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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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서울살이는 지금이 두 번째이다. 작은 읍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어찌어찌 서울이란 곳으로 대학을 오고 금쪽같던 젊은 시절 5년을 서울서 보냈다. 그리고 3년여 전부터 다시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서울은 별로 정이 안 간다. 서울살이를 삭막하게 만드는 이유야 여러 가지이나 그 중 하나는 폭력과 관련한 것들이다. 그 당시 대학은 남성중심문화가 팽배해 있었고, 특히 학보사라는 곳은 야구방망이얼차려는 기본이었다. 그거야 뭐 집단의 역사니, 문화니 하여 참을 만했다 해도, 술자리에서 선배의 성추행에 항의하다 두사부일체를 외치는 추종자에 의해 끌려가 눈에 불똥이 튀도록 맞은 것은 미해결된 분노다. 그리고 3년 전 서울로 이사 온 지 삼일 째 되던 날 이웃과 주차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끝내는 다치게 되고 말았다. 벽 하나를 사이 두고 살아야 하는 관계에서의 그런 상황은 마주칠까 불안하고 두렵기조차 했다. 딸아이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는 했었다.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고 이사를 가 일단락되면서 다행히 잊어가고 있다. 타인에 의한 일회적 폭력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가족에 의한 폭력은 일상 속에 폭력이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경험의 강도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리라 예상된다. 죽음보다 두려운 경험이 아닐까? 폭력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보다도 하루하루를 죽음의 공포로 살아야 하는 그 과정에서 이미 한 인격에 대한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사람이 인격을 팽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때, 물건으로 취급받을 때, 고통의 공포가 전신을 지배할 때... 이미 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그 상황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가 성별권력관계로 둔갑한 모습일 때 침해는 더 깊어진다. 지난 10월 28일에 열린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10주년 기념포럼 사진 출처 - 필자 ‘가정폭력방지법’(‘가정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통상 ‘가정폭력방지법’이라 한다)이 시행된 지 10년이 흘렀다. 법제정 활동을 하던 당시만 해도 가정폭력은 ‘사생활’ 이었고, 법제정은 ‘사생활 침해’였다.-10년이 흐른 지금 ‘가족관계등록법’ 이나 ‘정보통신법’을 통해 ‘사생활 침해’를 넘어 ‘통제’ 하기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것이 격세지감인가?-아내구타로 인해 여성들이 사망하고, 가해남편에 대한 우발적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때서야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언젠가 말했듯 여성의 인권은 죽어야 관심을 받는다.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다. 이 주간도 도미니카의 세자매가 죽음으로 독재에 항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게 ‘가정폭력방지법’은 수많은 구타여성들의 희생 속에서 만들어져 10년이 지나고 있다. 법 시행 10주년을 맞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정폭력-정확히 아내구타-의 현실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본회에서 10주년 기념 토론회를 개최하여 법 시행이후 달라진 점과 향후 가정폭력추방운동 및 법 개정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방송과 토론회를 통해서 나타난 가정폭력의 현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가정폭력 소송 통계로 나타난 것도 감소율이 별반 차이가 없다. 방송프로에서 보여준 폭력의 강도는 변화 없이 잔인함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가해자들의 의식 또한 여전히 ‘맞을 짓을 해서 맞는..’ ‘여자는 때려도 되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가해자치유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회의가 드는 순간이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한다. 그 무엇도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가정폭력으로 명칭 되는 아내구타/ 아내폭력은 두 가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물리적 폭력이 허용되는 폭력적 사회문화, 남성과 여성의 성별 권력관계, 위계의 질서에 놓여있는 성차별문화이다. 아내에 대한 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폭력에 관대한 문화를 성찰하고 폭력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에 대해 밝혀내고,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가정 내의 폭력이 사회적 범죄로 처벌됨을 명확히 배우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부터 폭력근절을 위한 교육이 정기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폭력을 포함한 인권교육이 정규과목이 되거나 정기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법의 개정이다. 폭력의 종식이 아니라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우선하는 가정폭력방지법의 목적이 바뀌고,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치유를 위한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고 있는 가해자 처벌은 가해자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반복의 위험성 등을 고려한 실질적인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검사에게 집중되어 있는 피해자보호청구권을 경찰이나 피해자가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피해자 보호에 집중하여야 한다. 또한 피해자보호에서 우선 급한 것은 폭력피해여성들의 자활과 자립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노숙인들 중에 가정폭력피해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로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일상 속에서 폭력문화를 종식시키고 추방하기 위한 생활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현재 각 지역에 여성폭력관련 협의체들이 있는데, 지역민-관련단체 및 기관-지자체가 연계되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예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지역별 협의체를 강화하여 폭력예방에 적극 나서고 그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폭력은 경제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IMF시기 가정폭력이 급증한 경험이 그것이다. 고환율에 고물가에 과연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는 현재의 경제 불안은 분명 어디선가 소리 없는 가정폭력을 양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극한은 극한을 부추긴다. 물질만능의 경쟁지상주의 속에서 도태되고 발붙일 곳 없는 이들의 기형적 탈출구로 가정폭력이 존재하게 되는 이상 어떤 법과 제도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될 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폭력에 대한 성찰의 첫걸음이다. 남을 돌아볼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탕이 될 때 가정폭력추방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사회는 누가 만들 것인가? 아무래도 정부에 대해서는 희망이 없다. 나부터,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그런 사례들을 만들고 확산하고 그래서 모델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오늘부터 나부터 모든 형태의 폭력사용을 금지하기로 마음먹고 실행해보자. 그것만이 대안이다. 가정폭력을 내문제로 인식하는 것.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92 | 추천: 0
