제들이다. 그것은 그저 ‘기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유엔’ 등과 같은 기관을 중심으로 인구 줄이기 운동을 펼치자 제안할 필요마저 있다. 인구가 적어서 걱정인 나라가 있다면 인구가 많아서 걱정인 나라의 걱정도 덜 겸, 제대로 된 다문화사회도 이룰 겸, 그들 나라로부터 사람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지구상에도 지역 간에도 평등의 문화를 가능한대로 진작시켜아가야 한다.

인구가 줄어들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 괜한 오해에서 오는 갈등과 분쟁도 줄어들 것이고, 인간 평등, 지역 평등에도 기여할 것이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기초에 놓인 민족이나 지역 간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적극적인 다문화 정책을 펼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지구가 가난해진다면 그것은 도리어 인간화의 증거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추구해야 할 일이자 자세이기도 하다. 다 같이 좀 못살 필요가 있다. 물론 혼자만 못 살도록 방관해서는 안 되지만... 그런 식으로 자본이나 시장만능주의에 인간을 내몰고, 자본을 더 생산하는 인간만을 인간 대접 해주는 분위기는 좀 없애자. 너무 ‘나이브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다함께 좀 더 가난해졌으면 좋겠다. 다함께 가난해지면서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많다. 그만큼 인간다운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