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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이의 비애(김대원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09:50
조회
195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아직 외국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특히 한국어와 문법이 비슷하다 하여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일본어도 외국어였다. 그나마 발음은 괜찮게 들리는지 준비한 인사말 몇 마디에 모두들 감당하기 힘든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 온다.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천안함 사건이 여전히 큰 관심거리이다. 물론 대부분 일본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북한의 도발임이 분명하고 전쟁이 곧 일어날듯 한데 일본에게도 심각한 일이라며 호들갑 떠는 내용이다. 그것을 한국인인 나에게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대략의 내용만 접한 것으로 아는 척 하기도 그렇거니와 내 일본어 수준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도 어려워 별 일 아니라 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의도적인 도발임이 분명한 사건을 겪고서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느냐고 되물어 오기에, 결국 몇 가지 의문을 이야기하며 좀 더 기다려 볼 일이라 설명하는 중 조금 흥분해서 오히려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로 골머리 앓고 있는 일본과 미국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반문했다.
내 딴에 상식적이라 생각되는 수준에서 가진 의문이었는데 대부분 깜짝 놀란다. 어떻게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내용 이면의 것을 내다 볼 수 있느냐며 대단하다고 한다. 이들이 어찌 알까. 한 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당하면서 살아 온 끝에 갖게 된 지혜라는 것을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지혜라 자부하기에는 뭔가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이 정상일까? 주변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사는 것과 어떤 소식이든 들으면서 사실일지부터 고민하며 살아온 우리의 삶. 정상 비정상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물론 진실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이들도 안쓰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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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검증위원회'의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가운데)이 지난 6월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검증 없이 보도한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늑대소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치는 거짓말쟁이 소년 이야기가 있다. 몇 번 씩이나 마을 사람들을 속인 끝에 실제 늑대가 나타났지만 결국 아무도 사실이라 믿어주지 않았던 이야기. 물론 거짓말 한 소년 탓이라 여기면 그만일 테지만, 결과를 알고 난 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이 오죽 복잡했을까.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거나 속은 사람의 마음이 더 혼란스럽고 아프다는 사실을 저들은 알까.
여하튼 그 뒤로 국내 소식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음모론 유포 혐의로 몇몇 사람이 입건까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다 보니 ‘지나치게 사건 진행 간의 개연성에 집착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간과된 가정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근거로 삼는’ 것을 음모론이라고 한단다. 어느 심리학자는 음모론이 ‘자기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채택하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는 심리행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여서 사건의 해석이 쉽지 않은 경우 단순명쾌한 음모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누가 음모론자인지 명확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간과했던 가정을 맹신하며 근거로 삼고 있는지, 누가 자기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고집하는지, 누가 보통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서둘러 단순명쾌한 답을 내놓았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온갖 어이없는 음모론으로 나에게 꽤나 구박받았던 후배에게 오랜만에 연락해보아야겠다. 그 친구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언제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 친구의 의견이 궁금해지다니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누구 때문일까?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신부로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