홍미정/ 건국대 중동 연구소 연구원 2008년 11월 2일 헤브류대 학생 알리 바하르는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와의 악수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금당하고 신분증을 빼앗겼다. 페레스가 악수를 요청했을 때, 바하르는 “나는 어린아이들을 살인한 자와 악수를 하지 않겠다. 2000년 이후 이스라엘 군인들이 1천 50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살해하였고, 같은 기간에 팔레스타인 전사들이 이스라엘 어린이 123명을 살해하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그 실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은 태도를 지난 선거 운동 기간 동안에 표명하였다. 지난 6월 미국-이스라엘 공공업무 위원회(AIPAC)의 연설에서,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안보는 신성불가침이고,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이스라엘 동맹은 공동의 이익과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에 근거하며,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그는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이란이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가자에서부터 테헤란까지 그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미국-이스라엘의 방위 협력이 강화되어야하며, 이를 위하여 대통령으로서 10년 이내에 3백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이스라엘과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동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이스라엘에 3백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이 제안의 의미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군국주의화를 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은 이스라엘을 군사 요새로 변형시키고, 주변 중동 국가들의 무장화를 급격히 부추기면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연설 도중 오바마는 시오니스트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주제어인 ‘홀로코스트’를 언급하면서, 2차 세계대전에서 외할아버지의 형제들이 6백 만 명을 학살한 악마 나찌와 대결해서 싸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아프리카 흑인 아버지와 미국 백인 어머니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자신의 생애가 세계 각지를 떠돌았던 유대인들의 그것과 유사하다며, 고향 땅을 회복한다는 기치를 내세운 시오니스트들의 꿈에 깊은 공감을 표명하였다. 그는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국가를 창설한 것은 정당하고, 필수 불가결하였으며, 수십 년 동안 투쟁한 성과라고 평가하였다. 이스라엘 국가 창설 60년이 지난 오늘날 이 투쟁을 완화시킬 수 없으며, 포기할 수도 없고, 대통령으로서 자신은 이스라엘의 안보 문제에 관한한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약하였다. 이러한 오바마의 주장은 이스라엘 국가가 토착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량학살하고, 90퍼센트의 주민들을 추방함으로써 건설되었고,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만이 핵을 무장한 국가이며,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 땅 전역을 군사 점령한 상태이며,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일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국가 폭력이 하마스가 이스라엘인들을 공격하는 것과는 규모나 빈도수에서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의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오바마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공정한 분쟁 조정자라면, 이스라엘의 안보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에 대한 권리와 인권 보장을 주장해야할 것이다. 지난 7월 2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Western Wall)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의 모습 사진 출처 - 로이터 오바마는 지난 7월 이스라엘 방문에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고, 중동에서 유일하게 민주적인 국가다.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중동 정책의 출발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연대 의사를 재차 확인하였다. 반면, 그는 압도적인 화력을 사용하면서 매일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민간인 살상과 팔레스타인인 영토 강탈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팔레스타인인을 언급한 경우는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를 합리화시키는 불가피한 배경으로써 ‘이스라엘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알려진 하마스’뿐이었다. 오바마의 눈에는 하마스 이외에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가자 근처의 스데로트 이스라엘 점령촌을 방문하여 하마스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이란, 하마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위협론을 거듭 주장하였다. 그러나 11월 5일,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후 이란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아마디 네자드 대통령은 오바마에게 당선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것은 이란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마스 최고 지도자 칼리드 마샬은 11월 8일 “미국 행정부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마스와 대화를 해야 하며, 대화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강력하게 대화를 통한 분쟁해결을 제안하였다. 과연 차기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지목한 이들의 관계 개선과 대화 제안을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중동 평화로 가는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85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가끔 서울에 가게 되는데, 늘 서울 거리의 가로수가 인상에 남는다. 특히 정동길이나 세종로 주변 거리의 큰 나무들은 제주에서 볼 수 없는 거리의 여백을 선사한다. 더욱이 가을 길의 그것은 굳이 여느 산의 정취가 아니더라도 서울 도심의 복잡함과 소란스러움을 충분히 걸러낼 만큼의 여유와 고단한 일상의 어떤 전향(轉向) 같은 것을 촉진한다. 그런데 올 가을, 서울 그 거리, 큰 나무들의 정서는 지금까지와 다르다. 어떤 절박함이다. 분명히 절박함의 색은 진홍빛이 아닐까한다. 단풍(丹楓)의 색이 빚어내는 정서는 화려함보다는 내면으로부터 발산된 분노의 축적, 절망, 좌절감을 총합한 절박함의 표상으로 와 닿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국회의사당과 광화문 정부 청사를 오가며 제주 해군기지건설사업이 보여주는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 그들 보좌관들, 정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득하려 무던히도 애 좀 썼다. 벌써 몇 년째, 이즈음에 행하는 연례의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제주 해군기지 논란 과정에서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국책사업은 정당한 주민의 의사 위에 군림해도 되는 걸까? 국가논리가 주민의사와 부딪혔을 때 국가의 태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일까? 