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제로섬(zero-sum)게임 (이지상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27
조회
21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분명히 길은 외통수였다. 궁(漢)이 피 할 곳은 없었으며 사(士)는 오히려 궁의 길을 막아 멀찍이 장기판의 중앙부에 건재한 상(象)이 성큼 건너뛰어 장군을 치면 게임 끝나는 판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청계천 고가 밑에서 웅성거리던 구경꾼들은 죄다 “내가 돈만 있으면 한번 질러버리고 말지”하는 눈치였고 막수 장기판(판을 마무리 짓는 듯한 막판수를 놓고 손님을 유혹하는 야바위의 일종)을 벌려놓은 눈 째지고 이빨 빠진, 한눈에도 꽤나 성질 더러울 것 같은 장기꾼은 입에 가득한 침 튀기며 “자~자. 돈 놓고 돈 먹기. 돈 놓고 돈 먹기. 이기실분 돈 걸어. 딱 열 배 열 배 드립니다”를 외쳐댔다. 내 옆에서 누군가가 “워미~저거 저 뻔헌거~”라며 귓속말을 흘렸을 때 이미 나는 헌책방을 뒤져 찜해주었던 대입 참고서 살돈을 그야말로 지르고 있었다. 막판 한수에 실패하고 꼬깃한 재수생의 천금 만원이 그치의 돈 통에 들어가는 순간 “이런 야바위꾼~”을 외치려는 내 허리께로 금속성의 섬뜩한 무언가가 닿았고 잘 훈련된 병사 같은 구경꾼들은 순식간에 나를 일행으로부터 서너발 쯤의 거리로 내 몰았다. 그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저 새끼가 내 돈을 빼앗았다”였다.

그 뒤로 한 몇 달 나는 빼앗기는 꿈을 자주 꾸었다. 실제로는 가진 게 별게 없었으나 꿈에서의 나는 꽤 그럴듯하게 포장이 되어있었는데 털리는 꿈을 꾸는 새벽엔 제법 헛소리까지 하곤 했던 모양이다. ‘책은 뺏지마. 책은 뺏지마...“

몇 년 전 내가 사는 집 옆의 교회가 이사를 가고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지반 정리가 끝나고 교회 첨탑을 허무는 공사를 진행 하던 중 굴삭기가 넘어져 인부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당시 9시뉴스에도 보도가 되었으니 꽤 큰 사고였던 셈이다. 그날 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밤새도록 악에 받쳐 울어대는 한 여인의 통곡소리를 들었다. 잠에 뒤척이며 귀도 막아봤지만 그 여인의 가슴을 치는 통곡이 나의 두근대는 심장에 송곳으로 전이(轉移) 되어 한번 씩 심장이 뛸 때 마다 쿡쿡 온몸이 쑤셔왔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챙기고 다른 곳에 터를 잡은 교회는 이전보다 몇 배의 성도를 자랑하는 대형교회가 되었고 안전하게 분양을 끝낸 건설사는 안전하게 이익금을 챙겨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고 입주한 아파트 주민들은 결국 한 노동자의 죽음을 깔고 살게 되었는데 아무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누군가 기를 쓰고 돈 모아서 겨우 아파트 한 채 장만했다고 하면 축하한다는 말보다 먼저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등짐지고 떠난 가난의 기행을 생각하고 그럴듯한 고깃집 옆자리에서 아파트 몇 번 튀겼더니 몇 억쯤 생기더라는 모르는 아저씨의 주둥이를 엿들었을 때는 450만원 이주비 받고 철거반에 얻어터지며 쫒겨난 난곡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해병대 간 현빈이 좋다고 선전하는 3D입체 TV광고를 보고 있으면 저 물건 만들기 위해 목숨 바친 박지연이 생각나고 49제도 제대로 못치른 김주현이 떠올라 맘 아프다.

IE001284186_STD.jpg
고 황유미씨의 4주기 기일인 지난 3월 6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추모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 날 추모문화제는 황씨 뿐 아니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사망한 46명의 노동자들을 함께 추모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내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니다. 제로섬(zero-sum)게임. 승패의 합계가 항상 일정한 일정합 게임(constant sum game)의 저열한 경쟁사회에서 나는 늘 경쟁의 뒤편에 있다. 내가 아는 사람과 내가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거의 패자에 속한다. 이 사람들은 외통수의 삶을 살고 있다. 겨우 하루를 살기위해 폐지를 줍거나 헤픈 청춘을 팔거나 죽음의 기운이 깃든 공장에 웃으면서 출근한다. 그것 말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이들의 가난은 누군가의 호주머니 속에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부를 만들어 낸다. 빼앗긴 게 맞다. 이 시대 패자라 불리는 이들은 야바위꾼의 현란한 거짓말솜씨도 없고 거칠고 극악스런 표정도 짓지 못한다. 구경꾼을 가장한 같은 패거리의 완력도 없고 남의 것 빼앗고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는 인두껍도 없다. 한때 민중과 함께. 민중을 위해 살겠다던 치들조차 대부분은 거나한 자리에서 거들먹거릴 만큼의 승리를 누리며 살지만 민중이 되어 살겠다던 이들은 여전히 빼앗기는 다수가 되어 산다. 이 제로섬 게임의 사회에서 “저 새끼가 내 돈을 뺏아간다”고 외치며 산다.

봄꽃이 피는 이유는 언 땅이 녹았기 때문이고 바다가 푸른 이유는 갯벌의 수고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난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부를 건넸기 때문이지만 내가 부자인 이유는 누군가의 부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조세희 선생의 일갈에 다시 모골이 송연해 지는 밤이다. “당신은 행복한가.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이다. 바보 아니면 도둑”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