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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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서울시장 오세훈은 아이들 밥상을 놓고 정치 문제화시켜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실패했다. 헌법이 의무교육을 천명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무교육 받는 아이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를 두고 주민투표를 강행한 것은 자식 키우는 부모, 특히 아이 급식비 마련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끼는 학부모들의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박을 뻔 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대한민국을 살아온 성년이라면 누구라도 점심 도시락, 급식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누구라도 세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민투표에 대한 적극적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이 아니었던 점은 다소 아쉽지만 선택지가 없고, 아이들의 밥상을 놓고 정치문제화한 데 대한 항의의 의사표시는 이번 주민투표에 대한 거부보다 적극적으로 표시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을 보인 것이다. 2011년 8월 31일, 소금꽃 김진숙 지도위원이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투쟁을 시작한지 238일이 되었다. 6월 11일 700여명, 7월 9일 1만여 명, 7월 30일 1만5,000여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자비로 희망의 버스에 올랐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투쟁하고 있는 부산 영도구에 있는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갔다. 1차 희망버스 탑승자들에 대한 경찰 소환장의 협박을 무릅쓰고 2차 희망버스는 부산으로 달려갔고, 2차 희망버스 탑승자들에 대한 경찰의 최루액 살포, 강제연행의 공포를 뚫고 3차 희망버스는 부산으로 또 달려갔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시기에 생긴 정리해고는 어느새 대한민국 노동자라면 누구나 대상이 되었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퇴직을 강요받는다. 평생직장은 사라진 셈이다. 그나마 정규직 노동자라면 해고의 제한이라는 법적 보호라도 받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해고의 제한이라는 보호도 받지 못하는데, 그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900만 명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의 50%를 넘는 수치다. 대한민국 노동자라면 어느 누구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노동자의 가족까지 생각한다면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35미터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온 몸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의 처절한 외침을 함께 하고자 희망버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지만 부족하다. 내가 노동을 하고 있는 줄 모르고, 내가 팔 수 있는 것이 유일하게 노동이라는 것을 모르고, 내가 노동하여 만들어낸 모든 것이 내 노동의 결과인 줄 모르고, 오늘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 외국인이 투자하기 좋은 나라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의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이상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은 언제든 또 다시 35미터 골리앗 크레인 위에 서게 될 것이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자본의 입장에서 그리고 자본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노동자를 배신하는 세상이라면 이제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서울 독립문 앞에서 용산구 갈월동 한진중공업 앞으로 행진하고 있는 4차 희망버스 참가자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독일 연방대통령 정무위원실은 독일 유학생 정지혜 씨에게 8월 23일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 상황과 관련하여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서는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도 역시 노동자 인권을 더 높은 수준으로 강화시키는 일을 실현하는 것은 이에 상응하는 의식 수준 및 사회 전반의 변혁의 의지, 또한 입법기관인 의회의 법안 추인 능력에 달려 있”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루는 근간이 이 성과(노동자 인권 강화의 성과)에 대한 기본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도 끊긴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238일을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동운동사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에 만연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각인되고 있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의 반노동, 반인권적 상황을 끝내지 않는다면 그 멍에는 우리 자신이, 우리의 후손이 그대로 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통해 보편복지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다면,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이 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노동자라면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에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인데도 지금까지 너무도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독일 대통령조차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에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이 때, 보다 절실한 것은 15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관심과 지지이기 때문이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43 | 추천: 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7, 8월을 소위 왕재산 지하당 사건 변호단 활동으로 국가정보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소위 왕재산 사건은 검찰총장님께서 종북좌익세력 척결까지 언급하게 되신 바로 그 사건이다.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목표로 한 왕재산 사건 검찰 수사가 이번주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주말 잠깐이라도 여름 휴가를 다녀올 수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검찰 송치 이후 우리 변호인들보다도 훨씬 먼저 여름 휴가들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유치한 허깨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감동과 함께 국가정보원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야만적 수사를 물리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국가정보원의 소위 왕재산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들에 대한 몸수색, 가방검색 논란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변호인의 몸수색, 가방검색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모든 변호인에 대하여 몸수색(문형 보안검색대의 통과), 가방수색(X-ray 소지품 검사)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으로 처음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을 때 몸수색, 가방수색을 전혀 요구받지 않고 당시 불구속 피의자들의 국가정보원 조사 시 신문에 참여하였다. 