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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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소위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대학 안팎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고경영진(CEO) 인문학 강좌’가 회사경영과 시장경제에서 차지하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의 중요성을 고용주들에게 주지시킴으로써 인문학전공자들의 취업알선(?)을 겨냥한다면, ‘시민인문학 강좌’는 상아탑 바깥에 거주하는 일반인에게 꿈꾸기와 사색하기 등과 같은 인문학적 가치를 일깨워줌으로써 팍팍하고 고단한 그들의 삶을 위무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유익하고 행복한 세상살이에는 전혀 쓸모없는 ‘음풍농월(吟風弄月)’과 ‘고담준론(高談峻論)’에 탐닉하고 있(다)는 인문학에 쏟아지는 비난을 불식시키고 일반인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인문학 대중강좌이다. 그 중에서도 ‘희망의 인문학’은 노숙자나 수용자와 같이 특수한 처지와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삶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력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사회복귀를 안내해 주는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나는 지난 2월에 수원구치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학술진흥재단이 후원하고 인권실천시민연대 등이 주관하는 ‘평화인문학’ 강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가?,’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프랑스혁명의 재발견: 여성과 인권’ 등의 세 이슈에 초점을 맞춰 10명의 미결수들과 함께 공부했다. 강좌의 기본취지는 우리가 이제까지 배웠던 역사지식이 위인과 영웅, 유럽과 남성 등을 중심으로 한 승자들의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반성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 동안 억압되었던 집단들(민중과 여성, 사회주변인 등)이 ‘낮은 목소리’로 전해주려는 ‘또 다른 이야기’를 경청해 보자는 것이었다. 승자의 역사학이 그 본질상 정복과 파괴, 침략과 갈등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동반한다면,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역사학은 공존과 배려, 포옹과 용서를 지향함으로써 평화인문학의 성격에도 부합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위와 같은 그럴듯한 수업목표를 표방하면서 진행되었던 ‘수용자를 위한 교정인문학’ 강좌는 내게 몇 가지 심각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소위 제도권(대학교)에서 ‘역사 선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10여 년 동안 근무하면서 일반인들이 흥미롭게 읽고 양식으로 삼을만한 글을 단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는 창피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강의 자료집에 게재될 글을 요청받고서야 나의 학문 활동이 극히 소수의 동업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 연구에 제한되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무도 읽지 않는 하찮은 논문들을 (되도록이면 많이!) 생산하는데 열중하면서 정작 중요한 세상살이에는 무관심한” 한심한 인문학자가 내 자신이었던 것이다. 내 이웃과 사회, 현실과 세계정세에서 격리된 백면서생들이야말로 인문학 위기의 주범이라는 비판에서 나 자신도 비켜갈 수 없었던 것이다. 평화인문학 1기 수료식 모습 다른 한편, 나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궁극적으로 수강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끊임없이 직면해야만 했다. 강의주제와 관련해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지배층들이 독점했던 역사서술의 편향된 시각과 해석―예를 들면, ‘인디언’을 멸종위기로 내 몰았던 프런티어(Frontier, 개척)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최강국으로 발 돋음 한 미국의 서부팽창사와 “나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자랑했던 19세기 어느 영국 지식인의 유럽중심주의적 발언을 상기해 보자―에 대한 비판은 자칫하면 반미적·반세계화적인(?) 이념교육처럼 들릴 우려가 있다. 마찬가지로, 지배와 통치 및 질서와 발전이라는 승자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아래로부터의 시각으로 되씹어보면 산업혁명이나 자유방임주의가 이룩한 빛나는 성과는 다른 사람들(노동자와 실직자)의 상처와 고통의 대가였다는 설명은 기존체제를 향한 저항을 부추기는 좌파적(!) 선동으로 오해될 여지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본인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행위를 현재의 시점에서 깊이 반성하여 건전한 미래설계의 발판으로 삼아라. 그것이 죄인인 당신들이 입 닥치고 배워야할 불멸의 역사적 교훈이다.”라는 훈계조의 도덕수업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위험한 의식화교육’과 ‘따분한 정신무장교육’이라는 두 축 사이를 불안하게 왕래했던 나의 강좌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오늘날 (이 단어에 밑줄 좌~악),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부여안고 수용자들과 함께 했던 총 6시간의 수업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획득했으며 인생관과 역사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자신은 캠퍼스 바깥에서의 교류경험을 통해 역사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사회적 책무의 상관성을 고민해 볼 좋은 기회를 가졌다. 흔히 우리는 역사를 과거-현재-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에 비유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나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법으로 해서 새 것을 만들어 낸다)’ 같은 개념들은 과거의 거울에 오늘의 얼굴을 엄정히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경계하여 새로운 내일을 다짐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존재이유이며 주요기능임을 확인해 준다. 역사서의 제목에 종종 ‘거울’을 뜻하는 ‘감(鑑)’이라는 글자가 붙는―예를 들면, 《자치통감》이나 《동국통감》―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핵심내용은, 이 역사의 거울은 닦으면 닦을수록 위험하여 그것을 자기 입맛대로 과장, 곡해, 요용하려는 사람들을 반드시 처벌한다는 점이다. ‘역사 = 위험한 거울’의 등식은 최소한 두 차원에서 성립된다. 첫째, 역사의 지평이 점점 확장되어 ‘과거의 민주화’가 실행된다면 오랫동안 역사무대에 등장을 거부당했던 개인이나 집단들―청소년과 청년백수, 노숙인과 수용자, 비정규직노동자, 동성애자와 정신병환자, 외국인이주노동자 (무순^^*) 등―이 자신들의 정당한 몫과 권리를 요청할 것이다. 그동안 객관적 진리라고 암기했던 것들이 사실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실’에 불과하다고 깨우친 이들은 기득권층에 도전하여 기존의 세계관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역사학에 대한 한 개인의 지식과 인식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그는 자신을 둘러싼 ‘지금 이곳’의 정치외교적·사회경제적·문화종교적인 모순과 시대 착오성을 예민하게 파악할 능력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역사학은 우리가 이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 가도록 도와주는 좌표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금에 획책되는 반시대적이며 반국민적인 정책과 통치술의 무지와 과오를 포착하여 비판할 수 있는 고감도 안테나와 꺼지지 않는 촛불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혹시, ‘평화’인문학 잔치에 초대되어 ‘다치지 않으려면 조심해! 역사는 위험한 거울이니까’라는 불경한 메시지를 (나에게, 너에게) 발신했다면, 나의 ‘오늘날, 역사학개론’은 본의 아닌 실패작이었으리라.
