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김영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0:59
조회
355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삶’이란 매우 중요한 일이다. 2006년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3위에 오른 대한민국.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소득격차 심화에 따른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는 더욱 그렇다.

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행복의 실체를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모두들 경제력, 학업성적과 외모가 행복을 좌우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40대 후반의 부유한 경제인과 그의 초등학교 동창들의 33년 전 졸업앨범, 생활기록부를 검토하고 현재 생활 만족도와 소득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들의 행복을 예언하는 중요한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행복한 사람의 현재를 만들어낸 것은 과거 그들의 성적도, 외모도, IQ도 아닌 ‘정서적 안정성’이었다.

정서적 안정성은 일반적으로 화나 짜증을 자주 내지 않게 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인이 된 후 느끼게 되는 행복이 훨씬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이해력, 업무수행력, 창의력 등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060802web01.jpg


사진 출처 - 동화작가 존 버닝햄의 작품, 헤럴드 생생뉴스



그러나 정작 정서적 안정성이 중요한 학창 시절의 ‘학교’에서는 학생들 모두에게 1등만을 강요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식교육에 많은 부모들이 ‘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들이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이유는 아마도 교육이 이 땅에서 신분상승과 행복을 얻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고 인생은 성적순, 출세는 대학순이며, 부정과 범죄를 통한 성취가 아닌 다음에야 이 사회에서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사회의 모든 문제는 구조적인 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교육문제 또한 부모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사실 모든 부모들, 아니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조금씩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공부의 늪 속에 아이들을 빠트린다. 2-3개가 넘는 학원인생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대학 진학을 위한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고 눈도 오건만 그런 것은 아랑곳할 여유조차 없다. ‘계절이 흐르는 게 공부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학생에게 있어 나아갈 바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는 시각만을 강요할 뿐이다. 부모들의 이런 강요에 아이들은 ‘친구들을 누르고 일류대학에 가는 것, 그것만이 나의 행복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부모들은 곧잘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육의 목표가 ‘인간’이 아닌 단지 ‘일류대학 입학’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돌아서서 하는 행동은 너무도 다르다.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낼지, 어떤 공부를 시킬지, 당장 학교에서 몇 등을 했는지만 관심을 갖는다.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이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도 없다(물론 전인교육을 실천하는 부모들도 많다).

자식 교육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속내의 흉물스러움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서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생각은 그만 버려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자신의 인생이 있다. 공부도 할 만큼 하면 되고, 되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지켜보는 미덕을 배우자.

사실 공부가 어디 쉬운 일인가? 오히려 공부만을 강요하는 부모들에게 자신은 학교 다닐 때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 되묻고 싶다. 비록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지금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공부하라’고만 닦달하지 말고 아이들의 성적을 독촉하지 말자. 잘되면 좋고 설사 안 되어도 또 다른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친구들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자기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하자. 그 것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다.

부모의 욕심을 버리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