당시 구금 상태의 피의자를 접견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가지고 들어간 아이폰으로 열심히 뉴스기사를 읽어보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국가정보원과 변호인들 사이에 몸수색, 가방검색 시비가 벌어진 이후에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 불구속 피의자를 대동하고 들어가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몸수색, 가방수색을 전혀 받지 않고 말이다. 아마도 국가정보원 출입 경험이 많은 변호인이라 예우 차원에서 특별히 시비를 걸지 않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어느날 갑자기 변호인의 몸수색, 가방수색을 이유로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구속 피의자들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그 과정에서 구속 피의자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렸다. 매일 매일의 조사 상황을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족들은 애간장이 녹았다. 이에 우리 변호인들은 국가정보원 수사관들과 몇 시간 동안의 설왕설래를 거듭하는 가운데 일정한 양보(가져온 가방을 도로 놓고 와서 문형검색대만을 통과하거나)와 합의(가방 검색은 허용하지 않고 문형검색대만을 통과하기만 하고 ‘삐’소리가 나더라도 핸드스캐너로 사후 조사하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하거나)를 거쳐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가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피의자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정보원은 변호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변호인들이 제출한 피의자 접견신청서, 피의자조사 참여 신청서 등을 통해 변호인들이 오로지 피의자들의 방어권 행사에 조력을 하기 위하여 피의자를 접견하고 피의자의 조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피의자들의 지위가 얼마나 형편이 없는지 또한 잘 알고 있다. 피의자들에게 차지하는 변호인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리라. 형사소송절차에서 특히 최초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고 방어적 위치에 있다. 바로 이때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감시하고 피의자가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구원자) 같은 존재가 변호인이다. 이들 변호인들이 수사절차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는 불가능하다. 수사단계에서의 피의자 지위는 급히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와 같은 처지라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궁박한 처지의 변호인과 피의자들을 상대로 보안시설 출입절차는 변호인 접견 및 피의자조사 참여권을 제한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출입절차를 거치면 되는데 변호인들이 이를 거부하여 국가정보원 청사 내로 출입하지 못한 것일뿐 자신들이 변호인의 접견과 피의자조사 참여를 불허한 적이 없단다. 출입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변호인들로 인하여 국가정보원 건물이 테러를 당하면 책임질 것이냐고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내가 묻는다. 그러면 처음에 아무런 검신, 검색 없이 왜 출입을 허용하였느냐고.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실수라고 답한다. 검신, 검색 시비가 붙은 이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 출입할 때는 왜 검신, 검색을 하지 않았느냐고.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는 문형검색대와 X-ray 소지품 검사대가 없어서란다. 내가 반문한다. 국가정보원 인천지부 역시 처음에는 핸드스캐너로 몸수색, 가방수색을 요구하다 그냥 변호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느냐고.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다. 핸드 스캐너로 내 몸과 가방을 수색했단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그들이 출입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보안시설의 방호목적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일관성 없는 출입절차를 들이대며 변호인들의 조력권을 위축시켜 변호인들을 길들이고자 함이다. 국가정보원 청사 출입을 안내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출입과정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왜냐고 묻는다. 신원조회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이런 논란이 약점으로 지적되어 부담이 되었는지 국가정보원 내규를 개정해 일정한 직급까지는 청사 출입 시 보안검색을 받는 방향으로 규정을 강화하겠단다. 변호인 신분을 확인하고, 변호인들이 오로지 변호권 행사 차원에서 방문한 것을 알면서도 변호인들에게 몸수색, 가방수색을 요구하는 것은 변호인들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변호권 행사를 방해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변호인의 접견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 위법한 출입절차를 전면적으로 뿌리치지 못하고 일정한 양보와 합의를 거쳐 피의자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던 변호인들의 궁박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조차 변호인들의 일관성 없음을 탓하며 국가정보원은 수사를 방해하는 변호권 남용 운운한다. 변호인들이 구속 피의자를 접견할 경우에는 출입보안절차를 준수하다가도 불구속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 신문에 참여할 경우에는 일단 피의자와 함께 국가정보원 안내실까지는 왔다가 보안검색대 통과를 문제삼아 귀가함으로써 소환 불응의 경우 체포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여 출석불응에 대한 정당한 이유로 삼기 위하여 검색대 통과문제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조작과 날조의 대명사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다운 분석평이다. 나무아미관세음보살!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사진 출처 - 씨네21 이렇게 변호인의 조력이 부재한 틈을 타 국가정보원은 구속 피의자들을 상대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추태를 부렸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불러서는 수십명의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역할을 분담하여서는 오로지 자백을 강요할 목적으로 피의자가 겁을 먹도록 어르고 모욕하거나 회유하였다. 조사 시 눈을 감는다고 욕하고, 몸을 스트레칭하였다고 위협하고,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고 팔로 턱을 괴거나 엎드렸다고 반말하고 야단쳤다. 조사 시 수사관에 대한 무례를 이유로 피의자들을 들들 볶아대고 닦달하였다. 옛날 같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실토하게 했을 것이란다. 그 옛날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에 근무하였다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경력 소개에도 바짝 쫄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위협과 농간에 피의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겹쌓여 지쳐 나갔다. 