2017-07-20 | hrights | 조회: 187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터진 입술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입안도 온통 헐어버려 흥건히 피가 고였지만 웬일인지 머릿속만은 또렷하게 후련해져왔다. 지금도 무슨 억하심정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고딩 1학년 2학기말, 교련필기시험에 백지를 내버렸다. 늘 은빛 대위계급장을 양어깨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며 월남에서 용맹하게 베트콩을 때려잡은 무용담을 늘어놓던 구릿빛 얼굴의 교련선생은 시험성적 발표날, 마지막으로 불러 낸 뒤 칠판 앞에 차렷 자세로 세웠다. 그는 약간 살벌하게 보이는 검은 가죽장갑을 끼고 명령했다. “입 꽉 다물어 ! 이빨 나간다 !” 어찌 보면 나는 고딩때 부적응 학생 이었다. 학교가 싫었고, 수업시간에는 뽀얀 몽상에 빠져 들기 일쑤였다. 늘 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숱한 의문들에 휘감겨 있었다. 완력으로 학교에서 짱을 먹을 배짱이나 관심은 없었지만, 언제나 숨 막히게 내리조이는 알지 못할 억압의 실체가 궁금했고 깊은 외로움의 뿌리를 들추어내고 싶었다. 가부장적인 부모님은 내가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 보다 점점 삐딱하게 엇나가는 자식이 걱정거리 일 뿐이고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내면의 동요를 들어주는 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무관심과 비난의 눈초리에 덧없이 삶은 방치되어 가기만 했다. 따뜻한 돌봄과 자상한 관심이 필요했지만 캄캄한 한밤중에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돌부리에 채인 생채기는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역설적으로 나는 대학에 가서 ‘의식화 학습’을 하면서 소외와 억압의 뿌리와 실체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서서히 방황을 마치고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10대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며 치를 떨다가도 내 아이만은 이 무모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생존 할 수 있을 거라는 쓸모없는 욕망으로 무장하는 어울릴 수 없는 두 가지 욕망이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과정인 듯싶다. 일제고사를 치루는 아이를 ‘거부’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모른 척 눈감아야 하는지 갈등하다 수치스런 이율배반 앞에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어른들의 모습일 것이다. 일제고사로 줄 세우고, ‘자율’학습을 핑계로 밤늦게 까지 잡아두며 여전히 머리나 교복 길이로 쉽게 아이들을 통제 하는 구질구질한 일이 거리낌 없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고딩시절 나처럼 삶에 절망하고 마음속으로 학교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마, 전국 순위 10% 정도에 들어 ‘대박인생’이 예정된 아이들을 제외하고 지금 자신을 아끼고 미래를 낙관하면서 준비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 듯싶다.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로 대표되어 온 경쟁 중심의 교육정책에 대한 현장의 우려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여성신문 촘촘히 서열화 된 사다리를 올라타려고 발버둥치지만 더 높은 사다리를 연결시켜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는 것이 아예 불가능 한데도, 꾸역꾸역 경쟁의 사다리를 올라타는 현실은 아직도 내 아이만은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부질없는 신앙이 만들어 낸 속임수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함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어 무거운 열패감을 털어버리려는 안간힘 일 것이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면 고딩 시절 정신줄 놓지 않으려고 꾸준히 썼던 잡글, 제법 풍부한 독서가 그나마 나를 지탱해준 기둥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신줄’ 잡으려는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고, ‘꽃남’같은 드라마로 아이들의 영혼에 각성제를 놓는 우리가 지금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아이들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대리자로, 계급상승을 향한 허망한 ‘기대’를 쟁취하는 전투병으로 만들면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아이들을 알량한 판타지 드라마로 잡아두려는 교활한 모습으로 어느덧 그 옛날 대항하던 어른들을 닮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거대한 욕망의 구조물을 과연 하늘 꼭대기까지 쌓아 올릴 수 있을까?
2017-07-20 | hrights | 조회: 158 | 추천: 0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올 1월 ‘한 가지라도 지키자’는 기치(?) 아래 결심한 일이 “한 달에 두 번 이상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이다. 작심 3개월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2월에 본 두 번째 영화이니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영화관에 가기 전에 서둘러 영화평을 읽으려고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대부분 영화관련 소식이지만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청와대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등등도 함께 검색된다. 제목만 보아도 내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고, 시간도 없어서 영화평만을 읽고 덮어두었다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다. 이카루스의 꿈도 되살아날까? 대한민국의 시간을 1980년으로 되돌리는 ‘짧은 시간여행’에 빠진 것은 이 때문이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전 일에 태어난 남자로부터 시작하여 2005년 그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의 죽음까지 무려 87년의 세월을 더듬고 있는 영화에 비하자면 28년 전으로 시계를 돌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닌 성 싶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였으니 예상하지 못한 고된 일이 된 셈이다. 원인은 시간여행 길에 다시 마주친 마티스의 그림 ‘이카루스’에 있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밀랍이 녹아 추락한 무모한 이카루스는 유명 화가들에게 좋은 미술소재이다. 그런데 다른 화가들이 이카루스의 ‘추락’을 그린 반면 마티스는 이카루스의 ‘열정’을 그렸다. 선명하고 부드러운 파란색 몸뚱이와 왼쪽 심장 부근 오직 하나의 붉은 점. 마티스는 젊은 이카루스의 무모함에서 붉은 열정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꿈을 본 모양이다. 아니 필자가 그렇게 보았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든가.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그 그림을 잊지 못하였고 결국 다시 맞닥뜨린 것이다. 만약 1980년대 한국으로 되돌아간다면 수 많은 이카루스를 보게 될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눈부신 젊은 열정을 곳곳에서 마주칠 것이다. 젊음 탓일 수 있다. 하지만 젊다고 하여 다 이카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특정 시기에 집단적으로 그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사랑과 명예도 마다하고 목숨을 내거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앙리 마티스 <재즈 이카루스> (1947) 사진 출처 - 네이버 하지만 마티스의 이카루스 보다는 브뤼겔의 이카루스가 그 이후 한국의 현실에는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 브뤼겔의 그림에서 이카루스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가 그린 평화로운 어느 농촌의 풍경 속에는 바다에 추락한 젊은이의 흔적이 오른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남아있을 뿐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카루스의 다리 때문에 그림을 본 후 참으로 씁쓸하였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감정을 박사학위를 마치고 처음 섰던 강단에서 경험하였다. 사회운동론 강의를 하였던 당시 필자는 강의 시간에 1980년대 비디오를 보여준 적이 있다. 광주학살 비디오를 본 학생들은 경악했지만 그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필자도 내심 놀랐다. 굳이 역사학자 카(E.H.Carr)의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 모르는 불과 20여년 전의 역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아득한 옛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되살아나는 것 속에 이카루스의 꿈도 있을까”에서 급기야 “그 많던 이카루스는 다 어디로 갔을까”로 번졌고 덕분에 눈이 뻘개져서 출근하였다. 