비록 그것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업일지라도 주민들은 반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주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국가안보사업이 정말 국가안보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을까? 전가의 보도와 같은 국가안보의 논리는 주민 삶의 논리보다 우선하는 것이 여전한 현실임을 인정하고 말아야 하는가? 국민은 오늘날에도 자발적 개인의 집합체가 아닌 국가체제의 동원대상일 뿐이었나? 국민이 아닌 주민, 혹은 개인은 여전히 존재할 토양조차 없는 것인가? 한 마디로 국가와 국민, 혹은 주민의 관계와 관련한 이런 저런 의문과 생각들이 끝내 올 가을의 절박함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강정마을회, 천주교제주교구평화특위, 군사기지범대위 등 해군기지반대단체들은 4일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법절차를 무시한 정부.해군.제주도정의 해군기지 사업추진 강행을 맹렬히 성토했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정부는 지난 9월 11일 제주 해군기지 사업을 확정 발표하였다. 이후 정부나 군 당국은 물론, 심지어 정치권조차 이제 이 문제는 “끝난 문제”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어느 날 해군기지 후보지가 돼 버린 강정마을 사람들의 끝없는 고통은 찬반 양측의 의사수렴이라는 이른바 균형논리에 의해 깊어지기만 하고 있다. 이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 밑의 연산호군락 등의 문화재에 대한 조사와 평가 문제도 그저 사업추진을 위한 ‘보완’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런데 다 제쳐놓더라도, 이것 하나는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환경부는 이 곳 자연의 중요성을 인정해 정부합동으로, 그것도 객관성을 이유로 민관 공동방식에 의해 4개월의 정밀조사를 요청하였다. 문화재청은 최소 내년 6월까지 조사가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더욱이 문화재청의 조사과정은 이 사업의 허가여부를 판가름할 매우 중요한 법적 절차이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이 조사가 끝나기 전에 해군기지 사업은 일단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미 내년 기지건설 예산도 430여억 원이나 국회에 넘어가 있고, 해군은 벌써부터 부지매입과 어업피해 보상에 착수하려는 움직임이다. 공사시행을 위한 입찰공고까지 해놓은 상태이다. 우리가 찾아간 총리실 관계자도 예정된 문화재, 환경조사등에 대해 “사업을 거스를 사안이 아니다”로 딱 잘라 말했다. 부드럽고 정중하게. 심지어 정치권의 모든 관련자들도 환경문제나 주민갈등 문제는 그저 개선해야 할 일이 되고 말 것임을 명백히도 예견해 주었다. 국가가 하는 사업은 결국 '간다(Go)'는 말이다. 주민들의 요구는 매우 단순하다.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물어보고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 요구를 1년 6개월째 해오고 있다. 심지어는 찬성이 51%만 나와도 그날로 반대 대책위 해산하고 승복하겠다고 까지 여러 번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작년 8월에는 3개월여의 우여곡절 끝에 마을 주민투표를 통해 기지건설 반대 입장을 결정했다. 그러나 국가는 단지 제주도지사를 시켜, 그것도 그저 정책결정 ‘참고용’으로 그 문제점이 결국 확인되고 말았던 여론조사로 강정마을을 불과 며칠 새에 후보지로 결정했을 뿐이다. 국가의 결정과정은 강정이라는 작은 마을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국가가 결정한 사업이니 따르라고 해왔고, 이제 “끝난 문제”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에 갔을 때 강정마을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 곳 까지 찾아오는 동안 연락드리고, 약속시간 잡고, 이 곳 건물에 와서는 신분확인 거치고, 그렇게 절차를 밟아 비로소 여기에 온 겁니다. 하물며, 국가가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들에게 어떤 사전 연락이나 대화를 했습니까? 만일 그렇게 절차상 할 거 다하고 그래도 우리가 반대했다고 우리를 때린다면, 싸대기 한 대 맞아도 덜 기분 나쁠 거 아닙니까?” 눈물겹다. 그리고는, “탱크 다섯 대만 몰고 들어오면 우리를 물리치고 기지건설 할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 이 부드럽고 점잖은 정부 사람들한테. 그런 격한 말이라니! 우리도 저렇게 부드러워야 하는데!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다. 지금 나의 절박함은 이 문제 하나에 대한 천착이 빚어낸 그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권력은 부드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일들을 관장하고 통제하고 조율하는 훨씬 크고 중요한 일을 하니까. “여러분 서 있는 발밑이 다 잠수함 밭이에요” 하는 말처럼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훨씬 깊숙하고도 안보상 말 못할 어떤 사연이 있을 수도 있고, 최근 금융위기 문제니 종부세 문제니, 이재오 의원 입국설 등이니 참 대단한 문제들 앞에서 오로지 이 문제만을 얘기해야 하는 우리가 되려 옹졸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원래 옹졸함 앞에서는 그 옹졸함을 탓하기 보다는 어루만져주고 넘기려 하는 법. 그런데 그것이 부드러운 모습의 권력의 억압방식이다. 부드러움이 그 옹졸함과 앞서 탱크 어쩌고 하는 것처럼 결국 터지고 마는 격함을 불러내고 마니까. 그 부드러움은 어디로부터 나올까? 이제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해법은 그 부드러움의 힘으로 우리의 옹졸함과 과격함을 자꾸 불러들여, 점잖게 해결해주는 방식이다. 그 부드러움의 억압을 받치는 진정한 힘. 바로 물량과 물리적 공권력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국민이 아닌(국민으로 쳐주지 않으니까), 한 개인의, 한 주민의 생각으로는 아무리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저 국가의 논리, 국책사업의 부드럽지 못한 과격한 행보는 또 다른 절박함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부드러운 권력자들이 미리 헤아려 보는 여백도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 그 거리의 단풍에 든 가로수를 마주하고 단 5분만 말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굽은 듯 한 것이 실은 가장 곧은 것이고, 서툴고 모자란 것이 실은 가장 뛰어난 것이다.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가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이 말은 우리의 옹졸함과 격함을 보여주는 옛 성어인데, 분명 부드러운 권력의 모습은 아닐 거라고 본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91 | 추천: 0
이광조/ CBS PD ‘에이,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짓든지 해야지.’ 대도시에 사는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번쯤 중얼거렸을 법한 말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가는 ‘농사는 아무나 짓나’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지만 농사를 깔보는 것 같은 이런 푸념 속에는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농촌이 아닐까’라는 원초적인 귀소본능이 깔려 있는 듯하다. 도시 사람들 중에는 홧김에 한번 내뱉는 정도가 아니라 진지하게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개중에는 농업을 벤처사업으로 생각해 대박의 꿈을 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생명을 좀먹는 우리시대의 천박한 시장주의와 도시문명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소박한 삶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농촌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족들끼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자녀가 있는 경우 마음이 있더라도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포기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럴 때 여윳돈이 있으면 우선 농촌에 땅이라도 사두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 당장 농사를 짓진 못해도 노후에 기댈 곳을 마련하기 위해 농지도 좀 사고 아담한 전원주택을 지을 대지도 좀 사두고, 형편이 된다면 당장 그곳에 별장이라도 짓고 주말마다 내려가고 싶을 것 같다. 