휴식 없이 숨 돌릴 틈 없이 수사관들에게 하루 종일 계속하여 시달리다 보면 피의자들은 불안감에 동요하고 조금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수사관들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라도 수사관들에게 사정할 수밖에 없고 악역 담당의 수사관들의 위협과 모욕에 시달리다 담배 한 가치 건네주며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을 거는 수사관들이 천국에서 온 구세주로 다가서는 비정상적 정신공황상태가 되고 만다. 그 수사관들의 시혜에 보은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변호사가 국가정보원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느냐, 변호사가 진술거부하면 모든 증거가 휴지조각이 되고 무죄가 될 거라고 말하더냐, 변호사가 검색대 통과 핑계대고 들어오지도 않는데 피의자를 위해서 수임료 받고 해 주는게 뭐냐, 변호사가 당신 이용하는 거다, 자기들 이름이나 알리려는 것이지 피의자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변호사가 형을 대신 살아 주냐 형량이 두려우면 차라리 우리에게 협조해라 등 피의자와 변호인을 이간질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말이 혹 진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탈출구가 있었다. 이번 여름 기막힌 현실에서 고난을 겪은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끝내 견뎌내고 당당히 자존심을 지키고 회복하는데 일등공신이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 이야기이다. 인간성을 고양시키고 인생관을 새롭게 부흥시켜 준 암탉 ‘잎싹’의 얘기를 들려주며 국가정보원의 비인간적 수사에 맞서 ‘잎싹’을 떠올리며 묵언명상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지리한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여 할 일이 따로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고생담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잎싹’을 떠올리며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하였다. 이를 피의자들과 함께 실천하였다. 왕재산 사건 수사 와중에 마침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되었다. 우리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러 갔다. 주인공 ‘잎싹’이 마냥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헌신하고 싶어서였다. 검찰총장에게 한마디 전해주고 싶다.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외치기 전에 ‘마당을 나온 암탉’ 동화책을 꼭 읽고 영화 또한 꼭 단체관람 하시라. 거기에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검찰의 자존심과 신뢰를 회복할 중요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왕재산 사건 기소에 즈음하여 곧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외치는 무리들이 또 한바탕 난리들을 치겠구나. 허깨비들의 한바탕 난리는 금방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한다. 주문을 왼다. 아멘, 나무관세음보살!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407 | 추천: 0
- 한 정치인의 우생학적 퇴화에 관한 짧은 기록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회의원 시절의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종로 담당 사건기자였고, 오 시장은 막 국회의원에 당선된 새내기 정치인이었다. 환경운동연합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그와 합석하게 됐다.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그는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서 나름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피 끓는 청년이었던 나는 대놓고 물었다. “왜 하필 한나라당이냐”고. 그리고 내친김에, 김영삼의 신한국당과 전두환의 민정당, 박정희의 공화당, 이승만의 자유당 등 한나라당의 뿌리를 언급했던 것 같다.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본산이라는 말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뜻은 통했을 것이다. 조용한 카페였고, 환경운동연합 사람들과 함께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자리였는데, 뜻밖의 질문을 받은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뭐라 반박도 하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 그가 아직 한나라당 입당의 논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명분이야 애초부터 있을 턱이 없었다. 정치를 하고 싶긴 한데,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됐다. 그런 시선을 의식해서였을까, 국회에 들어간 그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보조를 맞춰 당을 개혁하려고 했다. 5·6공 세력 용퇴를 주장하며 17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약간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런 개혁 이미지 덕에 그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고, 강금실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시장에 당선됐다. 서울시장이 된 그가 처음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정책은 ‘현장시정추진단’ 신설이었다. 서울시 공무원 3%를 일률적으로 솎아내 쓰레기 줍기 등 허드렛일을 시킨 것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줘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는 구조조정 방안이었다. 철밥통 공무원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불만을 이용해 대중적 인기를 얻어보려는 책략이었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방식에 공무원들은 경악했고, 여론의 지지도 시원치 않았다. 아마도 우익 인기영합주의자로서 오 시장의 면모가 처음 드러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때 생긴 오 시장의 별명이 다섯살훈이다. 파괴된 서울시청사의 모습 오 시장이 도덕이나 원칙, 역사를 중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내 드러났다. 이른바 서울시 청사 기습 파괴 사건이었다. 서울시 청사를 리모델링하려는 서울시와 갈등을 빚던 문화재위원회가 등록문화재인 서울시 청사를 사적으로 격상시키려하자, 서울시가 건물 일부를 기습적으로 부숴버린 것이다. 풍납토성 유적 발굴지를 훼손했다고 경찰에 입건됐던 재건축아파트 주민들이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나는 이 사건이 오 시장의 사람됨을 판단하는 중대한 시금석이었다고 본다.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문화재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든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장으로서 이렇다 할 치적이 없던 오 시장은 본격적으로 이명박 따라 하기를 시작한다. 청계천 복원을 흉내낸 한강르네상스, 서울광장을 흉내 낸 광화문광장(잔디와 콘크리트의 차이?), 대운하 사업을 흉내낸 경인아라뱃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이명박 대통령이 구상만 밝히고 임기 내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를 흉내낸 세빛둥둥섬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토건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대선 성공 모델인) 전임자의 길을 좇아 대권을 향한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 시장에게는 이명박 같은 천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이 완공되자마자 하늘은 집중호우를 뿌려 광화문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올해는 광화문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곳곳이 쑥대밭이 됐고, 급기야 우면산마저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오세이돈이 경인 아라뱃길 사업으로 서울을 베네치아처럼 만든다더니 진짜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오세이돈과 더불어 오잔디라는 별명도 얻었다. 