그래도 요즘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 출근할 안정적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임시, 일용직 일자리가 줄었고 상용직 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2009년 1월 고용동향 자료를 충혈 된 눈으로 읽다보니 직장이 있어 시간여행이라도 한다 싶다. 이번 경제위기는 1997년과 다르다. 그때는 대기업 근로자도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등 임금 근로자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였다면 이번의 경제위기는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일용직, 자영업자, 임시직, 상용직 순으로 일자리가 줄고 중소영세사업장부터 문을 닫는다. 또한 대다수 국민이 경제위기라는 강물에 빠진 1997년에는 대기업과 상용직 순으로 구명대에 올라타 그 이후 10년간 한국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는 순서대로 빠진다. 아니 구명대에 올라타지도 못한 채 10년을 버티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급류에 휘말렸다. 게다가 지난 경제위기의 극복속도가 매우 빨랐다면 이번 경제위기는 그렇지 않다.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를 예측하기가 두려워 고용동향 자료를 읽기가 무섭다. 하지만 학자는 무릇 진실 앞에서 두려워 말아야 하며, 최소한 사실이라도 잘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가끔 종군기자가 겪을 법한 고민에 사로잡힌다. 내가 그 사진을 찍는 동안 사람이 죽어가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나 그 현장을 찍어 전 세계에 알려야 하나. 그러나 이카루스까지 포함한 그 역사를 찍어내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라고 믿으며 더 이상의 질문을 접는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53 | 추천: 0
안수찬/ 한겨레21 기자 ※ 이 글은 SF 꽁트입니다. 아주 먼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 어둠의 세력은 은하계 전체를 ‘클놈’ 전쟁에 몰아넣었다. ‘죄다이’ 기사단은 악의 포스에 맞서 평화를 회복하겠다며 전투에 나선다. ‘맹박틴’ 의장은 합법적으로 공화국 의회의 권력을 얻었으나 점차 독재의 야욕을 드러내고, 그의 뒤에는 은하수 남쪽에서 행성 시세차익에 몰두해온 악의 무리 ‘시세족’의 공작정치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한때 제다이 기사단의 미래 리더로 촉망받았던 명문대 졸업생 ‘아나킨 스카이(SKY)’는 다크 포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끝내 ‘뉴라이트로 베이다’로 변절하여, 맹박틴 의장의 제국 건설에 가담한다. 베이다의 덫에 빠져든 죄다이 기사단은 사실상 절멸 당했고, 공화국 건설 때부터 죄다이 기사단을 이끌어온 ‘사는게 요기다’와 죄다이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는 ‘이리온 캐놈이’만이 살아남아 도피중이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뉴라이트로 베이다의 고향인 ‘티케인’ 행성의 선술집에서 모처럼 만나 시국을 한탄하는데…. - 사는게 요기다(이하 요기다) : 티케인 행성도 마이 썰렁하네. 이 동네서 아나킨 스카이가 코 찔찔 흘리쌓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냐오냐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카이. 금마가 맹박틴한테 붙어먹을쭐 누가 알았겠노. 내가 운동을 너무 오래해가 별 희안한 꼴을 다 본대이. - 이리온 캐놈이(이하 캐놈이) : 워따, 성님. 이젠 베이다로 부르쇼잉.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비러 묵을 자슥을 워째 꼬박꼬박 옛 이름으로 부르는지 성님 속을 모르것소. 티케인도 옛 말이지라. 쩌그 옛날에는 은하계의 모스크바라고 했담시롱, 워떻게 된 시상인지 그 많던 반군들이 싹 씨가 말라뿌렀소. 은하계 전체에서 1인당 소득이 질로 낮은 별이라던데, 이짝 사람들은 무슨 심뽀로 맹박틴을 죽어라꼬 지지하는지 내사 모르것소. 제국 시상이 되믄 못 사는 사람들은 더 지지리 궁상이 된다는 것을 참말로 모르는갑소. - 요기다 : 어허이, 일마, 니는 그 목소리 좀 낮차라. 저거뜰 안마당이라서 드로이드들이 방심하는 동네라고 일부러 여서 만난긴데, 죄다이 여 있다꼬 유세하믄 우짜노.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라. 와 불렀노. 좀이 그래 쑤시더나. 쫌 잠자코 지키보민서 전략도 짜고 해야지, 궁디가 그래 가벼워가 우째 좋은 세상 만들겠노. 맹박틴이 은하대철도 놓는거 잘 지켜보라캤는데 니는 그런 일은 또 죽어라꼬 안하재. 내가 몇 번을 캐야 알아듣겠노. 우리 미래는 현장에 있다카이. - 캐놈이 : 성님. 지금 은하대철도가 문제가 아니요. 성님 밑에서 심부름하던 ‘함 쏠놈’ 있잖소. 거 느끼하게 생긴 놈. 긍께, 그 네미랄 자슥이 ‘레이아’ 공주한테 치근덕거리다가 끝내 사고를 쳐부렀소. 아, 뭔 사고겄소. 그렇고 그런 일이지라. 하여간에 쪼깐 급하게 돼부렀소. 레이아 공주가 지금 고발한다고 난리가 났소. - 요기다 : 고발? 무슨 고발을 한다 말이고. 지금 시국에 니 죽고 내 죽자카는 것도 아이고. 안된다. 그건 막아야 된다. 안 그캐도 맹박틴이 우리 잡아묵을라꼬 눈에 불을 키고 있는데. 그 가시나가 진짜로 고발하믄 드로이드들은 기자 새끼들 불러가 전부 까발길끼고, 그래 되믄 제국신문이 대문짝만하게 쓸낀데. 안된다. 죄다이가 쪽팔리믄 안된다. 우리는 가오 하나로 사는데. 니 공주 만나거든 합의하자 캐라. 함 쏠놈 그 자슥은 고자를 만들어뿌고…. - 캐놈이 : 워메 성님, 지금 고러쿠럼 화부터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요잉. 시상이 워떤 시상인디. 성님이 공화국 건설 투쟁하문서 한창 잘 나가던 때만 생각하믄 안되지라. 고 시절엔 광선병에 레이저 붙여 던지다 잡히가믄 투사 대접받던 때 아니요. 지금은 아니지라. 죄다이 기사단 살리는 셈치고 입 닥치고 국으로 가만 있으라고 혀봐야 씨알도 안맥히는 시상이오. 하믄이라. 지금은 인권이 질로 중하지라. 쩌그 레이아 공주 오빠 있잖소, 죄다이 되겄다고 수련중인 넘, 그렇지라 그 ‘이크 스카이워커’가 머라 떠드는줄 아씨오. 죄다이 기사단 간부들이 죄다 물러나야 한다고 그러요. 죄다이 기사단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 요기다 : 가만, 니 지금 무슨 소리를 씨부리쌓노. 보자보자카이 일마가 지금 내를 협박하고 있네. 카니까 내보고 물러나라는 소리 아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꼬 물러나야 된단 말이고. 살다살다 희안한 소릴 다 듣겠대이. 마, 치아뿌라. 내가 무역연합 무너뜨리고 공화국 만들 때 손에 피한방울 안 묻힌 놈들이 내한테 감히 오라가라 캐? 그라고 니, 캐놈이, 늙었다고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재. 함 쏠놈은 내가 벌써 죄다이 기사단 비서진에서 제명했다. 진상조사도 했고. 쫌 있다가 레이아 만나가 합의하자 칼끼다. 평생 입 다물고 있으라꼬 설득도 할끼다. 진짜 문제는 캐놈이, 니다. 니가 기자들 불러가 살살 냄새 풍기고 다닌다매. 무슨 성추행 사건 있다꼬, 함 취재해보라꼬, 기자들 똥구멍 핥고 다니는 거, 내가 모를줄 아나. 니가 내 앞에서는 살살 거리면서도 내 밀어낼라꼬 별 지랄 다 하는 거, 내 모를줄 알았나. - 캐놈이 : 워메, 성님, 고것이 무슨 말이다요 뚫린 입이라고 말을 고러쿠럼 함부로 하믄 안되지라. 제가 뭣을 풍기고 다닌다고 그러씨요. 솔직히 말혀서 요기다 성님이 주변에 친한 넘들만 불러다가 쉬쉬함시롱 자기들끼리 일한다는 거, 은하계 사람들 중에 몰르는 사람이 없소. 허구헌날 안드로메다계하고 은하계하고 통일 해야 된다는 이야기만 하는게 뭔 놈의 운동이요. 지금 은하계 사람들은 다 죽게 생겼는데, 안드로메다계하고 통일해봐야 먼 소용이 있겄소. 죄다이 기사단에는 민주주의가 웂는디 사람들한테는 민주주의 투쟁 하라고 말하는 것도 암 소용이 없지라. 함 쏠놈 사건 말고도 성님이 죄다이 기사단의 비민주적 운영에 대해 책임질 일이 적지 않으요잉. - 요기다 : 니 말 한분 잘했다. 사건 하나 터짔다고 옳다꾸나 하고 권력투쟁 벌이는 니는 그래 얼마나 민주적이고. 맨날 계급투쟁하자꼬 말로만 과격한 너거뜰이 공화국 잘 되는 일에 먼 도움이 됐노. 사람들 마음이 죄다이 기사단에서 떠난 거는 다 너거뜰 같은 과격분자들 때문 아이가. 그 잘못을 와 내한테 떠 넘기노. - 캐놈이 : 되얐소. 성님하고 말쌈 하는 것도 지겹소. 성님 생각을 워째 바꾸겄소. 평생 그러고 사씨요잉. 그렇지만 이번에는 물러나야 쓰겄소. 안 그러믄 죄다이 기사단, 진짜로 망해뿔 것이오. 사람들이 울더러 손꾸락질 하는 것을 워떻게 감당할 것이오. 새로 태어나야재라. 성님이 물러나씨오. - 요기다 : 진짜로 사는 게 욕이다. 내 물러나믄 그래 니가 죄다이 짱 묵을끼가? 내 물러나면 니가 죄다이 기사단 다시 일으킬 수 있겠나? - 캐놈이 : 성님, 술이나 한잔 받으씨오. 성님하고 나하고 생각이 다른 것이야 워쩌겄소. 지금 질로 중한 것은 우리 기사단이요. 맹박틴 앞에서 자살골 넣는 일도 정말 지긋지긋하요. 성님하고도 워쩌다가 이런 사이가 되얐는지 모르겄소. 더 싸우긴 나도 싫소. 그냥 하와이 행성에 가씨오. 가서 몇 년 있다 오씨오. - 요기다 : 니나 가라, 하와이. 이기 전부 다 ‘클놈’들이 우리한테 등을 돌리가 안 그렇나. 니 때문이다. 맨날 타협도 안하고 과격투쟁만 하니까, 죄다이는 못 믿겠다고 맹박틴한테 돌아선거 아이가. 니 말 듣는다꼬 죄다이 선봉투쟁만 벌인 게 내 죄라카믄 맞다. 클놈, 금마들이 진짜로 불쌍한 놈들인데. - 캐놈이 : 우리야 클놈들이 알아서 죄다이 따라올줄 알았지라. 클놈이 원래 용병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아니요. 평생 기계부품으로 써먹히다 제 대접도 못받고 계약기간 끝나면 고철 처리 되는 안드로이드니까 당연히 제국에 반대할줄 알았지라. 긍께 고것들이 제국 시상이 되믄 제 형편 핀다고 맹박틴한테 몰표를 줄거라고 성님인들 생각할 수 있었겄소. 너무 그렇게 몰아세우믄 안되지라. - 요기다 : 아이다. 암만캐도 죄다이만 모아서는 세상 못 바꿀 끼다. 우리끼리 만날 운동이니 투쟁이니 떠드니까 클놈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거 아이가. 우리끼리 잘났다고 나대니까, 함 쏠놈 맹키로 천하에 때리죽일 자슥도 생기는 거 아이가. 일마, 캐놈이야. 그카지 말고, 우리 죄다이 기사단 그냥 해체해뿌까. 차라리 클놈 연합 같은 거 만들까. 클놈이라꼬 전부다 제국에 부역하는 건 아이잖아. 생각있는 클놈들도 쪼매는 안 있겠나. 가들하고 다시 연대하는 게 차라리 안 낫겠나. - 캐놈이 : 그려도 성님, 일단 이번에 물러나는 건 맞지라? 그건 약조를 쪼깐 해줘야 쓰것소. - 요기다 : 에라이, 이 맹박틴 똥구녕에 은하계대철도 깔다가 광선병에 맞아 디질 놈아. 니 미버서라도 그래는 안한다. 함 쏠놈 고자 만들고 레이아하고 합의볼끼다. 그 이상은 안된다. 맹박틴 좋은 일을 내 손으로 와 하노. 아주 먼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서 이런 꼬라지들을 하고 끝까지 목청 높이던 마지막 두 죄다이 기사는 “누군데 이렇게 시끄럽냐”고 참견한 옆 테이블의 ‘누쿠 백작’과 실랑이를 벌이다 티케인 행성의 지역토호 ‘자바라 헛’에게 잡힌다. 그 사이 은하계 신문, 방송, 인터넷을 장악한 유일한 거대언론, 제국신문은 요기다와 캐놈이가 함 쏠놈의 성추행 사건 은폐를 모의하다 들켰다고 대서특필했다. 제국의 드로이드는 그들이 소지하고 있던 광선병을 압수하는 한편, 그들의 집에서 불온서적 <죄다이는 어떻게 단련되나>와 <안드로메다를 우러러 보며>를 발견하고 반제국음모법에 의거해 추가 기소했다. 정식 죄다이가 되지 못한 ‘이크 스카이워커’는 죄다이 기사단의 몰락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전해지는데…. “아니유. 어디 말이 되남유. 뉴라이트로 베이다가 ‘내가 늬 애비다’, 그런 말을 했다고 지가 쉽게 넘어가남유. 마음으로는 죄다이가 되고 싶었지유. 근데 지들끼리 망하는 디 워쩌겄슈. 할 수 없지유, 뭐. 이젠 취직이나 해야지유. 아, 괜찮아유. 어떻게 살아지겄지유.” 사진 출처 - 스타워즈 홈페이지
