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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여성 시위를 보면서(정 원 위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4 10:40
조회
223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렸을 때 주말 백화점을 갈 때면 가족들 모두 민망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 주차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에 집결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붉은 조명 아래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는 그녀들을 보았을 때 소설에서 읽었던 ‘몸 파는 여자’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부모님댁에 갔다가 예전의 그 백화점을 가보니 백화점, 영화관 등이 들어선 대형복합쇼핑센터로 화려하게 변신해 있었습니다. 집결지는 달라진 주변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흉물이었습니다. 경찰은 올 3월말까지 집결지를 폐쇄하겠다고 통보하였고 전면 단속에 들어갔습니다. 폐쇄 방침의 배후에 백화점이 있다고 생각한 성매매 여성들은 백화점 매장에 들어가 동전으로 계산을 하겠다며 점거 시위도 하고 보디페인팅을 하며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불법영업장을 폐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당국이 집결지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집결지 주변이 낙후되어 있을 때는 묵인되다가 개발이 진행되면 대책 없이 내 쫓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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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지 여성들이 지난 5월 17일 성매매 특별법 폐지 등을 주장하며 영등포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는 우리 개발사(開發史)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입니다. 1966년 존슨대통령이 방한하여 시청 앞 광장에서 환영행사를 할 때 전세계 TV에 시청 주변의 슬럼지대가 방영되었습니다. 주로 중국 화교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국가적 망신이라고 생각한 정부는 소공지구 재개발을 서둘렀고 지금 그 자리에는 프라자호텔 등이 서 있습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총회를 1985년 서울 개최로 유치하였습니다. 당시 그 정도 규모의 국제행사를 치를 수 있을 정도의 연회장을 갖춘 호텔은 힐튼호텔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힐튼호텔 주변인 양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성매매, 소매치기, 앵벌이, 넝마의 소굴이었습니다. 힐튼호텔 객실에서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양동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토지개발공사가 나서 재개발사업을 시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매매여성 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은 내쫓기게 되었습니다.
성매매여성의 경우 이들이 다른 생계의 수단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성매매과정에서 입은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다릅니다. 묵인해 오다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주변의 환경과 집결지가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는 시점이 되면 대책 없이 쫓기는 것입니다. 성매매를 막기 위해 집결지가 폐쇄되는 것이 아니라 집결지로 인하여 저평가되어 있는 주변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폐쇄된다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강남에 건축된 오피스텔 빌딩에서 성매매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뉴스보도를 접하고 보니 집결지 폐쇄의 본질은 성매매가 아니라 집결지의 낙후된 외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이것도 디자인 서울의 그늘진 모습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