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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自尊)에 대하여 (이지상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04
조회
31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쓰빠씨~빠 시비르 (고마워요 시베리아)

어디서든 소리 없이 따라오는 자작나무 숲의 빛깔을 어둠에 묻고 쿠페라 부르는 4인용침대칸에서 일행과 함께 비운 보드카 한 병의 바닥이 보일 때 쯤 잠이 든다. 눈 뜨면 광야. 밤새도록 쉬지 않고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SR)를 따라 어김없이 자작나무는 가녀린 흰 바탕의 군락이 되어 다시 나타나고 백야(白夜)의 태양은 광활한 대륙을 넘나들기 시작한다. 하루의 시작. 취기가 덜 빠진 감각 없는 손으로 컵라면을 데우고 누군가 건네주는 해장 술 한잔이 잠자는 땅 시베리아에서의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일거라고 생각한다. 전날 마셨던 보드카의 경로를 따라 내장을 훑는 진저리 치는 술의 독성이야말로 그토록 갈망했던 시베리아 횡단의 꿈을 이루고 있는 여행객의 객고를 위로하기엔 제격이다. 충혈된 눈을 씻으려 창밖을 본다. 지평선을 넘으니 다시 지평선. 끝도 모를 지평선의 대지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실핏줄 같은 강줄기들. 시베리아의 태양을 반사시킨 강물에 내 흐린 시선을 몇 번이나 씻은 뒤에야 기차는 피곤한 달음질을 잠시 멈추고 사람이 사는 마을의 입구에서 새 손님을 맞는다. 군데군데 마을을 품고 흐르는 강줄기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끈질기게 따라왔다. 아니면 열차가 강줄기를 따라 끊임없이 달렸다. 강줄기가 잠시 마을로 가는 길을 잃으면 열차가 앞서 길을 찾았고 열차가 사람의 온기를 잃으면 강줄기가 열차를 이끌어 마을로 안내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베리아의 속살을 곁눈질하며 바이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베리아는 바다였다 모든 것들을 다 받아주는. 낯선 이방인들은 그곳을 게으른 땅이라 불렀다. 어떤 이방인들은 그곳을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베리아는 제 속살을 죄다 내 놓고도 이방인들의 버릇없는 비아냥거림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애초 그곳을 게으른 땅이라 명명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의 길, 마을과 마을의 소통이었던 강줄기를 꼭꼭 틀어막아 댐을 쌓고 주위를 온통 콘크리트로 도배질 한 후 개발의 완성을 자축하며 키득대는 문명의 게걸스러움에 한 치의 마음도 빼앗길 이유가 없었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던 비아냥거림에도 역시 동의할 수 없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간이라도 내어줄듯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대는 친절함을 가장한 비굴함과 거기에 얹혀사는 이들을 비참하게 무릎 꿇리는 자본의 비정함이 조용한 땅 시베리아까지 스며드는 것이 두려웠다. 시베리아는 자존(自尊) 땅이었다. 아마존과 더불어 세계 양대 허파라고 불리는 대 자연이 있고 인류의 산업을 적어도 수 백년 동안 지탱 시킬 수 있는 막대한 자원을 땅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자본의 위대함을 앞세워 요기(妖氣)어린 손짓을 보내는 탐욕의 떨거지들에게 시베리아는 조용히 훈계하고 있었다. “시베리아는 자연을 사는 모든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는 있으나 탐욕스런 너희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는 없다”고. 바이칼의 언덕에 누워 별을 헤아린다. 팔을 벌리면 왼쪽 손끝에서 오른쪽까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오직 별 뿐이다. 별들은 스스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서로를 빛내고 있다. 밤사이 형형색색의 조명을 틀어대고 경쾌한 뽕짝을 울리며 관광객들을 취하게 하는 유람 이 몇 척 정도는 있어야 상식에 맞는 나라에서 온 나는 변변한 숙소하나 없이 별빛 하나만으로도 2500만년을 살아온 거대한 자연의 나라 바이칼에서 자존과 공존(共存)의 하늘을 보며 감격해 하고 있다. 바다 같은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알혼섬의 끝자락 어디쯤에서 손톱 같은 달이 떠오른다. 나의 생살 보다 더 붉은 달빛 사이로 소금을 흩뿌리듯 별똥별이 떨어진다. 달빛은 흠칫 놀라며 점점 더 가까이 내게로 오고 나는 수평선이 되어 달빛을 한참동안이나 올려다 본다.

고마워요 시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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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열시반 그제서야 알혼섬의 태양이 저물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필자


고마워요 두리반.