서울광장 잔디를 새로 깔자마자 큰비에 둥둥 떠버렸기 때문이다. 세빛둥둥섬은 개장 행사인 모피 패션쇼 뒤 문을 닫았다. 누리꾼들은 세금둥둥섬이라고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오세훈의 불운은 단순한 천운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아둔함에서 기인한다. 이명박의 청계천은 비록 짝퉁이긴 하지만 ‘복원’이라는 환경 운동적 화두에서 출발한 사업이었다. 서울광장 역시 민주적 도심 공간 마련이라는 관점에서, (잔디 광장이라는 형태로) 왜곡되긴 했지만, 일정정도 서울시민의 바람을 담아낸 것이었다. 이명박은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려, 당시 시대적 화두였던 ‘환경’을 ‘토건’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오세훈의 토건사업에는 아무런 논리도 파토스도 없다. 요즘 뜨거운 논란의 대상인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도 마찬가지다. 오 시장은 이번에도 시대정신을 놓치고 있거나, 거꾸로 읽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였던 시절, 환경이 화두였다면 지금은 복지가 화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입구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오는 24일 실시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홍보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복지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반(反)신자유주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고삐 풀린 시장독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가 전 지구적 과제가 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의 복지 확대론은 대한민국의 경제규모에 걸맞는 수준의 복지를 확충해, 경제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수준이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좀 더 근본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했다. 부자감세와 재벌 몰아주기(고환율·법인세 삭감·4대강) 정책으로 재정은 바닥나고 (고환율 정책의 결과) 물가는 치솟고 있다. 700조원의 가계부채와 폭등하는 전셋값, 악무한적인 사교육비 등등 서민생활은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 관련 예산은 되레 깎았다. 전통적인 가정이 빠르게 붕괴하는 가운데 아이 하나 키우는 일은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저출산은 국가적으로 생산력 저하의 문제겠지만, 가계로서는 가장 직접적이며 비통한 생존의 선택이다. 무상급식을 넘어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국가가 제도로 책임져주지 않으면, 그런 국가를 저버릴 수 있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고 있다. 오세훈의 결정적 패착은, 유권자들에게 생존의 문제가 된 복지정책을 대권가도의 재료로 바라본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공약이 진보진영의 뜨거운 호응을 얻는 걸 보면서, 오 시장은 여기에 각을 세운다면 보수진영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덫에 걸린 것이다. 그가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천명하자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바보 같은 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한나라당은 선거에서의 유불리와 이념적 선명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 마당에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는 정책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 안되지만 무상보육은 필요하다는 황 원내대표의 논리는 전 국민적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 안건을 이리저리 바꿨다. 스스로 주민투표의 불필요성을 인정한 꼴이다. 차기 대선 불출마도 선언했다. 시민들은 그가 차차기를 노리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말이다. 오꼼수라는 별명만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 오 시장은 이제 대권 욕심에 눈먼 정치인을 넘어, 정치적 무뇌아로 인식되고 있다. 영리하게도 좌파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복지에 한다리를 걸치며 민심의 눈치를 보는 박근혜와도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오 시장은 마키아벨리스트 중에서도 급이 낮은 저질 마키아벨리스트다. 재미있는 건, 그런 오 시장을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든 도우려 한다는 점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해야 하나. 오 시장과 이 대통령에게 관중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 관자의 어록 중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스스로 물어보라. 이 중 어디에 해당할지. “왕도의 주군은 백성의 지지에 승부를 걸고, 패도의 주군은 군대의 지지에 승부를 걸며, 쇠퇴하는 주군은 지배계급의 지지에 승부를 걸고, 망하는 나라의 주군은 여자나 보석에 승부를 건다.(王主積于民 覇王積于將士 衰主積于貴人 亡主積于婦女珠玉)” <관자> 「추언편」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842 | 추천: 3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프랑스혁명이 연상시키는 공포의 상징물인 기요틴은 사실 평등하고도 인도주의적인 죽음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혁명이전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에서는 출생과 사회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의 사법적인 죽음이 선고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목을 베는 참수형은 귀족에게만 허용된 특권적 죽음이었고, 제3신분으로 분류되었던 평민 범죄자들은 목을 매는 교수형으로, 이단이나 마법과 수간(獸姦) 같은 도덕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몸을 형틀에 묶은 뒤 뼈를 체계적으로 부러뜨려 목숨을 빼앗았다. 사지를 찢어 죽이는 가장 야만적인 능지처참 형벌은 왕에 대한 반역죄를 감히 도모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혁명 덕분으로 신분의 높고 낮음과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죄인들은 공평하게 고통 없는 찰나적인 참수형을 맞이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끔직한 ‘죽음의 평등’ 외에도 프랑스혁명은 근대적인 인권개념의 탄생지라는 평가에 걸맞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개혁을 실천했다. 고문과 노예제와 같은 비인간적인 제도가 철폐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우(!)와 유대인 및 사형집행인과 같은 직업적·인종적·종교적 소수자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리고 “인간의 여러 권리들에 대한 무지, 망각(소홀), 또는 멸시가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낳은 유일한 원인”이라고 천명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서〉(1789년)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인권의 중요성을 계몽하는 좌표가 되었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며”, 안전과 압제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이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의 하나”라는 조항들은 근대 인권이 지향·성취해야 할 기본목표를 명시했다. 유감스럽게도, 근대적 인권의 탄생이 인간성의 자동적인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행진하지 못하고 때로는 소용돌이에 휘감기며 때로는 위험한 여울목에서 실종되거나 익사한다. 