2017-07-20 | hrights | 조회: 185 | 추천: 0
이재승/ 건국대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 권력은 경제를 닮아 불안과 강박 상태에 놓여있다. 그런데 권력의 강박적 행태들을 연옥의 한 시절로 마냥 감수해야 할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표현행위를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권수정이라는 망측한 틀로 우려스러운 역사관을 강요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금지와 강요 사이에 고통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처벌하는 틀은 참으로 가지가지다. 타인에 대한 모욕, 명예훼손, 심지어 사자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기밀누설, 반국가단체활동의 고무, 찬양, 동조 등이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빈틈없이 틀어막는 법제를 가진 나라가 우리 말고 없을 것이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표현행위와 관련하여 대종은 명예훼손 소송이다. 그러나 자유언론이 보장된 나라는 명예훼손을 둘러싼 소송이 빈발하는 나라를 촌스러운 나라로 취급한다. 특히 자유화이후에 서구사회는 동구권국가에 대하여 명예훼손을 둘러싼 소송에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할 것을 여러 차례 촉구하였다. 아직도 표현의 자유, 자유언론을 위하여 사회가 지불해야 할 통행료를 치르지 않는다고 줄기차게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의 명예와 연관되지 않는 표현행위는 찾기 어렵다. 특히 웬만한 공공적 중요성을 갖고 있는 사안에서 개인이 없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공익과 개인의 명예 사이에서는 뭔가 근본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자유언론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죄나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침해하는 비근한 예들이다. 최근에 사이버공간상의 모욕적인 표현을 더욱 간편하게 제한할 수 있도록 개정하려는 시도, 미네르바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죄의 적용시도도 표현의 자유를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권력이 특정한 성향의 표현행위를 겨냥하면 내용, 성질, 방식, 동기 등 갖가지 요소들에 있어서 약간이라도 유사한 수많은 표현행위들을 무더기로 침묵시키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에 이른다. 어느 경우에나 권력에 봉사할지 모른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표현의 자유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보장되는 미국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의회가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헌법에 부합하는 데에는 100년 이상이 걸렸다. 수정 제1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선동규제법을 제정하여 반정부적인 표현을 제한하였다. 법원도 나쁜 결과를 야기할 경향이 있는 표현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수정헌법 제1조가 명실상부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일련의 반전론자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판결에서 정립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의 이론이었다. 이제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행위도 표현의 자유에 속하게 되었다. 정치적 사상이나 종교적 교의를 선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진리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왔다. 밀튼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진리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여전히 진리에게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도 표현의 자유가 진리발견에 봉사한다거나 오류도 진리를 생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직도 표현의 자유는 진리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진리란 무엇인가? 법정에서 국가가 진리를 규정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다투는 재판은 종교재판과 다를 바가 없다. 억압하는 권력도 진리의 이름으로 불편한 진실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서 한 차원의 비약이 이루어진다. 진리와 표현의 자유가 충돌할 때 단호하게 표현의 자유를 택해야한다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지적 활동의 근원이고, 민주주의의 초석이기 때문에 다른 강제수단을 통해서 억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견은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서, 사상은 사상의 자유 시장을 통해서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홈즈(Holmes)와 브랜다이스(Brandeis) 판사가 이를 정식화하였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의 가장 큰 적은 흐리멍덩한 대중과 거칠 것 없이 설치는 국가권력이다. 지난 1년간 사람들은 미네르바에게 이미 신뢰를 보내고 있는데, 그 신뢰도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사상의 자유 시장을 통해 정화되어야 하는 것은 미네르바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독점욕이다. 미네르바의 혀를 뽑아 국가정책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의 제물이 되기 위해 국가가 미네르바에게 낚인 것이 아닐까?
2017-07-20 | hrights | 조회: 326 | 추천: 0
이광조/ CBS PD 어제, 그러니까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아침, 출근길 자유로를 달리던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속보를 듣고 하마터면 교통사고를 낼 뻔했다.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이 경찰특공대의 진압에 맞서다 건물에 불이 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잠깐 혼돈을 느끼던 나는 이내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좌절과 무기력함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사건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리고 사건을 둘러싸고 무수한 말들이 쏟아졌다. 가난한 이웃들의 안타까운 비극을 슬퍼하고 마치 전쟁을 벌이듯 강경한 진압작전을 편 경찰을 탓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철거민들의 농성이 ‘도심 테러’라는 비난도 들린다. “도심테러적인 성격이 있었다”(한나라당 장윤석 의원), “이 불법 농성을 생존권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고의적 방화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염병 투척자가 죽었는지 살아났는지도 핵심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안”(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떼만 쓰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심리가 깔려있다... 어떻게 이렇게 폭력시위를 할 수 있는지, 국민으로서 반성을 해야 한다... 불법 과격 시위문화가 이번 사건의 원흉”(한나라당 이은재 의원). 국회의원이라는 분들이 쏟아낸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이틀 전 출근길에서 2009년 1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이 참사를 내가 왜 그렇게 짧은 시간에 현실로 받아들였는지 그 이유를 새삼 확인하게 됐다. ‘그렇지, 내가 이런 나라에 살고 있지.’ 그들이 뱉어낸 말에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엿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도심테러’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의원은 한나라당 ‘용산 철거 참사 진상조사단’ 단장이며, 유족들의 오열이 잦아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의적 방화’ 운운한 의원은 야당의원이 자신을 부를 때 이름만 불렀다고 시비를 벌였다고 한다. 