혹자는 이런 걸 두고 부자놀음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농촌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공동화되는 현실에서 이렇게라도 도시 사람들이 농촌과 인연을 맺고 수시로 다니게 된다면 그나마 농촌에 활력이 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과적으로 도시를 떠나지 못하더라도 전원생활에 대한 욕구를 갖고 그것을 위해 형편이 될 때 땅을 사두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개발이 진행되어 농지가격이 급등하면 개발이익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면 그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지법은 이런 정신을 정확히 담고 있다. 물론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타인의 명의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 수단을 동원해 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야 염치라고는 모르는 몇몇 투기꾼들일 테고 공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위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자들이라면 법을 어기면서까지 농촌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순진한 아니 한심한 현실인식이었던가.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정을 주고받는 일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농촌의 유기농가와 도시민들이 직거래를 하는 생활협동조합도 있고 요즘 지자체마다 유행이 된 농촌관광, 도시와 농촌 학교 사이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 주말농장 등등. 그 중에서도 도농교류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도시민들이 농촌이 우리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기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바로 우리사회의 이런 공감대가 제도적으로 표현된 것에 다름 아니다. 마음으로만 고맙다고 하기에는 산업과 도시 중심의 무역자유화로 인해 발생하는 농촌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쌀 소득보전 직불제에서 사단이 생겼다. ‘땅을 사랑하고 농촌을 사랑하는’ 고위공직자와 변호사, 교수,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들이 ‘귀농을 위해’, 혹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해’ 농지를 사는데 그치지 않고 땀 흘려 농사짓는 사람들이 받아야할 지원금을 가로챈 것이다. 논에서 피 하나 뽑지 않은 사람이 능청스럽게도 국민들로부터 ‘농사짓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아온 것이다. 그것도 현금과 함께 말이다. 참 염치없는 짓이다. 충남지역 농민과 한-미 에프티에이저지 대전충남 운동본부 등 사회단체 소속 회원 50여명이 지난 28일 오전 대전 중구 충남도청 정문 앞에 벼 500포대를 실은 7대의 트럭을 몰고와 쌀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공무원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사건이 터지자마자 언론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주범이라는 분석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일정 기간 직불금을 받으면 실경작자로 인정되어 양도세를 면제받기 때문에 그까짓 몇 십만 원쯤은 아무것도 아닌 높으신 양반들이 악착같이 직불금을 받아왔다는 얘기다. 당연히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제도의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성도 나왔고 여야가 사이좋게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 시켰을 만큼 의도는 좋았는데 예기치 못했던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뒤따랐다. 진상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도 하기로 했고 불법이 발견될 경우 엄정히 처리하겠다는 다짐도 들린다. 그런데 말이다. 취지는 좋았는데 미처 제도 운영상의 허점을 예견하지 못해 이런 부작용이 생긴 걸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관련자들을 엄하게 꾸짖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글쎄, 나는 우선 법안을 만든 정치인들의 그 선의부터가 미덥지가 않다. 왜냐고? 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방안은 제쳐두고 도시민의 농지 구입을 광범위하게 허용한 채 거기에다 그들이 손쉽게 직불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시 당초 도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농촌에 땅을 살만한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다. ‘돈 있는 사람들이 농지를 많이 사서 좋은 조건에 소작을 주면 그게 농촌을 위하는 것 아닌가.’ 그 분들 머릿속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제도를 만든 사람들이나 농지를 산 사람들이나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제도를 만들고 농지를 산 사람들이 개발계획을 만들 수도 있고 그 정보를 먼저 알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도 이 분들에게는 별다른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들에게 농촌은 어쩌면 뜨거운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어르고 달래야 하는 골치 아픈 시혜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임자 없는 돈 퍼주는데 나도 주머니 하나 꽤 차는 게 뭐 그리 나쁜 일이라고...’ 농촌과 농업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땅을 사랑하고 농촌을 사랑하는’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동평리에서 ‘골프장’이라는 공익시설을 만들기 위해 대대로 그곳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른바 토지 강제수용제도다. 민주당이건 한나라당이건 참여정부건 실용정부건 이 어이없는 토지 강제수용 제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대한민국의 엘리트로 대접받는 그들에게 농지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사서 농민들에게 싸게 소작을 주거나 필요에 따라 빼앗아도 무방한 그런 대상인가? 여기서 농촌에 대한 고마움이나 존중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가시기만한 농촌, 세금만 축내는 농촌, 이참에 아예 확 없애버리면 어떨까. 농지 사고파는데 괜한 규제 받지 않게 절대농지니 뭐니 하는 규제 다 풀어버리고 농민들도 땅 장사 좀 하게 말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03 | 추천: 0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현직에 있는 레이건 대통령을 후보로 재지명하기 위해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댈러스 시에서,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국제청년당’이라는 좌익집단의 청년들이 국기게양대에 걸린 성조기를 끌어내려 석유를 뿌리고 불태우며 ‘우리는 미국에게 침을 뱉는다’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성조기를 불태운 혐의로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청년을 체포하고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일반인들이 표현이나 표현성 행위에 동의하지 않는다거나 모욕감을 느낀다고 해서 정부가 표현행위를 제약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의 제시를 통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어야 하며, 이는 미국인들이 성스럽게 느끼는 성조기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조차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브레넌 