예를 들면, 1792년의 자유로운 이혼법은 나폴레옹의 등장과 함께 가부장권의 손아귀에서 옥죄였다가 왕정복고와 함께 1816년에 취소되었다. 아이티혁명의 흑인영웅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로 잡혀와 외딴 감옥에서 1804년 사망했고, 1830년부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이슬람교도) 남성들은 뒤늦은 1947년에야 공민권을 획득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서〉가 보편적인 원칙으로서 인권의 청사진을 제공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성―계급―인종의 편견과 차별에서 유래하는 인권의 억압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되씹어보면, 남녀평등, 성소수자의 권리, 노동과 복지의 권리, 휴식과 사생활의 권리, 이주외국인의 국적획득과 귀화의 권리 등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혁명적 과제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다. 민족/제국주의 시대라고 알려진 19세기 후반부에서 냉전시대로 특징되는 20세기는 역설적으로 인권의 중세(암흑)시대였다. 민족‘자결’주의라는 배타적인 신념은 다른 언어적·종교적·인종적 소수민족들을 증오하도록 선동하는 나팔소리로 전락했고, 좌파/우파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무한경쟁의 수레바퀴 밑에서 인권은 산산이 조각나고 깜깜하게 감금당했다. 1944년에 영국과 소련은 곧 출범할 유엔헌장에 인권 항목을 포함시키자는 다른 나라들의 제안에 반대했고, 미국은 모든 인종의 평등에 관한 구절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바야흐로 인권은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통제하고 배급해야 할 권력으로 변질했으며, 동시에 특정 이데올로기적 올바름을 후원하고 확장시키는 무기로 작용했다. 이런 세계사적 위기 속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서〉의 기본정신을 계승·발전시킨 〈세계인권선언문〉이 1948년 유엔의 주도하에 발표되었다. 프랑스혁명이 발생한 150년 후에야 인권은 비로소 재 정렬된 기준선에 서서 힘찬 달음박질의 호각소리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 인권선언문 사진 출처 - 네이버 우연히(?) 〈세계인권선언문〉이 공표된 1948년에 독립국가로 출범한 우리나라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경험한 인권의 역사는 어떤 무늬와 빛깔일까? 제1공화국 이승만 독재시절→박정희 제3공화국과 유신정권→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동안 이 땅에서의 인권은 어떻게 부침하고 왜 후퇴했는가? 독재자를 하와이로 내쫓았던 4·19 학생혁명의 값진 희생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촛불축제로 부활하는가? 공기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쥐(G)20정상회담 포스터 농담사건, 창공의 크레인에 위태롭게 고립된 노동권 등 시대착오적인 인권침해의 ‘배후’에는 누가 비겁하게 숨어 있는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심각하게 성찰하는 시간이야말로 이 땅에서 ‘인권적 인간형’이 단련되고 숙성되는 위대한 순간이다. 강조하건대, 누구의 이름을 ‘대한민국 인권탄압 실명사전’에 기록해야 하는지 우리는 (장마더위보다 더 짜증스러울 정도로) 물어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좋은 질문은 틀린 대답을 늘 이기기 때문이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0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거의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TV드라마를 싫어한다. 거기다 눈물까지 짜내는 멜로까지 합세하면 거의 혐오(?)하는 수준에 이른다. 어릴 때도 온가족이 한데 모여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어머니가 인기드라마를 방영하는 채널로 돌리면 열이면 열 투덜대며 딴 놀이거리를 찾곤 했다. 개연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주제나 산으로 가는 스토리, 억지스런 내용까지는 어떻게 근근이 견뎌본다 해도 부조리와 불의를 ‘영웅’이나 ‘성공’이란 단어와 대치시켜버리는 앞에서는, 어떤 유별난 정의감이 있는 게 아닌데도 보기조차 힘겨워질 때가 많았다. 그런 드라마에, 주인공의 부침에 따라 박수를 치기도 하고 혀를 차는 어머니 모습에 짜증을 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한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하는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에 알레르기가 있다시피 한 나로서는 일부러 찾아 ‘본방사수’를 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지만 재미있다는 주위 얘기에 끌려 식당이나 터미널 등에서 사람들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넘겨다본 적이 있다. 이 드라마는 호텔을 배경으로, 화려한 성공과 실패 속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담아낸 전통 멜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돈도, 학벌도, 운도 없는, 그래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도망치거나 참는 것으로밖에 세상에 응전할 방법이 없는 낯익은 우리 이웃의 딸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습게도 단순한 거짓말 한마디에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던 문들이 활짝 활짝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이 발견한 현실은 굳게 믿었던 도덕교과서의 내용과는 전혀 딴판으로 속는 사람이 바보고 속이는 사람이 웃는 승리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드라마 '미스 리플리' 사진 출처 - MBC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왜 인기를 끄는 걸까. 아마 지금 당장은 거짓말쟁이가 더 신뢰를 얻고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은 걸 누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눈앞에서 까발리고 끝내는 그런 삶이 파탄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사회는 여전히 거짓말을 권하는 부조리투성이 세상처럼 보인다.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거짓말은 성공의 계단쯤으로 치부되며 세상살이에 있어 훌륭한 도구로까지 포장된다. 이 드라마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리플리’는 누구나 한 번쯤을 들어보았을 전설적인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한 프랑스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주인공의 극중 배역인 톰 리플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가난한 청년 리플리는 부잣집 친구를 죽이고 그의 대역을 하는데 그의 이름은 친구를 모사, 복제(replication)하는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름을 딴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진짜로 믿고, 현실을 부정하여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정신병리 현상을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살게 되는 인격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들은 자신이 한 거짓말마저 사실로 믿기 때문에 스스로 거짓말을 인식하지 못한다. 당연히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결국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이란 성에 갇혀 스스로를 질식시켜 죽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미스 리플리, 미스터 리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하다.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아는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많은 ‘리플리’들이 일취월장, 승자의 권리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도무지 거짓의 꺼풀이 벗겨지지 않을 듯한 우리 사회의 흐름. 