거 참,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판이다. 그나마 서울시에서는 조합 중심의 현행 재개발 사업의 폐해를 인정하고 철거민 생활안정과 법질서 유지를 모두 고려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지극히 밋밋하고 사무적인 입장표명이지만 맞는 말이다. 분명 서울시는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많은 서민들을 보금자리에서 내쫒고 있는지, 원주민 정착율이 얼마나 낮은지, 재개발사업을 통해 투기세력과 건설사들이 어떻게 배를 불렸는지, 공권력이 철거민들에게는 엄격하고 용역깡패들에게는 얼마나 관대했는지... 그렇다면 서울시가 알고 서울시민이 알고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이런 상식을 한나라당 의원 나리들만 모른다는 말인가. 빈민운동의 대모를 비례대표 1번으로 영입한 정당이 설마 이런 상식적인 일을 모를까. 현실의 허점은 많지만 허점은 점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도 법은 지켜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70년대부터 근 40년 동안 변하지 않는 도시재개발 현장의 이런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건 누구의 책임인가. 서민들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거듭된 배신과 좌절에 누구를 믿고 어떻게 내일을 기다리란 말인가. 겨울에는 철거를 하지 않는다는 오랜 관행도 결국은 이런 현실에서 나온 타협책이었을 것이다. 뿐인가. 철거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업체가 제대로 처벌된 게 몇 건이나 있나. 뉴타운 계획도 없는데 선거 승리를 위해 거짓말을 한 정치인들이 처벌되는 거 봤나.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일수를 올려주지 않아 일용직 노동자들이 고용보험 실업급여를 타지 못한 일은 또 한 두 건인가. 의원나리들이 그렇게 들먹이는 법에는 이렇게 허점이 많다. 뿐인가 서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을 아예 만들지도 않은 책임 방기는 어디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 소통이 단절되고 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사회적 약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집단행동에 의지한다. 경험이 보여주듯 대개의 경우 이런 집단행동은 작은 폭력에 그친다. 하지만 소통을 내팽개친 권력은 거대한 폭력으로 작은 폭력을 집어삼켜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 무식이든 무관심이든 의도적 무시든 국민 대다수가 아는 현실을 무시하고 약자들에게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 폭력은 바로 그들의 근엄한 입에서 시작된다. 처참했던 용산 참사 현장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이번 용산 참사를 보며 지난 해 6월이 떠오르는 건 비약일까. 지난 해 6월 몇 달에 걸친 국민들의 끈질긴 저항 끝에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졸속적으로 추진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청와대 뒷산에서 시위대의 촛불을 보고 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니 노력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자녀의 건강을 걱정해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어머니에게 국회의원이 훈계조로 호통을 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고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광화문 사거리에 흉물스럽게 놓였던 컨테이너 박스는 치워졌지만 청와대와 국민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장벽이 들어섰을 뿐이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정비’로 이름을 바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밀어붙이고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학교에서 쫒아내고 ‘입법전쟁’, ‘속도전’ 같은 무시무시한 구호를 앞세워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신과 상처를 심으려는가. 국민과의 소통을 포기한 채 자신의 뜻과 이익만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권력 밑에서 충성경쟁이 벌어지고 그 충성경쟁의 와중에 숱한 폭력이 춤을 추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이 폭력의 시대, 야만의 시대로 기록되지 않을지 두렵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52 | 추천: 0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지구촌’이나 ‘세계화’ 같은 상투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우리는 외국인과의 만남 혹은 부딪침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도 강의실과 학교식당 등지에서 동아시아에서 온 어학연수자와 한국학을 배우러온 서양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농촌에 시집온 동아시아 여성들과 중소기업에서 기술 연수차 일하는 외국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지난 5천년동안 지켜온 단일(배달)민족’의 긍지와 배타성은 그야말로 낡고도 옹졸한 신화가 된 것이다. 이처럼 직장과 강의실, 지하철과 친척모임 등지에서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면, 내가 배워야 할 바람직한 ‘타자관계’는 무엇일까? 내가 최근에 경험했던 두 개의 에피소드를 함께 곱씹어보면서 이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작년 11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되었던 국제학술대회에서의 베트남 여성학자(N)와의 충돌(?)이다. N과 함께 동일분과의 공동사회를 맡았던 필자는 앞 섹션이 예정보다 길어져 급한 마음에 N을 소개도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 순서를 진행했다. 그러자 N은 벌떡 일어나 자기를 무시하는데 대해 항의했고, 실수를 깨달았던 나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발표장의 다른 참석자들에게도 진행수정을 공지해야만 했다. 한국정부기관이 이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잘난 체하며 주인행세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이로 따져도 나보다 젊었던 N이 정색을 하고 따지는 장면에서 나는 그 전날 호지명기념 박물관에서 보았던 내란시절 호지명의 연설에 환호하던 자립적이며 자존심 강한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나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소위 ‘계약직 외국인 교수(M)’와의 오해(?)사건이다. 평소 교내에서 만나면 인사를 주고받고 간혹 ‘원어민’의 도움이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문의하는 그런 관계였다. 그의 영어교정에 대한 답례로 나는 대개 점심대접을 해 주곤 했는데, 얼마 전에도 급한 영문서류가 있어 그에게 언제까지 교정해주면 고맙겠다는 요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M은 ‘사전 양해도 없이 일방적으로 부탁하는데 짜증이 난다.’는 요지의 답변을 보내왔다.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너는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을 하는 게 섭섭하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학교식당에서 혼자 점심/저녁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지나가는 한국식 인사말로) ‘언제 식사나 한 번 하자’고 말하곤 했는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었다는 매서운 지적이었다. 당황한 나는 “영어교정과 식사대접을 교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미안하다.”라는 답변을 보내고 바쁜 연말에 만사를 제치고 그와의 식사(대화)자리를 마련했다.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개인적 일화를 밝히는 까닭은 아마도 누구나 외국인과 관련해서 나와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혹은 근거 없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외국인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성들의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고 우리는 불평하지 않았던가.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이 한국인처럼 ‘빠릿빠릿하고 근면하지 않다’고 폭언한 적은 없었는가. 또한, ‘우리보다 못사는’―사실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곰곰이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동아시아 국가에서 유학 온 대학생들을 예비불법체류노동자로 의심하지는 않았던가.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들을 대상으로 ‘김치 잘 만들기 대회’를 열어서 격려하는 것도 좋지만,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그녀 고향마을의 토속음식을 배워서 아내, 며느리의 향수를 달래주는 것은 어떨까. 