대법관은 성조기가 상징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유연성이지 경직성이 아니고, 성조기의 신성함을 지키는 방법은 성조기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평화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며, ‘토론을 통해 오류와 거짓을 밝혀낼 시간이 있다면 이에 대한 대응방법은 강요된 침묵이 아니라 더 많은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 판결은 성조기에 대한 모욕적인 훼손마저 표현의 자유로 인정함으로써 성조기가 미국인들에게 상징하는 의미를 더욱 확고히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래 표현의 자유란 지배하는 다수가 아니라 반대하는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지배하는 다수는 정책과 법률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고, 다수의 목소리는 법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법을 위반하고 법의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는지 여부는 민주주의의 척도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중대한 제한을 가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배우 최진실씨 자살 사건 이후에 추진되고 있는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들과 관련된 기사에 무수하게 달려있는 악성 댓글의 내용은 심각할 정도로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국가권력이 인터넷상의 모든 표현을 수사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행위와도 같다. 사이버공간의 특성상 글을 쓴 사람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수사대상은 특정 정치인이나 지배세력을 비난하는 사이트나 블로그에 집중될 것이고, 이는 결국 인터넷상의 여론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 분명하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그 뿐만이 아니다. 집회 참가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집회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행위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도 추진되고 있다. 도대체 집회 참가자들이 국가기관에게 얼굴을 반드시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내 기억으로는 삼엄하던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이런 방식으로 무식하게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은 없었다. 토론과 설득이 아니라 무조건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방어하려는 정부와 집권여당의 발상이 한심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고, 한편은 섬뜩하다. 하기야 아이들의 먹거리를 걱정해서 유모차를 끌고 촛불시위에 참가한 젊은 엄마들에게 아동학대죄라고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에게는 토론과 설득, 민주주의의 가치와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자체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0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얼룩진 들판과 푸른빛 그 안에 색색의 옷으로 단장할 준비를 마친 나무들이며, 강렬히 내리쬐고는 있으나 나른한 햇살은 푸짐한 가을을 느끼게 했다. ‘오늘 하루, 아니 이틀간은 모든 시름과 상실감과 허망함을 내려놓고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어 오리라...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고민들을 조금은 해결할 실마리를 얻어 오리라...’ 풀뿌리여성조직가 대회를 가면서 든 기대감이다. 한 곳, 한 가지 일에 오래 천착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다행이게도 내가 일하는 단체는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단 며칠이건만 사무실로만 출퇴근할 때 오는 그 권태와 관념을 나는 지부를 돌아다니면서, 지부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활기와 현장으로 대체할 기회를 갖는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울컥 눈물이 날 만큼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활동가들은 연합조직에서 활동하는 내게는 현장이고 풀뿌리이다. 지역여성운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나의 과제에서 때로는 지부활동가들에게 조언도 하고, 지원도 하지만, 실은 힘을 얻고 배우는 것은 정작 나 자신이다. 지역의 여성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지역의 문제해결을 위한 여성들의 힘을 모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보면서, 운동이 관념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체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가끔은 사람에 대한 실망도 하지만- 사람의 선함과 선함을 위해 자신을 성찰하고 채찍질하는 모습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곤 한다. 결국 그 안에서 운동의 미래와 대안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정신없이 보수회귀를 위해 휘돌아 치고 있다. 촛불시민들에 대한 표적수사와 구속,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먼지 털기 식 수사와 활동가들의 구속, 심지어는 유모차부대에 대한 협박과 수사까지... 가히 경찰국가라 칭할 만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로 물 만난 고기다. 논리 또한 기가 막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와 물대포 앞에 분연히 저항했던 여성들에게 ‘아이를 시위의 도구로, 물대포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아동학대’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로 불법행위를 했다고 사전 통보나 영장도 없이 집 앞에 찾아와 협박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서 길러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 둘째 누구도 자신의 아이를 위험 속으로 던져 넣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고 물대포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한 치라도 헤아려 봤다면 그런 얼토당토않은 ‘아동학대’운운은 가당치도 않은 논리다. 당장의 물대포와 소화기보다도 더 두렵고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전하지 않은 먹거리를 먹여야 한다는 불안이고,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등급이 나눠질 수밖에 없는 교육제도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아이의 생물학적, 사회적 생명권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국가가 기본적인 생명권 보장이라는 국가책임을 지지 못하면서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만 있다.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논리를 당당히 펴던 시민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암담했다. 그리고 죄송했다.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표적수사 소식을 들었을 때, 올 것이 왔구나! 했다. 그리고 유모차 부대에 대한 탄압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전쟁이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뭐가 그리 무서워서 젖먹이 애 엄마들까지 ‘적’으로 만들고 위협하는 건지, 경찰이 그리도 한가했던가 하는 생각. 여성폭력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찰은 사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들먹이며 수사를 질질 끌고 가해자 수사나 처벌을 미루곤 했었다. 