두리반의 겨울나기는 연탄을 들여놓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전기가 끊긴지 100일쯤 되는 10월의 저녁,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 촛불을 몇 개 켜놓고 그 아래부터 차곡차곡 연탄 천장을 쌓았다. 3공 9구짜리 연탄난로도 장만했다. 두리반을 지키는 평화 활동가 한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마포 일대 철물점을 다 뒤졌고 민노당 마포 위원장은 트럭을 몰았다. 난로가 들어오던 날. 위원장은 그 위에 고구마를 구우면 참 맛나겠다고 했고 나는 소뼈를 우려 사골을 내면 좋겠다고 했다. 두리반 바깥주인은 계급의 차이가 연탄난로위의 음식까지 다르게 한다고 껄껄 웃었다. 사실 내가 입이 고급이라 사골국물을 생각한건 아니었다. 다만 어렸을적 하도 많이 먹었던 고구마가 싫었을 뿐이다. 난로를 설치하고 이어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단풍잎이 채 붉게 물들기도 전에 닥친 기습한파에 연탄난로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고구마를 구울 정도의 불은 피우지도 못하고 자주 꺼트렸다. 난로가 꺼진 원인을 두고는 주인장 부부가 자주 설전을 벌이고는 했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안주인이 “난로 구멍은 조절 했느냐 시간은 잘 맞추었느냐” 등등을 물으면 바깥주인은 “아~참 이사람 다 맞추었다니까. 중국놈 빤쓰를 겹으로 껴입었나 그리 의심이 많아. 의심이 많으면 철학을 해야지...” 바깥주인의 기상천외한 반격에 안주인도 웃고 난로주위에 모여든 두리반 사람들도 다들 킥킥대는 형국 이었다. 바깥 날씨가 영하를 가리키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연탄 난로의 화력도 점차 강해졌고 두리반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난로 주변에 모여 들었다.

2009년 12월 24일 성탄 이브를 축하하며 세상이 흥청거리던 그날. 두리반은 들썩 거렸다. 생살 같은 피붙이를 앗아간다 해도 분노가 이만할까. 멀쩡했던 가게의 집기가 들려나오고 깨지고 부서지고 주인부부는 평생 가도 다 못들을 쌍욕을 들으며 울부짖었다. “이곳은 나의 우물, 이 척박한 사막의 땅에서 물 한 모금 길어내기 위해 손톱 끝에 피 맺히는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파낸 나의 땅. 철거되어야 할 놈들은 너희 G.S건설, 그 하수인 남전 디앤씨, 그리고 깡패 새끼들. 그것도 뒷골목이나 어슬렁거리며 제 손목에 담배 빵 이나 붙이다가 돈 몇푼 쥐어준다 하니 좋다고 소주 값 벌러 온 쌈마이 중의 쌈마이. 깡패라는 말 조차도 거룩한 칭호인 인생 하빠리들. 철거 용역. 진정 철거되어야 할 놈들은 너희들이다” 안주인은 머리채를 휘어 잡혔고 바깥주인은 멱살을 내어주었다. 그 추웠던 한날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 합니다”라는 대형건물의 광고판 아래에서 두리반은 그렇게 내동댕이쳐졌다

연탄난로에 올려놓은 주전자가 뚜껑을 들썩이며 끓는다. 지난여름 35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전기가 끊어졌다. 에어컨. 선풍기는 고사하고 조그만 냉장고 하나 돌리기 어려웠던 날에는 손님들 커피 끓이는 가스의 열기에도 등줄기가 땀에 절었다. 난로에 둘러앉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커피를 훌훌 거리며 슬러시가 된 맥주 얘기를 한다. 창문이 깨질 듯 얼어 붙은 혹한의 밤과 무작시럽게 내렸던 눈발을 전기장판 하나로 견뎌야 했던 일 년 전 겨울 머리맡에 놓아둔 페트병 맥주가 얼어 슬러시가 되었다. 난로의 온기 옆에 있는 지금 그 기억은 아릿한 추억이 되고 있다. 두리반 철거에 맞서 부부가 농성을 시작한지 일 년. 많은 이들이 두리반에 다녀갔다. 스스로 상근을 자처해 어려운 날을 함께 사는 대학생, 아침마다 출근길에 꽁꽁 얼린 물병으로 더운 여름을 식혀주던 직장인.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의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두리반에서 목청껏 소리 지르는 젊은 예술인. 두리반은 낙엽 이었다. 나무의 본체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은 날, 스스로 떨켜를 닫고 조용히 눈감는 은행잎이었다. 그리곤 애초에 타고난 빛깔, 깊게 깊은 노랑으로 물들어 햇살 밝은 거리를 짙게 물들이는 사랑 이었다. 탐욕스런 세상으로부터 철거를 통보받지 않은 두리반은 몇몇의 단골들이 들락거리는 괜찮은 칼국수 집이었으나 용역 깡패들이 들이닥쳐 문을 부수고 사방을 철판으로 막아 두리반 이라는 이름조차 없애려고 했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색깔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이 한 겨울 두리반에서 희망을 보기로 한다. 희망이란 새날의 기약보다 현재의 극복에 더 가깝다는 것을 두리반 부부의 낙관적인 웃음에서 찾기로 한다. 황홀한 일몰에 어깨위에 내리는 통증을 기대며 길 없는 길을 날아 새 길을 만드는 어린 새의 날개 짓이 두리반에 있다. 두리반이 내게 속삭인다, “길이 끊어졌다고 행장을 꾸리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죄요”. 몇 평 되지 않는 두리반에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시베리아의 자존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건물앞에 걸어놓은 현수막과 대자보를 읽다가 쑥스러움을 감추고 두리반의 문을 여는 순간 그때부터 당신은 두리반이다.

고마워요 두리반.

- 이글은 계간 리얼리스트에 송고한 글입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