낯선 외국인·외국문화를 익숙한 우리 기준에 억지로 맞춰 ‘동화’시키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문화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배우고 맛보려는 관용과 호기심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의 첫 걸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필자가 주장하려는 요점은 ‘국제협력이나 국가 간 인력교류와 같은 거창한 차원보다는 일상생활 영역에서의 외국인과의 이해와 소통이 더 긴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대학생들을 인턴, 유학생, 교환학생이란 이름으로 외국유학을 보내더라도 그들이 민족주의적 의무와 자긍심으로 가득 차서 귀국한다면 인류애와 세계평화 향상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다문화(가족)간의 소통에 대한 연구프로젝트가 아무리 학문적으로 중요하다 하더라도 직장동료로 와있는 외국인의 소외와 고민을 경청할 배려가 없다면 그 빛나는 연구결과는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외국도시나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시장이나 동장이 자매마을을 시찰(관광?)하고 돌아오더라도 그곳에 시집 온 어느 외국인 며느리가 자살하거나 도망간다면 문서상의 혹은 ‘위로부터의’ 국제교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만,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국제교류와 의사소통은 바다를 건너고 비행기를 타고 요란하게 왕래해야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지금 여기’ 내 곁에서 살고 있는 ‘타인’(그가 반드시 외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과의 새로운 만남과 관계 맺기로 결실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41 | 추천: 0
반복되는 민간인 대량 학살 홍미정/ 건국대 중동 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신이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팔레스타인 땅에 평화가 오기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한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야만적인 학살 행위가 계속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10여일이 넘게 가자 지구의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하고도 테러리스트 하마스를 척결하는 작전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이스라엘 정치인들, 시몬 페레즈, 에후드 올메르트, 에후드 바라크, 치피 리브니. 동족이 저렇게 학살당하고 있는데도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 이스라엘에게 자위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대통령 부시를 비롯한 서구 정치인들. 특히 휴전 중재를 하는 것처럼 쇼를 하고 있는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 등은 극도로 혐오스러운 정치인들이다. 팔레스타인 의료진들에 따르면, 12월 27일부터 1월 6일까지 10일 동안 이번 전쟁으로 살해된 660명의 팔레스타인인들 중에는 어린이 215명과 98명의 여성들이 포함된다.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어린이와 여성인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며, 하마스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선전한다. 인구가 밀집된 가자 지구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워싱턴의 MEPC(Middle East Policy Council, 중동정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11개월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432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은 29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하였다. 지난해 6월 중반부터 6개월 휴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37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하였고, 팔레스타인 노동자가 예루살렘에서 불도저 공격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인 3명을 살해하였다. 이 휴전 기간 동안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인들을 선제공격하지 않았고, 11월 4일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선제공격함으로써 하마스 대원 6명이 살해되었다. 이 사건 직후 이스라엘 군부는 “휴전을 중단시킬 의도는 없다. 이 작전의 목적은 하마스 테러 조직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엄청난 휴전 위반에 로켓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 때 이스라엘 군부는 “하마스가 휴전 유지를 원하는 것 같다”고 주장하면서, 양 측은 휴전 상태로 복귀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가자를 완전히 봉쇄함으로써 모든 물품의 반입을 철저하게 통제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은 극심한 식량난, 의약품과 생활필수품 부족에 시달렸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휴전을 위반해 온 셈이다. 이렇게 보면, 공식적인 휴전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생계와 관련된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결국 화력을 동원한 대규모의 공세로 돌입할 것이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몫이었다.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한 팔레스타인 소년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사실 필자는 지난 주 초까지도 이스라엘 육군이 가자 지구로 들어가서 내부를 초토화시키며, 시가전을 수행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스라엘인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자의 잘못된 판단은 이스라엘 건국 과정이 주는 교훈을 망각한 결과였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는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하마스 기반시설 제거 목적을 넘어서서 이스라엘 건국이후 진행된 전쟁들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혔다. 지난번 전쟁들,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발발한 전쟁들과 이번 전쟁은 일방적인 대량 학살, 파괴, 난민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닮아 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하가나(Hagna), 이르군(Irgun), 스턴(Stern) 갱단 등 일련의 유대 테러 단체들의 공격과 1948년-1949년 전쟁은 팔레스타인 전체 마을의 50퍼센트가 넘는 531개의 마을을 파괴하였다. 이 때 파괴되거나 몰수된 팔레스타인 재산은 2천9십억 달러로 추산된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대량 난민이 발생하면서, 1950년에 UNRWA(the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for Palestine Refugees in the Near East,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에 등록된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총 91만 4천명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건국과 1948년 전쟁 과정에서 축출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전체 토착주민 100만 명 중 90퍼센트에 이른다. 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의 주역이며 총리였고, 199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츠하크 라빈을 비롯해 아리엘 샤론, 레하밤 지비, 도브 호즈, 모세 다얀, 이갈 알론 등의 이스라엘 역대 총리들은 한결같이 하가나 대원들이었다. 하가나, 이르군, 스턴 갱 등은 1948년 4월 9일 데이르 야신(Deir Yassin) 마을을 공격하여 한번에 245명 이상의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공격하여 점령해 나갔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전에 메나헴 베긴(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당시 이스라엘 총리)과 이츠하크 샤미르(1991년 마드리드회의 당시 총리)도 이 테러 단체들을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현 대통령 시몬 페레스는 1994년 팔레스타인인들과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전쟁을 주도하는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을 비롯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비둘기파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인들과 협상을 주도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정치인들은 가자 지구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자행함으로써 전쟁광처럼 보인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신에게 기도한다. 반복되는 학살을 멈춰달라고.
