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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잃고 깨닫습니다(김대원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09
조회
230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여름 일본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가 한국 학생들과 함께 연합캠프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의 인기 등으로 가려진 양국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 기획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일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국내외 어느 곳 못지않게 인기있는 여행지여서 모두들 한두번은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참가자 모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신청자가 많아서 부득이 면접심사를 거쳐 참가자를 선발해야 했습니다. 한국 인기가 만만치 않다더니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면접을 통해 확인한 것, ‘겨울연가’의 영향이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신청학생 대부분 겨울연가 골수팬인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그 관심이 넓어져서 이들에게 이르러서는 ‘신한류’라 불릴 정도로 한국음악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저보다 한국 가수와 가요를 더 많이 알고 있더군요.

문제는 참가취지였는데, 지금까지 아시아에는 관심이 없었고 본인이 아시아인이라는 자각도 없었지만 이번 캠프를 계기로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는 학생도 있었고, 자기들은 미국을 미워하지 않는데 한국이 일본을 왜 그토록 미워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나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그나마 대견한 경우였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이돌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이라는 나라의 또래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것뿐이었습니다.

한국 학생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기 역사에 대한 이해, 자기 현실에 대한 이해가 안타까울 정도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한일병합 100주년과 분단문제에 대한 강의가 끝난 뒤 일본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난처해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한국학생들 마저도 이번 캠프가 외국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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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인권연대 창립 10주년 기념식·감사의 밤 행사에 함께한 리영희 선생님의 생전 모습.


 

요즘은, 보고서 책자를 만들기 위해서 학생들의 캠프 감상문 원고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생각 밖이었습니다. 준비된 프로그램에 잘 따라올 뿐 깊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로 꽤나 큰 자극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100년이나 지난 과거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의 분단현실을 보고 도대체 자신의 국가가 어떤 일을 저질러 왔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는 학생이 많았고, 심지어 인생이 변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젊은이들과의 좋은 기회를 만들어 놓고도 그저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비판만 해댔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아침 버릇대로 책상에 앉자마자 메일함을 열었는데, 리영희 선생님의 타계 소식이 제일 먼저 눈에 뜨였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스승을 잃고서야 깨닫습니다. 젊은이들과 제대로 어울려 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의 무심함을 탓하기만 했던 제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말입니다. 이국에서 외국인들에게 선생이라 불리고 있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스승 없다 탓하면서 스스로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어보려 노력한 적 없었음을 말입니다. 선생님 같을 수야 있겠습니까만, 적어도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바로 보도록, 아니 그들과 함께 바로 보려 노력하겠다 다짐해 봅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신부로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