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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파업에 관한 단상(도재형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07
조회
317

도재형/ 인권연대 운영위원


 

변호사를 그만 두고 학교에서 일한지 6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변호사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나 그와 관련한 느낌들이 기억나곤 한다. 변호사 업무 중 힘든 것 중 하나는 사건 진행을 위해 법정에 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변호사 초기에는 책을 읽는 등 소일거리를 찾으려 시도한 적이 있으나 집중하기 어려워 모두 포기하고, 그냥 다른 사건의 진행 과정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사건 기록을 뒤적거리는 정도에서 만족하게 되었다. 그날 오후에도 형사법정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진행되던 사건은 어떤 지역의 조직 폭력배들이 공갈죄 등으로 기소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변명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즉, 자신들과 동네 상인들은 모두 선후배이거나 친한 사이이고 자신들은 돈을 상인들로부터 강취한 적이 없고 빌린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다만 사정이 어려워 갚지는 못했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결국 자신들은 경찰의 실적 위주의 잘못된 수사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취지였다. 관련 진술이 매우 진지하긴 했지만, 마음속에서 ‘과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하루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들이 차용증이나 변제의 확신 없이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나는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한국에는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인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있다. 파견법에 따르면, 기업이 하청업체 소속의 근로자를 지휘·감독하며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2년 이상 사용할 경우에는 그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제조업 등 일정 분야에서는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제조업 기업들은 이런 법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하여 일견 도급의 겉모습을 띤 계약을 하청업체와 체결한 후 이들을 사실상 파견근로자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참고) 도급 관계의 경우 일반적으로 도급인이 하청(수급)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파견근로로 보지 않고 따라서 이들에게는 파견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근로자들의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하청업체이므로 도급인과 근로자들 사이에는, 단체교섭과 같은 집단적 노사관계와 관련된 문제나 특별법을 별론으로 한다면, 권리의무 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결국 비정규 근로자들을 사용하면서도 그 법률적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방법으로 도급 계약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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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1월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는 불법이지만,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하였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노무비를 절약하고 노무관리 등의 부담을 더는 손쉬운 방법으로서 탈법적인 도급 방식을 유지하였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규모는 확대되고 노동권은 보호받지 못했다.

올해 7월 대법원은 이러한 방식에 의해 근로자를 사용할 경우에도 파견법이 적용되고,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이렇게 2년 이상 사용한 이상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판결하였다. 즉 파견법을 어긴 기업도 파견법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을 어긴 사람이 법을 지킨 사람보다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치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판결이 최선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판결은 결국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게 합법적인 기업과 동일한 책임을 지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법을 저지른 자에게는 법을 지킨 자보다 더 큰 불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함에도, 대법원 판결이 그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 현대자동차의 대응이 너무 이상하였다. 대법원 판결 이후 진행된 파기환송심에서 현대자동차는 계속 자신의 책임 없음을 다투고, 관련 사건에서는 파견법이 재산권과 경영권 등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한 하청업체와의 도급 계약을 해지함으로써(아마도 현대자동차는 노동조합 때문에 자신들이 이런 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청업체에 소속된 비정규 근로자들이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정규직으로 고용될 것을 기대하던 근로자들이 이에 항의하자, 현대자동차의 용역들은 항의하는 근로자들을 폭행하였고, 이들이 공장에 모이자 회사는 불법 파업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폭력배에 돈을 뺏긴 상인들이 폭력배의 사무실에 찾아가 법원 판결에 따라 돈을 달라고 요구하니깐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으니 돈을 직접 갈취한 부하에게 받으라고 하고, 오히려 주거침입을 했다면서 상인들을 때리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과 같다. 그리고 돈을 갈취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 규정이 자신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 법률이라고 주장하는 격이다.

이러한 사태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경박함에 대한 지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행해질 수 있는지, 이제 한국의 노사 현장에서 법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비정규 근로자들이나 노동조합의 요구가 지나치고 현대자동차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기업의 경쟁력 측면에서 현대자동차의 염려나 우려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란 조직도 한국의 법 제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법에 대한 존중은 그런 기업의 의무 중 하나이다. 따라서 마땅히 현대자동차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그 뜻에 따라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대우해야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련 문제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노사 현장의 분쟁이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해결되는 국면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지난 7월의 대법원 판결이 불법을 저지른 기업에게 합법적인 기업과 동일한 책임을 부과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로서는 판결에 따라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일단 버티고 저항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롭고 이를 사회가 용인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사 현장에서 법원의 판결마저 힘을 잃게 될 때 과연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과 소수자들은 누가 보호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