2017-07-20 | hrights | 조회: 170 | 추천: 0
- ‘각론’으로 맞서고, ‘지역’에서 시작하자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혹시, ‘폭동’을 바라고 있나? 이 질문은 이명박 정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이에 맞서려는 시민사회운동을 포함한 이른바 ‘진보진영’에게 던지는 것이다. ‘폭동’에 대한 언급은 경제학자 우석훈 씨가 최근 꺼내든 것이다. 이른바 ‘빈곤형 경제빅뱅’을 예견하면서 내놓은 위기감의 표현이다. 그런데 그가 쓴 글은 단지 위기감을 부풀려 표현한 ‘선동’이 아니었다. 그의 진단은 결론적으로 한국경제가 “좋든 싫든 중남미형 경제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중남미에서 언제 폭동이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내년 연초 경제팀은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처방도 잊지 않고 내놓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빅뱅이 “여의도 증권가와 관청 사무직들의 서류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라는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 15일, 경향신문이 연말을 맞이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응답이 60%를 넘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한 경제학자의 폭동 예견론과 한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어떤 것부터 생각하게 될까? 당연한 결과? 그러면 그렇지? 대선 이전부터 회자되던 자조적 이야기들, 즉 한나라당 집권 하에서 한 번 제대로 당해봐야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알게 될 거라는 식의... 그래서 이것이 암울한 경제상황과 맞물려 ‘폭동’으로 나가길 바래야 하나? ‘폭동’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난 ‘촛불’에서 광범위한 사람들의 운집과 저항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학자들 대부분은 ‘주권혁명’, ‘직접민주주의의 시작’과 같은 거대담론 시각에서 다루었다. 물론,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촛불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공포 같은 구체적인 먹거리의 문제에서 터져 나왔다는 걸 상기하면, 그 거대담론의 와중에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야기한 수입정책 하나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몇 개월 전 만난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촛불은 환상이다. 팩트는 사람들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즉, 이명박 사람들은 그 ‘팩트’만을 대처하고자 했던 것이다. 분노를 달래거나 혹은 억누르거나. 그리고 우리가 촛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사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외양만을 고친 채 이뤄졌고, 미국산 쇠고기는 몇 개월도 안 돼 대형마트 진열대에 올랐다. 만의 하나, 못살겠다고 정말로 ‘폭동’이 일어나도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나는 지난 촛불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시민사회운동이 스스로 무기력해진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우리나라 시민사회-진보운동을 대표하는 서울의 단체 활동가들을 마주하거나, 토론회장에 나가보면, 촛불의 의미를 끄집어내기에 바빴고, 그 결과의 하나인지 모르지만 촛불의 위력을 가능케 한 인터넷 등 미디어 배우기에 골몰한 모습에서 아연했었다. 운동의 자리를 대중이 대체하는 시대상황을 고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체로 시민사회운동의 역할론에 대해 망연자실하거나 무기력감에 빠진 모습 이상이 아니었다. 그 나마의 주장은 촛불을 계승하는 국민적 기구를 만들자 정도였는데, 그 또한 앞이 뻔히 보이는 고루한 제안으로 비쳐졌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오마이뉴스에 실렸었던 한 영국 유학생의 흥미로운 제안이 떠올랐다. 그는 영국의 사회정의위원회 구성사례를 들며, 촛불을 이어갈 대안으로 ‘독립적·수평적 국민대안위원회’ 구성을 제안하였다. 촛불로 응집된 국민저항과 여망을 모아, 미래를 설계하는 수평적 국민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가 사례로 제시한 영국 노동당의 사회정의위원회는 우리의 촛불정국과도 흡사했던 대처정권 말기의 상황에서 대안부재를 돌파할 역량으로, 대처리즘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의 노동당도 아닌 새로운 국가모델 설정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들을 2년의 연구기간을 거쳐 내놓았다. 물론, 이 과정은 어느 정치세력이나 학자들만의 그것이 아니었다. 소개되기로, 자문과 자료를 제공한 각종 인사와 단체의 명단은 수백에 이르러 최종 보고서 중 12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다고 하였고, 그 범위는 학자, 정치인, 사회단체, 이익단체, 연구기관, 기업, 해외 인사, 국제단체 까지 포괄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1997년 신노동당 정권의 전략으로 전폭 수용되었다고 소개하였다. 우리가 촛불국면에서 이를 모색했으면 어땠을까? 비단 어떤 기구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촛불로 촉발된 생활적 문제의식들을 매개로 미리 예견되고 있었던 MB의 정책과 대조되는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으면 말이다. 최근의 ‘민생민주주의 국민회의’라는 것이 뜨긴 했지만, 이 조차도 기존의 시민사회운동의 대책기구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 같다. 촛불이 생활을 영위하는 개인들의 집합된 저항이었다면, 적어도 국민이 아닌, 우리시대의 ‘개인’을 대변하고, 또한 참여하는 형태의 수평적이면서, 훨씬 전략적인 모색이 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의 운신형태는 훨씬 구체적이고 각론적이어야 한다. 경제학자 한성조는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펴낸 책에서 평소 자신의 신조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구체적 성공 경험의 축적을 통해 결코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진보를 이룩한다” 나는 10여년 시민운동을 하면서, 구호와 주장이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정책결정과정에 유효하지 못했던 오류들을 많이 접해 왔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거리에서 외치는 동안 관련 법안,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돼 버리고, 환경이슈로 비상시국을 선포하고 광화문 거리에서 단식하는 동안 기업도시법과 같은 법들이 국회에서 통과돼 버리는 식이었다. 지난 주 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예산 삭감을 위해 3일 동안 국회에 상주했다. 제주가 무슨 무슨 특별법하면서 십 수 년 흘러온 지역이라, 이는 나에게 매년 이때 즈음의 연례적인 일이 된다. 올해도 벌써 여섯 번째 이른바 ‘국회로비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국회 풍경 안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싫든 좋든 입법과 예산결정권을 가진 그들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압박하고, 때로 타협하는 식의 구체적 정책 활동이 아쉽게 느껴졌다.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집요한 각론적 대응이 절실할 때다.   수도권규제완화철회와 분권, 균형발전 실현 전국연석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수도권규제완화 철회와 하천정비사업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 참여해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이번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은 지역발전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법적 제도적 균형발전을 배제하려는 의도와 지속적으로 수도권규제완화를 추진하려는 의도 부터 철회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국회예산이 처리 직후, 민주당 안에서도 지도부 무능론 등 후폭풍이 불고, 언론이나 시민사회도 대운하 예산이니 선심성 예산이니 불을 놓는 형국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차피 기댈 수 없는 민주당만 탓할 일도 아니다. 