그러데 왜 이리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가? 민생이나 치안관련해서는 한계를 들먹이더니 공안관련해서는 참 빨라도 너무 빠르고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유치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도 잘 알아서 기고’있다. 누구의 경찰인가? 여성단체들은 지난 24일 촛불시민 및 유모차 부대 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제 제발 그만 떠나시라!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은 단체탄압에 맞서기 위한 기구를 구성할 것과 지속적으로 ‘강부자’편향의 정책에 반대하고 내부적으로는 자정활동을 강화하고, 성찰을 통한 운동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을 결정하였다. 그동안 촛불을 통해 시민들의 활동과 관련한 평가와 분석은 많이 토의되었다. 그리고 한편 시민운동단체들의 향방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들, 진보세력들이 구축해 놓은 제도나 정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거나 될 위기에 처해있고, 그 당사자인 단체와 활동가에 대한, 촛불시민에 대한 탄압에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질문을 하여야 한다. 시민을 보호할 수 없는 시민단체, 시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민단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개최된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는 의미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국 각지에서 지역의 여성들, 주민들과 가장 밀착되어 활동하는 여성조직가들과 그 아이들까지 200여명이 모인 대회는 처음부터 활기와 기대로 넘쳐났다. 어떻게 하면 지역의 여성들, 주민들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지? 마음을 모아내고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할지? 어떤 과제와 내용으로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 과정에 지역민들이 주인으로 참여하게 할 방법은 무엇인지?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성장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1박 2일의 빼곡한 일정 속에서 열띠게 논의하고, 또 노고를 서로 위로하고 연대감을 나누었다. 그야말로 싱싱함!’, ‘살아 펄떡거림!’의 현장이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탄식하고 절망하고 답답해하는 서울, 중앙의 운동판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도 정권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고, 문제를 느끼고 있음에도 희망과 에너지가 넘치는 이유가... 그것은 아마도 최 일선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의 ‘선(善)’에 대한 지향과 실현을 위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 사람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거대한 흐름으로 거꾸로 된 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운동의 새 프레임은 결국 ‘시민 속’으로가 아닐까? 그것도 구체적인 개인들 속으로. 풀뿌리여성조직가대회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그래서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서로 보호해주고 위로받으며 그렇게 이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캄캄한 밤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자동차들의 불빛뿐이었다. 낮에 보았던 그 아름답던 들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낮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치에 감탄하고 이런저런 상념도 하던 여유가 페달만 죽도록 밟아대는 초조함으로 변해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 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 하는 내 마음, 나의 관습과 태도일 뿐. 그저 거기엔 그것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어둠이 걷히면 선명히 드러나는 것들... 어쩌면 지금은 존재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놓치지 않고 믿음을 나누며 어둠이 걷히길 기다리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지각변동은 표면에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그 밑에서 조금씩 느리게 변동이 진행되다가 표면으로 터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으나 풀뿌리운동은 주민들 속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밤이 되니 후각과 청각, 촉각이 예민해졌다. 시각에만 의존하던 인지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어둠에 둘러싸인 대지와 공간이 다른 각도에서 다가왔다. 시민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 보여줌으로서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닌, 성장을 통한 각성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풀뿌리의 방식과 관점이 아닐까? 시민단체는 리더가 아닌 조직가의 자세와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대중/시민/주민 속에서 치열하게 실천하는 여성 활동가들을 보면서, 이 어둠이 너무 길지는 않을 거라는 느낌을 갖는다. 유모차부대는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그래서 이런 유치한 탄압에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거라는 걸, 앞으로도 계속 제2, 제3의 유모차부대는 변태를 할망정 지속되리라는 것을... 선선한 가을 밤, 허한 가슴을 코끝 찡함으로 채우면서 분발해본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78 | 추천: 0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기독교 믿어야 잘 산다? 어렸을 때, 기독교를 믿는 나라는 다 잘사니 우리나라에도 기독교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원로목사님의 설교를 종종 들었었다. 이것은 백여 년 전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에 회자되던 논리였고, 교회 나가야 미국처럼 잘 살것 같은 민중적 욕망과 어울리면서 한국 기독교가 양적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해방 후 월남했던 노목사님으로부터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는 기독교인도 별로 없는 일본은 왜 잘 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몇 차례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아무에게서도 제대로 된 답을 들은 기억은 없다. 물론 일본이 잘 사는 것과 기독교는 별 상관이 없다. 일본의 경제적 발전은 일본 특유의 집단적 세속주의가 자신의 정신적 전통은 지키면서도 서구의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소화해낸 결과이다. 그 정신은 기독교가 아니고, 도리어 신도(神道)나 불교 등 전통 종교에 가깝다. 오늘날의 일본문명이라는 거대 공장을 굴리는 무수한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 신도 내지 불교와 같은 것들인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서구화와 동일시되지 않은 근대화를 이룬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다. 한국에서 전근대는 타파되고 근대는 추구되어야 할 것이었다면, 일본에서 전근대는 지켜야 할 질서적인 것이고 근대는 낯설고 무질서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신도나 불교와 같은 ‘전근대적’ 정신을 유지하는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근대화에 성공한 것이다. 여전히 통하는 물량적 논리 현 정부 관료들의 친기독교적, 불교소외적 발언과 행보로 불교계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장경동이라는 유명세 있는 목사가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 ‘석가모니 선생은 불교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석가의 나라 인도가 지독하게 가난하니) 소들을 확 잡아 고아먹으면 영양실조도 안걸릴텐데...’ 