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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와 ‘알 권리’, 그리고 교육 (황미선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09:52
조회
205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7월 13일과 14일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가 실시되었다. 소위 일제고사라 불리는 평가이다. 알다시피 일제고사는 전국에 있는 대상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봐야했던 시험이다. 교육당국은 이를 통해 아이들의 학력을 가늠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겉으로 보아선 그럴듯한 정책처럼 보인다. 그리고 학부모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그 정당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왔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지난번에 각종 비리로 구속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사교육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행한 여러 정책 중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는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의 확대를 통해 사교육 시장의 활성화에만 기여했고, 교육 관료들의 매관매직을 추동한 핵심인물이며, ‘똑똑한 한사람이 100만인을 먹여 살린다.’는 소수의 우수한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부르짖었고, 교장의 자율권 강화를 통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리교장들을 양산해낸 인물이다. 그가 첫 직선 교육감으로 당선되기 위해, 사설학원업체로부터 거액의 선거비용을 차입한 이유가 일제고사의 시행과도 연관이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한 목적이 달성된 부분도 상당부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지역과 계층을 고려하여 표집의 형태로 시행하던 시험을 전집으로 시행함으로써 수많은 문제를 양산했다. 어떤 정책이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도, 또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교육에 대한 관점이 무엇인가와 나타난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하냐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집으로 시행하면서 전국의 학교와 학생이 서열화 되었고, 이를 통해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각종 파행들이 줄을 이었으며, 소위 평균을 깎아먹는 학생들의 인권도 무참하게 짓밟혔고, 문제풀이식 시험에 좋은 성적을 내기위해 전국의 수많은 아이들이 ‘달빛 학교’와 같은 아름다운 이름을 내건 심야 야간 보충지도를 받게 하고 있다.

교육과정이란 무엇이고 학력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학교란 하드웨어에서 교육과정이란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여 독립된 주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길러내는 행위이다. 소위 우수한 교육전문가들이 만든 교육과정 속에서 개개인이 가지게 된 실력을 학력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학력을 단순히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험을 봄으로써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학력은 가르친 내용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양하게 측정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전국에서 몇 등을 하는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제고사가 그 궁금증을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해결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몇 등이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교육과정의 내용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2009년 학력평가를 위해 사용한 예산이 334억원이라고 한다. 반면에 학습부진아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은 같은 해에 243억 원이고... 여기서 일제고사가 과연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기 아이들의 등수에 집착(?)하는 학부모의 심리를 이용하여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한 술수에 넘어가지 말도록 하자. 알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하고 더구나 자라는 과정에 놓인 학생들이 기준이 되지도 못하는 문제풀이 시험의 결과로 알게 된 전국단위 등수는 미리부터 그 아이를 재단하고 속단하는 잣대로 작동하고 있고 정상적인 교육과정의 파행을 몰고 와 공교육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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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치르는 학생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끝으로 우리 모두 교육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면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각자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학교는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을 통해 벽돌공장에서 찍어낸 벽돌과 같이 똑같은 아이를 만드는 장이 되라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숨막혀하고 학교를 재미없다고 하며 다니기 싫어하는 것이다. 이런 학교 교육에서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관련하여 나는 두 가지 점을 제안하고 싶다. 일단 학교를 다양한 교육을 이행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한다.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특기와 욕구 등을 찾아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장이 학교가 되어야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모두 사교육에 일임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면 방법은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체육교과서에 수영을 필수교육이라고 하면서 거의 모든 학교에는 수영장이 없으며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 두 번째는 문제해결을 근본적인 것에서 접근해 보았으면 한다. 사회에 나가면 어차피 경쟁을 해야하니 어려서부터 경쟁에 몰입하도록 하자는 생각을 버리면 어떨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의적으로 경쟁을 선택할 수 있는 시점까지는 학교교육을 협력적 교육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든 교육내용이든 경쟁교육을 바꿔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꿔 나가 우수한 소수에 방점을 둔 교육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학교로, 그런 교육의 형태로 전환시켜 나갔으면 한다. 경쟁의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일등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미수다’라고 일컬어지는 프로그램에 어느 출연자가 미국의 교육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일등 옆에 교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 아이 중 가장 못하는 아이 옆에 교사가 있을 수 있는 학교교육을 만들었으면 한다.

모든 문제해결의 단초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천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