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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후 단상(정 원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3 17:24
조회
206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모처럼 정신적 부담이 크지 않은 선거였다. 선거 때마다 ‘비판적 지지’, ‘사표(死票)’ 논란 때문에 평소 소신을 접고 ‘거악(巨惡)’의 출현을 막는데 나 역시 일조해야 하는지 고민했었는데 이번은 그렇지 않았다. 일찌감치 현역 시장은 저 멀리 달아났고, 후발 주자가 따라 잡는 것은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국내 대표적인 방송, 신문, 여론조사기관들은 입을 모아 20% 가까운 차이가 난다며 사실상 게임종료를 선언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더라도 별다른 부담감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되어 방송3사 공동 출구조사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오차 범위 내 접전으로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실제 개표결과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처음에는 현역 시장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표결과는 역전되었고, 박빙의 우세가 새벽 4시 20분 가까운 시간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다시 역전되었고 현역시장은 힘겹게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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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 KBS 개표방송 화면
사진 출처 - 이데일리


3.3%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의 책임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란은 촛불집회와 용산참사에서 느꼈던 생각과 겹치면서 나를 우울하게 했다. 국민 대다수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낸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된 촛불시위와 달리 용산참사는 극소수의 경제적 약자에 국한하는 문제인 것처럼 오인되었다. 하지만 용산참사 문제처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가 결국은 그 사회의 보편적인 권리 보장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다. 3.3%의 득표를 사표라고 간주하는 생각 속에는 용산참사에 대한 국민 다수의 소극적 입장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김은혜 대변인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나타난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더욱 국정에 매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는 청와대의 입장을 발표했다.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 보다는 “국정에 매진하겠다”는 말에 무게가 느껴진다. 지금 방식대로 계속 국정에 매진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이제 곧 월드컵이다. 정부는 조금 마음 놓고 있을지 모르겠다. 뜨거웠던 촛불의 위력이 어느 순간 잦아들었듯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 속에 선거에서 표출된 성난 민심이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월드컵 때마다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 중 하나가 복잡한 16강 진출 방정식이다. 자력으로 진출하기 힘들 때마다 누가 누구를 이겨주거나 비겨주어야 한다는 등의 계산이 횡행한다. 선거에서의 사표 논란 역시 일정 부분 16강 진출 방정식과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파 후보의 책임을 거론하기 보다는 소수파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소망을 끌어내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들의 기대에 더욱 부응하는 것이 보다 확실한 승리방정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 후의 상황이 어느 순간 잠잠해진 촛불 후(後)의 리바이벌이 되지 않으려면 3.3%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