지금, 이른바 ‘MB 법안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추락하는 지지도에 기대를 거는 사이,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한 경제학자의 우려 깊은 진단을 매개로 MB정권이 무너지거나 정신 차리길 어쩌면 은근히 기대는 사이, 쟁점법안들은 불과 몇 시간 사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변화를 동반하며 결국 통과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변화 중심에 진보운동의 절박하고도 구체적인 운신이 서 있게 되길 바란다. 한편, 국회 예산처리가 끝나자마자,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2단계 지역발전 정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계획과 관련,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했듯, 국토유린이라 할 만한 토건프로젝트를 경기부양책을 빌미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둘러싼 형국은 ‘자치단체 환영 - 시민단체 반대’이다. 그런데,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지역의 진보운동은?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의 언론들은 아예 이번 계획에서 제주가 제외되었다며, ‘홀대론’을 펴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도 이 계획에서 진보운동의 편이 아니다. 'MB 법안'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이미 민주당은 이 계획을 환영하는 지역의 토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소속 국회의원들도 자치단체들이 환영하는 이 계획에 대해서 예산따오기 첨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삽질경제’니 하는 담론차원 만이 아니라,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접근법이나 ‘사실은 대운하 1단계 사업’이라는 쟁점식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계획이 향후 5년,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 만료시점을 목표연도로 하고 있지만, 다행히 그 사이 지방선거가 있다. 때문에 바로 지방선거를 목표로 이 계획의 허구와 문제를 밝히는 ‘지역’차원의 집요한 ‘각론 대응’이 형성되어야 한다. 아니면 전혀 다른 프레임을 갖는 지역의 각광받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중앙의 노예로 전락한 지방의 현실에서 필경 이 문제들은 지역의 발전담론과 관련해 지방선거의 쟁점이 될 텐데, 더구나 ‘지역’이 실종된 MB 정책은 바로 지역에서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지방선거는 그 매개가 되어야 한다. 외자유치와 규제완화를 둘러싼 지자체 경쟁, 토건경제를 주도하는 토호권력이 바로 국가노선과 맞물려 돌아가는 MB체제하에서 이의 균열을 촉진하는 것은 지역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론적 대응으로 구체적인 성공을 축적하고,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자.
2017-07-20 | hrights | 조회: 147 | 추천: 0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중학교 3학년 딸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춘천은 ‘비평준화’지역이다. 그래서 인구 26만 규모의 중소도시에서 명문고와 비명문고를 따지며 아이들을 줄 세우고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있다. 춘천도 한때는 이른바 ‘뺑뺑이’를 돌려 고등학교를 결정 한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명문고’ 출신 정책결정권자들의 반란으로 10여년 만에 비평준화로 돌아섰다. 언필칭 시민운동을 한다는 나도, 아이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여느 아버지처럼 오그라들어 평소 주장하던 커다란 가치와 현실이 맞부딪히는 통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뺑뺑이 세대인 나는 운좋겠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전두환 정권이 서슬 퍼렇게 과외금지·보충수업금지·우열반 금지를 내세우는 바람에 고딩 3년을 자유롭게 다채로운 경험을 하며 보냈다. 대학입시도 요즘처럼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내신과 학력고사 딱 두과정만 거쳤다. 그래서인지 요즘 입시방식은 이해하기 어렵기까지 하다. ‘무능한 386’은 어쩌면 이런 단순한 입시구조에서부터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춘천의 기득권층이 고등학교 뺑뺑이를 무력화 시키며 비평준화를 도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 수준과 학벌은 지배층에게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교육제도는 사회 세력 간 역관계의 반영이다. 춘천에서 비평준화가 도입된 뒤 몇 차례에 걸쳐 범시민적으로 평준화 운동이 전개되었고 교육감 선거 때마다 중요한 선거 공약으로 거론되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학서열을 고착시키고 사교육비 경쟁에 시민들을 내모는 현실은 교육 받을 권리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등을 두면서 실질적으로 신분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0교시 수업과 우열반 편성 등 교육과학기술부의 자율화 추진 계획에 대해 지난 4월17일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부모로부터 물려받거나 우월한 사회적 지위에 의해 전수된 문화자본이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를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따라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자본의 크기와 위치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현실이기도 하다. 학교교육을 거부할 배짱은 없고, 다른 방식으로 키우려 해도 조건이 허락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공교육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인 나는 요즘 어느새 아이 교육을 핑계로 사교육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대한민국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총력을 기울여 사교육에 쏟아 부어도 서울의 강남을 쫓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한 질주하는 세상에 점점 뒤떨어져만 간다는 두려움에 시지프스의 쓸모없는 노동처럼, 흉내를 내본다. 이렇게 우리 아이와 나는 어느새 교육제도의 볼모가 되어버렸다. 학교가 개인의 상승을 허용하면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에 봉사하는 중립적인 제도라는 환상은 이미 소싯적에 버렸지만 점점 타락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도록 밀어내는 비루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춘천근교로 귀농한 후배가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폐교를 막기 위해 ‘산촌유학’을 준비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산촌유학’이 한편으로 초등학교 정도에서는 자연과 함께 하는 성장경험이 필요하다는 도시 중산층의 여유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내 생각이 지나친 편견일까? 초등학교 도시유학생을 받아들여야 학교 정원을 지킬 수 있는 현실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춘천의 ‘2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해서 실업계 고교로 발길을 돌리는 아이의, 분노로 축 처진 어깨위에 우리는 무슨 위로의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낙오되고, 뒤처진 그 아이들의 좌절된 미래를 향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몰락해가는 지역의 학교와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지금, 눈높이를 더 낮추고 도전하라고 훈계하고 있지는 않은가?
2017-07-20 | hrights | 조회: 189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