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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아마추어인가, 그도 아니면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01
조회
381

- 안철수의 리더십과 아마추어 정치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이는 누굴까.
몇몇 정치인이 떠오르겠지만 단연 압권은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서울 노원구병)이 아닐까. 꼭 안 의원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는 아쉬움을 넘어서 가슴 칠 일로 기억될 것이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격적으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광화문 유세가 끝난 뒤 안 의원은 측근들에게 “새정치는 없고, 친노만의 선거다. 민주당과 앞으로 더 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건 안 되건 나는 내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역사적인 대선 투표 당일 가방을 싸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천생 ‘아마추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 후과가 얼마나 큰지 자신은 알고 있는지.


안 의원은 대선이 끝난 뒤 신당(新黨) 창당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사람은 안 모이고 최장집 교수 같은 멘토들이 떠나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격 합당을 선언했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안철수가 ‘새정치’라는 깃발을 내걸고 창당했지만, 창당을 하자마자 정글의 법칙에 익숙한 그의 측근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떠나는 사람을 잡지도 않았다. 그 결과 어느 순간, 안철수의 우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게 됐다. 호시탐탐 안철수의 입만 노리는 하이에나 떼들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는 듯하다.


6001604461_20151005.JPG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부산 시내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 출처 - 한겨레21


안 의원의 정치 입문(入門)은 이제 고작 3년을 넘겼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청춘콘서트’가 인기를 끌고 젊은이들이 그를 신데렐라처럼 떠받들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바람을 잡기 시작한 게 2012년 3월이다. 당장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난 뒤 후보를 전격 양보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봐줄만 하다. 안 의원이 대표로 있을 당시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안 대표가 세월호 사고 수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일이 전혀 없다. 아니, 안철수가 대표로 있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지 모른다. 무늬만 대표였지 그에 걸맞은 실력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관전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 안철수 자신만 모르고 있다.


정당의 대표는 주식회사 대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 입문 3년이 지나도록 이점을 간과하고 있는 모습이다. 안 의원이 회사를 운영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정당 운영도 회사 대표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아마추어적 행태는 여기서 비롯된다. 특히 안철수는 정치판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칙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랬으니 추진하고자 한 일마다 파토가 났던 것이다. 또한 공작과 음해와 역공이 난무하는 정치판의 생존원리조차 알지 못했다. 이것이 안철수 정치의 한계이자 현주소다.


안철수가 정치인으로 적어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안목이라도 있었다면 결코 구 민주당과 합당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6.30 지방선거에서 단 한 석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또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전멸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며 고집스럽게 갔다면 지금쯤 대안정당으로 국민들 뇌리에 자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 당장 죽어도 내일은 살아날 길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안철수는 역시 아마추어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그는 여의도 정치판으로 진입한 이후 눈에 띄는 대권 주자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지도는 대권에 도전했을 당시보다 한참이나 떨어진다. 정치는 상대가 있다. 구호와 선전,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상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정치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전장에서 전투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정치는 더러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다른 면에서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경우 일방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거나 청와대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정치적 쇼를 통해 이미지 정치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그에게서 전투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이유다.


지금까지처럼 아마추어 같은 모습에 머문다면 정치인 안철수의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불어 역사의 아픔도 깊어질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를 그만두든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이 아마추어를 말릴 수 있을까.


이 글은 2015년 10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