등등의 기독교 우월적, 불교 폄하적 설교를 했다 한다. 개신교 목사들의 그러한 설교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무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인 것은 분명하다. 사회적 문제가 되자 ‘교회 내부적 발언인데 그 정도는 가능한 것 아니냐’는 식의 해명을 했다 하니, 발언만 무지한 것이 아니라 발상도 무지하다. 전 인구 1억2천8백만 명 중에 가톨릭 개신교 합쳐 기독교인은 100만 명 남짓하고,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전히 신도와 불교가 습합된 문화를 소중히 여기며 사는 일본은 어찌해서 잘 산단 말인가. 물론 일본을 설명하려는 것이 이 글의 의도는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이른바 종교 지도자들이 인간의 내적이고 초월적인 신앙을 외적이고 물량적으로 재단하고 정당화시키는 행위의 유치함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따라야 할 신앙의 속뜻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물량적 희망과 달콤함만을 신의 이름으로 누리려는 현실이다. 종교의 근본 의미 내지 내면적 가치를 볼 줄 아는 안목은 거의 없이, 권력이나 재물을 신앙의 결과 내지 신의 축복과 동일시하는 유아적 종교관이 근본 문제인 것이다. 시민보다 시장이 더 큰 축복이고, 국민보다 대통령이 더 큰 축복이라는 식의, 과거 수직적 사회를 반영한 물량주의적 논리는, 인간의 권력욕과 소유욕을 신앙의 이름으로 부추기고 투사시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가 권력을 쟁취해 왕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 길을 따른다는 말인가.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못산다는 식의 말을 듣노라면, 돈을 소유하려는 인간적 욕망을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해온 지난 역사를 살펴보노라면, 지구상에 유일한 기독교인은 예수뿐이 없다는 말이 다소 과장되었기는 하지만 이해는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조계사 앞마당에 장경동 목사의 불교 폄하 발언과 국회의원들의 종교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 걸려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GNP가 하느님인가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못산다거나 기독교를 믿어야 잘 산다는 식의 논리가 유력한 목사들에 의해 여전히 유통되고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대중에 의해 소비되면서 확대되는 현실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내면적 신앙을 외형적 물질로 환원시키는 이런 류의 사고방식은 그저 과자 하나 내밀면 유괴범도 좋아라 따라가는 어린아이 수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누구든지 어린 아이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좀 더 크면 그 과자 한 봉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않는가. 신앙도 그래야 한다. 달콤한 과자 한 봉지의 미래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종교성 내지 신앙의 본질을 물질적 욕망 안에 가둘 수 있는가. 기독교 문화권 국가가 불교 문화권 국가보다 GNP가 높은 경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GNP를 기독교적 진리로 도치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그 온 세상, 그러니까 우주의 눈으로 바라보면 한 점 먼지만도 못한 지구에서, 결국 먼지처럼 사라질 재물을 움켜쥐는 행위를 우주적 신이 자신의 현존의 증거로 삼는다는 말인가.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욕망을 합리화시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우주적인 시각에서 보는 훈련을 좀 했으면 좋겠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누가 죽이고 누가 살리는가. 신의 축복이라는 그 소유와 재물이 도리어 지구를 죽이고 있지 않은가. 누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높여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고 지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 많이 소유한 자 아니던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가 지구를 살리는가, 가진 것이 적어서 쓸 것도 없는 이들이 지구를 살리는가.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려 조심해서 걷는 자이나교 수행자들이 지구를 살리는가, 벤츠를 타고 매연을 내뿜으며 호텔 조찬기도회에 참여하는 이들이 지구를 살리는가. 누군가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다른 누군가의 소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많이 가지는 자가 있으면 그만큼 적게 가지는 자도 있을 수밖에 없다. 잘 살려면 기독교 믿으라는 식의 말은 소유 쟁탈전을 벌여 더 많이 갖도록 하는 투쟁이 예수의 진리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꼴이다. 다른 이로 하여금 적게 가지도록 하는 것이 신의 뜻이란 말인가. 티벳 산골의 수행자가 미국의 대통령보다 소유의 욕망을 제어하고 비움의 실천을 통해 이웃을 살리던 이가 붓다이고 예수 아니었던가. 과자 한 봉지 들고 좋아하는 어린 아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목사든 신자든 나이가 들어도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비움이라는 부담스러운 요청에는 슬쩍 눈감고, 소유라는 욕망과 희망을 슬슬 자극해주기를 바란다.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것이 신의 뜻으로 포장되는 현실이 문제이다. 거기에 종교가 어디 있는가, 그저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붓다나 예수처럼 ‘집도 절도 없이도’ 행복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종교라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애당초 돈을 목표로 하는 기업가임을 자처했다면 모를까, 재물욕이나 권력욕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사라졌으면 좋겠다. 예수 믿기보다는 예수 따르기라는 어려운 요구를 그대로 실천하기는 힘들어도, 제발 기독교 믿으면 잘 산다거나, 불교 들어간 나라는 못산다는 식의 저급한 발상이나 발언은 이제 좀 보지도 듣지도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엔 불교가 들어간 나라 티벳 산골의 불교 수행자가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 미국의 현 대통령보다 더 예수적이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63 | 추천: 0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이번주 수요산책은 Mahdi Abdul Hadi (PSSIA 소장,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이 보내온 기고문을 홍미정 교수가 전해왔습니다. 이 기고문의 번역을 위해 홍미정 교수와 자원활동가이신 손영조씨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예루살렘 문제를 이해하며 표현하는 관점은 관련당사자들마다 제각각 다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에 관한 협상은 수많은 위기에 봉착해왔다. 첫 번째 위기는 예루살렘 분쟁에 대하여 무엇을 근거로 협상할 것이냐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문제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이성적인 협상안은 1947년 유엔 총회 결의 181호의 분할 계획안을 토대로 하는 것이다. 유엔총회결의 181호는 예루살렘을 유엔 신탁 통치하의 독립적인 실체이며, 유대국가와 아랍 국가의 중심지이고, 개방된 도시라고 규정한다. 즉 예루살렘은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 양국의 공동 수도로서 국제화되어야하며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인들과 시민권자들을 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오슬로(Oslo) 협정이 1967년의 유엔안보리결의 242호를 토대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을 의미하는 ‘두 국가 해결안’을 제시하면서 예루살렘 분할안이 등장하였다. 