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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수사검사. 극단주의자들 (김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01
조회
469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고영주는 2013년 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변호인’의 모델이 된 세칭 ‘부림사건’ 수사검사다. 단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인물이 아니라, 현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공안검사 출신의 실제 인물이다. 고영주는 국사학자 90% 이상이 좌경화된 사람들, 제1야당 문재인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확신, 문재인을 지지한 사람은 이적행위 동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로 각 호칭하고, 5·16군사쿠데타는 정신적 혁명이라는 극단적 망언을 날리며 매카시즘을 선도하려 하고 있다.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부산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하여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자행하여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였다고 용공 조작한 공안사건을 통칭한다. 그가 이 사건과 관련해 했던 거짓말을 분석해보자.


첫째, 고영주는 부림사건을 수사하면서 고문을 당했다는 말도 들을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고영주가 피해자들의 고문 호소를 묵살하였다는 증언은 여러 차례 나왔고, 당시 재판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 없이 최대 60여 일간을 불법 구금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야 했다. 불법 구금은 검사라면 수사기록을 한번만 훑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만일 불법구금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검사 자질이 원초적으로 없는 무능력자라는 뜻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영주의 주장이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둘째,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고문을 호소하였다면 법률상 공익의 대표자이고 인권옹호자인 검사는 고문 여부를 밝히는 수사를 반드시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그는 고문 호소를 묵살하였다. 진실을 외면한 직무유기 그 자체로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고문과 가혹행위를 모르쇠하면서 독재자의 하수인 노릇을 한 자가 아직도 국가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정의가 실종된 믿기지 않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부림사건이 재심절차를 거쳐 무죄로 확정된 이후에도 고영주는 “부림사건은 공산주의 운동이며 오늘날 종북세력의 뿌리이고,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사법부가 좌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까지 한다. 시정잡배의 사적 농담도 아닌 공적인 자리에서 법조인이 한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20151014073327278244.jpg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이러한 발언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적법절차를 부인하는 것이다. 적법절차를 위반한 수사와 재판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주장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 변호인에서 ‘차동영’이 자행한 잔혹한 고문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짓이다. 사법부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빨갱이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을 빨갱이로 간주하고 빨갱이는 때려죽여도 되고, 법도 필요 없다며 내뱉고 있는 말이다. 현대판 마녀사냥인 것이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세운 IS(이슬람 국가)가 중동을 피바다로 물들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영주 같은 이념적 극단주의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념 전쟁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는 자들의 행동도 똑같은 이념 전쟁을 원하는 자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은 “흑과 백 둘 중 하나를 골라라. 네가 나의 적이 될 것인지 아군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고 시민을 윽박지르고 있다. 나와 다른 것은 모두 적(공산주의자, 빨갱이)으로 여기는 극단적 이분법만을 가진 자들이 불행하게도 현실을 장악하고 있다.


IS 이슬람국가와 국내의 극단주의자들은 모두 폭력과 증오를 근본 뿌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다.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은 공통적으로 극단적 이념을 신봉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항상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살인과 억압, 고문, 사건 조작을 정당화하는 폭력신봉자들이다. 이들의 말로라도 비참해야 하는 것이 인과응보에 맞다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반성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오히려 이런 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이 되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헬(지옥)조선이라고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자유 수호와 인권을 금기시하고, 통일된 문화국가를 꿈꾸는 것조차 금지하고, 평화를 거론하는 것도 반역자로 치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꿈꾸는 세상. 그것은 조국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 아니다. 단지 조국을 더럽히고 질식하게 만들 뿐이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