이런 숨 쉬기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공기가 대중들로 하여금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리플리 대열에 끼지 못하면 억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또 다른 거짓을 가공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미스 리플리’는 거짓말로 만들어지는 달콤한 세상이 곧 악마가 안겨주는 독배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드라마보다 강한 현실의 성에 갇혀 스스로를 질식시켜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57 | 추천: 0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7월 12일...... 그 날이 다가온다. 3년이 지났어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그 시험을 봐야하는 아이들은 몸에 밴 오랜 습관처럼 문제풀이로써 대비하고 있다. 이 시험을 시행한 자들은 학력성취도평가라고 명명하나 일제고사로 더욱 알려진 그것.... 그것이 바로 다가오는 7월 12일, 문제 많다는 일제고사의 형태로 치러진다. 일제고사의 문제점은 교직단체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시험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에 의해 주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교과부와 해직교사 사이에 진행된 법적 다툼에서 해직교사가 승소함으로써 교과부의 판단착오와 과도한 직권 남용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교과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일제고사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그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시험을 시행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고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국어, 영어, 수학은 전집(모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전체 조사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듬)의 형태로 보고, 사회와 과학은 표집(모집단의 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표본을 추출하는 방법으로, 확률적으로 모집단을 대신할 수 있는 일부의 대상을 선발하여 조사하는 것)의 형태로 본다고 한다. 교육을 행한 자가 교육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집으로 이루어질 경우 나타나는 문제, 예를 들어 시험결과에 따른 전국 소재 학교의 서열화, 그에 따른 지역,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서열화, 그리고 그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부정적 활성화 등의 문제점을 고려하여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표집으로 보면 사라질 여러 가지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경쟁으로만 치닫는 교육이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률을 세계 1위로 만든다든가 인성교육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제고사는 교과부가 주장하는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교육의 내용면에서 볼 때 일제고사의 획일적 시험내용은 학생들의 학력 신장도 가져올 수 없고.... 지역마다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치른 시험의 결과를 가지고 학교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면 교과부가 이런 지침을 내려보낸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일제고사 실시 후 발생할 문제점들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교육단체가 비판하고 있는 사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 인가? 아니면 그냥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무리들(?)에 대한 교과부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만약 교과부가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다면 이는 교과부가 매우 심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8일 대전 중구 태평동 유평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교과학습 진단평가 시험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면서 교과부에서 지침을 내렸으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사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아이로 교육하라면서 교사들이 소신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 교과부의 태도는 올바른 것인가? 아이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하라면서 교사들은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20년이 넘는 교직경력에서 올해 네 번째로 6학년 담임을 새로 개교한 혁신학교에서 맡게 되었다. 3월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에서 6년의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은 행복한 학교생활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반신반의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등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어온다.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계속 문제풀이를 해야 하냐고....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아이들을 중심에 두라며 우리 교육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없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32 | 추천: 0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평소 신경을 집중하면 얼굴이 잘 달아오르는 체질이어서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면을 자주 하는 편이다. 화장실에 수건이 있으면 고맙고 수건이 없으면 화장지를 조금 뜯어 수건 대용으로 삼는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웬만한 공중화장실에는 늘 화장지가 칸마다 잘 비치되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일부 화장실은 입구에서 자판기에다 동전을 넣고 화장지를 뽑아 쓰거나 밖에 설치된 덕용화장지를 각자 쓸 만큼 뜯어다가 쓰곤 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화장실은 엄청 깨끗해지고 편리해졌다. 얼마 전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회의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얼굴에 찬물을 묻히고서 수건을 찾으니 없었고 변기 칸에서 화장지를 찾으니 아예 없었다. 결국 대충 바람에 말릴 수밖에 없었는데, 행정실장님께 왜 화장지가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아이들이 화장지를 물에 묻혀 벽이나 천정에 붙이는 장난을 하기 때문에 없앴노라고 한다. 그러면 교직원용, 학생용을 구별하지 말고 화장실을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쓰면 아이들이 함부로 장난을 못 치지 않겠냐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긴 한데..’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신다. 사진 출처 - 참세상 아마도 대부분의 학교가 이와 같은 실상이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이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교실에서부터 화장지를 챙겨야 하다니... 