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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의 추억 (정 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19
조회
355
“너 잘 할 수 있지?”, “예 할 수 있습니다”.

오사카도립체육관의 매트에서 일어나면서 코치님에게 대답했다.  한일전 아닌가? 나는 반드시 상대 선수를 이겨야 했다.  매트에 쓰러지면서 접질린 왼쪽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일본선수에게 기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 울컥하면서 저 녀석을 반드시 쓰러뜨리겠다는 생각이 솟아났다.  “하지메(시작)”라는 심판의 구호를 듣자마자 기합을 외치면서 맹렬히 상대방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상대 선수의 도복깃을 잡자마자 왼쪽 손목의 통증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악”하고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경기장에 대기중이던 의사선생님은 왼쪽 손목이 부러졌다는 진단을 내렸고, 경기는 중단되었다.  창피하고 분했다.  기권패였다.  관중석 한 쪽에서는 한복을 입은 조총련 누나들이 인공기를 흔들면서 “작살내라”는 응원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민단에서도 응원을 나왔는데 다소 온건한 응원구호를 외쳤던 것 같다).  1987년 7월의 일이다.

그 때 나와 싸웠던 선수는 체중이 나보다 2배 가량 더 나가는 선수였다.  아무리 친선경기라고 하지만 불공정한 시합이었다.  역시 일본 사람들은 “야비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들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우리 역시 불공정한 시합을 했던 것이다.  사정은 이렇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친선유도경기를 하면 대부분 한국이 이겼다.  친선경기는 양쪽에서 20명씩 나와 시합을 하는 방식이 많았는데, 한국은 초등부에서는 17~18승, 중등부에서는 13~14승, 고등부에서는 11~12승 정도의 승리를 거두었다.  올림픽에서는 일본이 메달을 더 많이 따지만 학생들끼리의 친선시합에서는 한국이 이기는, 그것도 초등부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이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선수들의 기술이 훨씬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체육특기자 위주로 스포츠계가 돌아가는 우리나라에서 어린 선수들은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이른바 ‘필살기’를 습득한다.  어린 선수들이 시합에서 “가위치기”(이름 그대로 가위질을 연상하면 된다.  도복깃을 옆으로 잡은 상태에서 한쪽 발은 상대방의 뒷발축을 다른 쪽 발은 상대방의 무릎 위를 거는 기술로서 부상이 자주 발생하므로 현재는 금지되었다)나 “태클”(축구의 태클과는 다르다.  고개를 숙여 상대방의 하복부를 파고 들면서 두 손으로 상대방의 오금을 잡아 당기는 기술이다)을 구사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 초등학교 선수들은 이러한 기술 자체를 모르는 듯했다.  그냥 서있다가 우리 선수들의 기술에 그대로 당하고 마는 것이다.  사정을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기본기 습득이 중요하다고 보아 가위치기나 태클과 같은 변칙기술은 초등학교 때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더욱이 이러한 기술들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선수보호차원에서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선수들이 위험한 기술을 구사하면서 대승을 거두자 일본에서는 체중 차이가 많이 나는 선수들끼리 대진표를 작성하는 꼼수를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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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 선수들의 화려한 가위치기도 일본의 꼼수도 아니다.  친선경기의 결과다.  우리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는 일본을 압도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줄어든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잘하던 우리 선수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일본을 겨우 이기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여러분들이 아는 그대로다.  일본선수들은 기본에 충실하게 실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면서 의욕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문제라고 한다.  FTA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필자로서는 찬반양론 모두 일리는 있기에 뭐라 의견을 덧붙이기 어렵다.  다만 우리에게 한미FTA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니 적어도 현 정부가 그만큼의 절박성을 갖고 추진해야 할 정책은 우리의 기본역량을 키우는 것 아닐까.  김민웅 교수가 한 인터넷언론의 칼럼에 기고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변변한 ‘외교사’책 하나 제대로 없는 나라이다.  요즘은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필자가 업으로 삼고 있는 법률분야 역시 아직도 많은 부분을 일본책에서 그대로 차용(우리나라에서는 ‘도용’의 순화된 표현이다)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정말 절박하게 추진해야 할 것은 주택시장의 공공성 확보, 교육의 공공성 강화, 인문학 등 기초학문 지원 등 너무나 기본적이라서 상투적으로 들리기 쉽지만 우리가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런 문제들 아닐까.

p.s. 한일전에서 패한 후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손목이 부러진 상황에서도 일본 선수를 반드시 이기겠다고 투혼을 불태운 선수”라는 이야기가 펴져 나갔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고 남은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한일전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정 원 위원은 법무법인 지평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