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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위대영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10
조회
249

위대영/인권연대 운영위원


 

일체유심조,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으로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라고 한다.

아내의 생일에 맞춰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에 다녀왔다. 산에는 이미 가을 단풍도 모두 져버린 때라 쓸쓸한 풍경이지만, 송광사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고즈넉한 맛이 묻어나는 사찰이었다. 지난봄 전주 금산사에 찾아갔을 때, (경내에서조차) 오며가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사람들을 볼 수 없고, 천년 사찰의 벽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온통 도배질해 놓은 낙서를 볼 수도 없었다. 어느 사찰이든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불경 소리가 없고, 입구를 가득 매운 기념품 가게도 없었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3대 사찰 중 하나인 송광사는 다른 무엇보다 수도도량으로 이름이 높고 많은 수도승이 수행 중이다.

운 좋게도 송광사에서 3년째 수행 중이신 한 스님께서 송광사의 역사와 특징, 송광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점들을 설명해주셨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마지막에 대웅보전 오른편에 있는 삼일암(담당국사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3일 만에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여 붙여진 당호임)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스님은 모든 이들 마음에 부처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며 듣는 이들에게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를 설명해주셨다.

이에 바로 앞서 스님은 부처님이 수행하신 모습을 벽화로 그려둔 불전 앞에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때가 어느 때인지 벽화를 보고 맞춰보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맞추기는 했지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에 해당하는 그림은 삼라만상이 그려진 풍경 위에 붓으로 커다란 원을 그려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8번째 벽화에 해당하니, 그렇다면 9번째, 10번째 벽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맞춰 보라고 하셨다. 다들 우물쭈물 말을 못하고 있을 무렵, 스님은 9번째 벽화는 깨달음을 얻고 둘러본 풍경은 깨달음을 얻기 전의 풍경과 같더라는 것이고, 10번째 벽화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해탈의 길로 안내하기 위하여 다시 중생들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깨달음의 단계로 한걸음만 더 내디디면 될 것인데도, 자신의 뒤에 있는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들을 보고 이들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신 지장보살의 서원을 비롯해 송광사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보낸 두 시간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 일상에 청량한 한줄기 바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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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송광사


한낱 윤회를 거듭하는 중생의 하나인 나로서 일체유심조의 의미와 지장보살의 서원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겠다. 날이면 날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울고, 웃고, 슬퍼하고, 화내는 평범한 사람이 오로지 마음먹음으로 하나로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매년 반복되는 위정자들의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를 보며 마음만 돌이켜 보면 한낱 부질없는 일로, 공허한 일로 치부해 버리기는, 그리고 이것들이 마음먹기에 달린 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진다.

깨닫기 전의 세상과 깨달은 후의 세상이 다르지 않듯이, 깨달은 자에게 있어서 깨닫기 전에 수행하며 중생을 계도하는 것과 깨달은 후 중생을 계도하는 것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부딪히는 인간사 모든 일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인간사 모든 일과 다르지 않다면,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때의 마음가짐에는 실천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면 마음가짐은 항상 실천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실천이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은 거짓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도달한 깨달음은 공허하다.

언제나 일의 시작은 마음가짐부터다. 그 마음가짐이 어떻게 연유되었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 마음가짐이 실천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더욱 중요하다.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그리고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반성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 이 다음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 조용히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