아이들이 거의 매일 교육적 효과와는 무관한 일로 익숙하지 않은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특히나 저학년 아이들은 이에 적응하는데 엄청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화장지를 좀 아끼려고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도록 해야 할까? 이참에 학생화장실과 교사용 화장실을 통합하면 좋지 않을까? 아이들이 선생님 보는 앞에서 함부로 종이를 낭비하며 장난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통합하게 되면 중고등학교의 흡연지도도 한층 나아지리라 생각된다.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쓰는 화장실에서 감히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워대지는 않을 테니까...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0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은 혼자서 사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는 걸 가르쳐 주는 건 부모가 가르쳐야 할 몫이다.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가시 돋친 말로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 나의 행동으로 상대방이 고통을 당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아이들의 태도. 공부만 잘하면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고 키우는 부모는 부모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석이는 학급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지만 학급의 학생들은 석이를 “문제 메이커”로 부른다. 얼마 전 교실서 신체의 질병으로 힘들게 생활하는 학생을 “무뇌아, 쓰레기” 등으로 수업시간에 옆의 학생과 쪽지로 비웃다가 그 학생과 싸움으로 번져 석이의 부모가 담임교사를 만났었다. 석이 부모는 “그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안했으니 문제가 없지 않느냐?, 또 한 대 맞았으니까 죄가 없어진 것 아니냐”며 소리를 높이고 담임교사가 석이만 미워한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석이는 무릎으로 상대편학생 어깨를 차는 바람에 쇄골이 골절되었다. 석이는 다친 학생을 보건실로 부축하지도 않고 바라만 보고 미안이라고 사과만 하고 집으로 갔다. 이일을 석이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았었고 나중에 담임교사로부터 내용을 전해 들었던 부모 또한 다친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목요일 석이는 교실서 야구공을 던지는 놀이를 하다 다른 학생의 눈을 정면으로 맞추어서 실명의 위기까지 가는 상황이 되었다. 석이는 공을 던져서 다치게 한 학생의 염려보다는 공을 던지기는 했지만 공을 가져온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느라 급급했다. 다친 학생의 치료를 무사히 끝내고 돌아온 담임교사에게 석이 부모는 석이의 주장과 같이 야구공을 가져온 학생의 처벌을 주장했고, 또 그 학생 부모에게 전화로 항의를 하고, 다시 교장실에 전화를 걸어서 석이만 처벌하면 안 된다고 하고 다음날 교장실을 방문해서는 담임교사가 자신의 아이만 미워하고 처벌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올바른 부모 역할에 대한 강의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교육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체득하는 과정’이다. 학교만 하는 게 아니라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교육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어른이 되지 못한 미완성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고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주적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길러 주어야 한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게 자격증을 주듯 ‘부모 자격증’ 이런 걸주면 어떨까? 가슴 따뜻한 사람.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사람답게 키우는 것도 또한 부모의 몫이다. 서프라이즈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시골훈장’이라는 분이 쓴 ‘자녀를 망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글 중에 다음과 같은 글들을 올려놓았다. 『 잘못된 품행을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잘 할 것이라고 내버려 두고 훈계나 훈련이나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무식해서 용감한 독불장군이 되어 사회로부터 격리 될 것입니다. 또래들과 다투거나 입장이 다를 때 언제나 아이편이 되면, 장차 이웃과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입니다. 훈계하는 스승을 헐뜯는 자녀의 꾀에 넘어가면 장차 부모를 속이고 늙으면 업신여기며 불효를 당할 것입니다. 아이가 나쁜 말을 사용할 때, 그냥 웃어넘기면 재치를 키워 장차 더욱 나쁜 말로 이웃에게 상처 줄 것입니다. 』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늘어가는 이 시대에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한번쯤 새겨 들어야할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는 것은 완벽하지 못해도 가슴 따뜻한 사람. 대화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쫒아 허겁지급 살지 않는 사람 그런 여유로 힘겨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는 없을까?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194 | 추천: 0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1. 한 세대 전만 해도 교육은 근대 문화로의 변화를 선도하는 계몽적 역할을 수행했다. 개인과 집안의 신분을 상승시켜 주기도 했고, 산업 현장과 연결되면서 한국 경제발전의 기초를 담당하기도 했다. 교육이라는 보이지 않는 투자를 통해 격변하는 시대를 경험하며 헤쳐 온 기성세대는, 교육으로 성공한 이든 교육의 기회를 놓쳐 안타까워하는 이든, 한결같이 교육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여준다. 그 정점에 대학이라는 것이 있다. 온 사회가 ‘올인’하다시피 하는 대학이란 무엇이며, 오늘의 우리의 대학은 어떤 형편에 처해있는 것일까. 2. 대학은 본래 교수 또는 학습자들의 모임 또는 조직이었으나, 일제 때 ‘사립학교령’을 설치해 일정 수준의 재산이 있어야 학교 설립이 가능하도록 한 뒤에는 설립자가 교수를 고용하고 학생을 선발하는 흐름이 생겼다. ‘불온한’ 이들의 대학 설립을 제한하려는 전략적 의도에서였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사립대학은 그 뒤 시설로서의 물적 요소와 단체로서의 인적 요소를 함께 가지게 되었다. 3. 국공립 대학(국가나 지자체 같은 공법인이 설립자가 되어 시설을 설치, 운영한다)과는 달리, 사립대학은 재산을 근거로 구성된 재단법인이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주체로 부각된다. 법인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학교의 운영 주체이자 소유자로 자리매김해가면서 교수를 고용하고 학생을 선발해 교육 사업을 벌이는 흐름이 커져간 것이다. 이 점만 놓고 보면 법인 이사 내지는 경영자가 교수나 학생에 대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생, 시민, 야당인사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4. 하지만 대학은 그 의미와 속성상 ‘시설’만이 아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조직’이기도 하다. 대학은 교사와 학습자의 만남을 위한 조직적 중개자로서의 측면도 크다. ‘조직’이란 개별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을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결합시켜 능률과 합리화를 도모하는 활동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분명히 하나의 ‘조직’이다. 당연히 조직 구성원 전체가 대학의 주체이기도 하다. 시설 투자를 한 설립자가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도, 학문의 보급자인 전체 교수가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도, 시설 운영의 근간인 등록금을 내는 학생이 주인 의식을 가지는 것도 다 정당하다. 5. 