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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하면 죽는다? (허윤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24
조회
1401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자신의 악습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지요. 그런 반면에 자신의 죽음 앞에서 대부분 진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비밀스런 자신의 부끄러움도 드러내고, 인색한 마음을 버리고 나눔의 아름다움도 실천하고, 타인에게 상처 준 모든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기도 하며, 죄를 고백하고 세상과 화해를 이루어 나갑니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비밀도 다 알려지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악에서 선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자존심과 체면, 욕심 때문에 자신의 악습을 잘 고치지 못하는 사람도, 타인의 진실한 모습 앞에서는 행복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우리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변하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성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옳게 살던 자라도 그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게 산 탓으로 죽는 것이다.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그 못된 행실을 털어버리고 돌아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에제키엘 18,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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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레 가득 싣고 왔던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집으로 향하는 할머니들의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 땅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막론하고 인구보다 많은 것이 신앙인들입니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사랑의 실천과 나눔의 정신을 구현하여 공동선을 이루는 것이 거의 모든 종교의 공통된 신념입니다. 그래서 각 신앙인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없애고 세상의 불의와 맞서며, 약한 이들을 돌보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땅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들 중 7-80%이상이 신앙인들이기에 기대가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당리당략,  집단 이기주의, 부정축재,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가고 상처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남을 탓하기 전에 신앙인들이 먼저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나눔의 아름다움은 종교 행사에 참여할 때뿐이고 일상의 삶에서는 개인적인 욕심에만 사로잡혀 사는 어리석은 신앙인들 때문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없고 유치한 신앙인들만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도 부처님의 가르침도 세상에는 메아리로 사라져 갈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거나 흠집을 잡는 일에는 뒤지지 않은 것이 또한 믿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 땅의 신앙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어떤 위치와 지위에서든, 어떤 갈등과 대립에서든, 정치 경제적 활동에서든) 진정 신앙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행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진정 공동선에 이바지하고 있습니까? 거듭거듭 되묻고 성찰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당신은 종교의 탈을 쓴 사기꾼입니다.

신앙인 정치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민생법안이 더 이상 당리당략을 위한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늘 두려운 줄 알고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정치인은 권력에 눈먼 어리석은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말끝마다 ‘국민을 위한 일이고, 국민이 원한다고’ 말하지만, 누가 봐도 권력 유지를 위안 안아 무인한 모습뿐입니다. 그러니 신앙인인 당신부터 돌아서서 그러한 불의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약하고 어려운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사회의 공공복지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 주십시오.

신앙인 경제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이 누리는 부는 당신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의 결실임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모두 내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을 믿고 함께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분배의 정의를 지키십시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래서 세상이 당신을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신앙인 부자가 지녀야 할 참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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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겨레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신앙인 지도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당신들의 이기심 때문에 이 땅에 ‘노동귀족’이라는 말이 생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상처받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신념을 갖고 하는 일에 작은 기업의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성찰하십시오. 뜻은 좋았는데 이제 욕심에 눈이 멀어 작은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신앙에 눈이 먼 어리석은 신앙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찾기 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입니다.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늘 두려운 줄 알고 사람 귀한 줄 알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이 처한 다양한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인 사랑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산다면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힘인 것입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