때론 이 세 주체들이 충돌하곤 한다. 그러나 충돌이 있다는 것은 도리어 학교가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영자, 교수, 학생이 어떻든 주체의식,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학 교수들은 자신을 단순 피고용자로 여겨 자신을 선발한 경영자의 경영 방식이나 평가 기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때로는 비리도 눈감아주며 스스로 그에 종속되고 마는 경우가 더 많다. 그저 월급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냉소적인 회피가 주류를 이룬다. 학생도 별 주체의식 없이 졸업장이라는 자격증만 따면 그만이라는 식의 소극적 처신에 머문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특별히 사립대학의 온갖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사립대학의 문제는 대학 구성원이 자기 주장을 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으로 도피해 개인의 안일만을 보전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대학의 주체들이 교육의 공공성에 눈감으면서 소유 의식이 강한 설립자나 경영자의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 문제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이찬수 위원은 현재 한국종교교육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02 | 추천: 0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큰 지진이 있었네요. 2011년 3월 11일. 토호쿠(東北)지역. 진도 9.0. 후쿠시마 원전 파괴 방사능 유출. 희생자와 이재민은 얼마나 되는지 모름. 쓰나미가 휩쓸고 간 폐허의 땅. 우리에겐 무척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각 기관마다 마치 이 땅에서 일어난 재해처럼 들고 일어나 나눔을 강조했고 전파를 쏜다는 방송이면 죄다 ARS 걸어놓고 누가 많이 모으나 경연을 했지요. 이웃나라의 아픔에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살갑고 정다운 일이 없으니 무척 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일본의 피해상황만 보도가 될 뿐 그 안에 살고 있는 재일 동포에 대한 뉴스는 한줄 찾기가 어렵더라는 말입니다. 걱정이 되었지요. 도쿄조선 중고급 학교는 강당이 무너졌고 센다이의 토호쿠 초 중급학교는 건물자체가 기울었다는데, 그래서 졸업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데 후쿠시마는 제2의 체르노빌이 되어 방사능 천지가 되었다는데. 그곳에도 조선학교가 버젓이 있는데 이미 4년 전 극우인사인 이시하라의 도쿄도에 빼앗길 뻔 했던 에다가와(枝川)조선학교를 되찾는 모금운동에 참여했던 내가 걱정이 없었다면 말이 안되지요. 이웃나라의 재해복구 성금이 600억원이나 모였지만 그 이웃으로 인해 차별받고 고통 받았던 또 다른 나에게는 단 한푼도 지원이 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라도 그랬겠지요 “거기에 조선학교가 있는데. 거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는데..” 그때도 지진이 있었습니다. 1923년 9월1일 관동 대 지진입니다. 약 15분 동안의 지진 만으로 도쿄의 3/4이 폐허가 되었고 약 14만2천명이 사망할 지경이었으니 당연히 정부의 기능은 마비되었고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요. 그때 터져 나온 민심의 분노를 조선인들에게 돌리기 위해 일본 내무성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조선인들이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트려 약 6000-9000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인 자경단(自警團)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던 일은 잘 기억 하실 겁니다. 그날이후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어머니의 말 모국어를 잊게 됩니다. “생사를 넘나들던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날 이후 말문을 닫았습니다. 젖 먹던 시절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도, 고향땅 밟으며 재잘거렸던 수많은 조선말에 대한 기억도 다 지워야 했습니다. 고향집 주변에 사시사철 피었던 꽃의 이름과 이웃들의 정겨운 말투도 다 잊어야 했습니다. 조선말을 한다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몸서리치게 경험한 그들에게 맘 놓고 조국의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란 잠들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는 가족의 안부 몇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모국어를 잃어버린 그들은 그렇게 20여 년을 더 살아 해방을 맞았고 그해 12월에만 일본 전역에 약 560여개소의 국어 강습소가 세워졌습니다.” -졸저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중 - 정체성 이라는 게 그런 거지요. 나의 생활이 진창이 될 때면 술 한 병 들고가 잔 올리며 꺼이꺼이 울고 싶은 어머니의 무덤 같은 것. 일본인이 되어 넋 놓고 살아도 생에 단 한번이라도 꿈속에서나 만나는 고향의 바람에 살 부비고 싶은 것. 뼈와 살은 바꿀 수 있으나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몸속에 흐르는 조선인 이라는 피 때문에 그들은 학교를 세웠고 조직을 만들었으며 모국어를 가보로 여기며 지난 60여년을 한결같이 교육 시켰습니다. 지난 3월 10미터가 넘는 대형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고 이어 방사능 경보로 온 마을이 텅텅 빈 그때도 후쿠시마 조선학교의 교사와 학생 15명은 학교를 지켰습니다. 학교마저 비우면 언제 학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당장은 죽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보다 우선한 것입니다. 결국 이 학교는 폐쇄되고 인근 니이가타로 이전해야 합니다. 센다이의 토호쿠 조선학교는 무너진 강당 대신에 좁은 식당에서 졸업식을 진행했습니다. 갓 입학한 어린 초급학교생 들은 갈라진 벽을 임시로 메운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진이 나고 나서 나보다 더한 조바심을 가졌던 김명준 (영화 “우리학교” 감독)이 전화를 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우리 이대로 있지 맙시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여럿이 모여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지진피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몽땅연필” 뜨거운 청년 배우 권해효와 꽃보다 아름다운가수 안치환. 그리고 늘 부족한 내가 공동대표를 맡고 진달래 냄새 가득한 김명준이 집행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몽당연필”의 목표액은 기둥뿌리 두개. 조선학교가 다시 세워지는 그날 건물의 수많은 기둥 중에 두 개쯤은 아이들의 고향 남쪽이 전해주는 두 손의 온기로 세웠으면 하는 것이지요. 지진으로 갈라진 토호쿠 조선학교의 벽에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적은 글귀가 마음을 흔듭니다. “대지는 흔들어도 웃으며 가자!” 그 글귀에 우리는 이렇게 화답합니다. 지난날 그때 만약 이곳 한국에 있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강제징용으로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면 우리의 아버지가 무서운 총칼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 했다면 우리도 이역의 땅에서 핍박받는 조선의 아들, 지척의 갈라진 조국을 어머니로 여기며 오직 “통일” 두 글자만을 그리워하는 조선의 딸. 사랑하는 아이들아 고통은 극복 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거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으나 그렇단다 고통은 견뎌 내는 것. 그것도 웃으며 견뎌 내는 것 그러니 이제 함께 견디자. 그리고 함께 지키자. 지진과 해일로 방사능 피해로 무너진 너희의 어깨를 아직은 튼튼한 우리의 어깨에 걸고 “대지는 흔들어도 함께 가자, 손잡고 가자 웃으며 당당하게 가자”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7-07-14 | hrights | 조회: 22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