즉 팔레스타인 통치하의 동예루살렘과 이스라엘 통치하의 서예루살렘이 그것이다. 오슬로협상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의 주요한 협상가로 활약하는 아흐마드 쿠레이(Ahmed Qurei)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오슬로 협상에서 서예루살렘을 포기하는데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위기는 예루살렘 미래의 지위에 대하여 화합할 수 없는 열망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양 측 협상가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유엔 결의문 등을 비롯한 합의된 방식이 아닌 각 개인의 역사, 신앙, 신화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논의를 진행해 왔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팔레스타인 수반은, 동예루살렘이 1967년 이전처럼 아랍국가의 주권아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국가 해결안(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 요구)’의 시대가 거의 지나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아흐마드 쿠레이를 비롯한 다수는 ‘양 민족 한 국가 해결안’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 안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양 민족들이 통합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하나의 국가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상 당사자는 아니지만, 영향력 있는 하마스(Hamas) 지도자 칼리드 마샬(Khaled Meshaal)은 예루살렘이란 영토적,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종교적인 유산을 의미하는 것이지, 한갓 서안(West Bank)의 땅 덩어리 이름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샬은, 예루살렘을 결코 이스라엘과 공유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Mahdi Abdul Hadi (PSSIA 소장,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http://www.passia.org/) 이스라엘 측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는 성지들과 관련된 사소한 합의들은 존재할 수 있지만, 예루살렘은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강조한다. 카디마(Kadima)의 샤울 모파즈(Shaul Mofaz)와 샤스(Shas)당은 총리인 에후드 올메르트(Ehud Olmert)와 외무장관인 리브니(Livni)가 일부 팔레스타인 지구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예루살렘을 분할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리쿠드(Likud)당의 비냐민 네타냐후(Binyamin Netanyahu)가,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조금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여러 차례 표명하였으며, 최근에 이스라엘 국회는 이러한 취지로 두 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 번째 위기는 실행 가능한 협상을 위한 공정한 중재자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결코 믿을만한 중재자가 되지 못했었다. 가장 명백한 예로는 2003년 워싱턴 로드맵이다. 로드맵은 3단계 수행 계획으로 나뉘어 있으며 세부일정, 목표 날짜, 기준 등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 전임 총리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이 제시한 로드맵과 관련된 14개 항의 유보 조건을 전면적으로 수용한 이후 샤론의 일방적 제안을 따라갔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미국 파트너에게 기댈 수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완전히 소외되었다. 아랍 국가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국가의 노력들조차도, 특히 2002년의 아랍 평화 발의(Arab peace initiative)는 간단히 묵살되었다. 사실, 이 아랍 평화 발의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한다면, 그 보답으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전체가 포괄적인 평화 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계속 이스라엘에게 편향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특별히 예루살렘 문제에 대하여서는 공정한 해결 방식으로 약속을 하지 않는다. 네 번째 위기는 신뢰할만한 협상 지도부가 없다는 것이다. 올메르트가 부정부패와 관련하여 카디마의 수장으로서 은퇴를 직면하면서 얼마나 더 이스라엘의 협상을 이끌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동시에, 마흐무드 압바스는 분열된 팔레스타인 사회뿐만 아니라 파타(Fateh)가 분열된 가운데 협상해 왔고, 2009년 1월 "수반 임기 만료"로 불안해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위기들을 해결하거나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면, 장래의 협상은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요르단 [1994년의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에 의해서 그리고 팔레스타인 측의 소망에 반하여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의 보호자가 됨]을 비롯한 아랍 국가를 끌어들이려는 제안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고, 단지 시간-소모적인 책략으로 간주될 수 있다. 게다가, 인정하고 타협하려는 문화가 여전히 결여되어 있다. 양측의 말은 화해하려는 메시지가 없고,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희망도 유발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관계자가 만족할만한 실행 가능한 합의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깊이와 진정성을 가지고 앞날의 대화를 이룰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251 | 추천: 0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1.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서귀포 강정마을에 내 친구 훈철이가 있다. 그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교 같은과 동기이다. 물론 나와 나이도 같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녔지만 대학졸업 이후 단 한 번도 만나보질 못했다. 그런 그가, 강정마을에 가면 “어이~ 친구!”하고는 이내 “밥은 먹었나?”하면서 반긴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한편에서는 의례나 배려이거니 했다. 안 그러겠는가. 해군기지 문제로 마을 전체가 깨지고 날마다 힘든 일들로 아파하는데, 그래도 어떤 이해관계 없이 찾아와서 함께해주니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을 거다. 서로 별로 진득한 우정을 나눠본 기억이 내겐 별로 없었던 것도 그렇게 생각했던 연유다. 그런데 이 친구, 내가 강정마을에 갔다가 돌아올 때 마다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언제부터인가는 제주시로 돌아가는 나에게 “다음엔 꼭 술 한잔하자. 꼭 자고 가야돼?”하면서 차까지 따라와 배웅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지난여름 몇 차례 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도보순례, 무슨 무슨 문화제 행사나 술자리 등을 통해 서로를 공감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해군기지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마을을 살리겠다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도청 앞 1인 시위에도 나서고, 5박 6일 동안의 강행군으로 이뤄진 제주도 전역 200km 도보순례에도 앞장섰다. 나 같은 시민활동가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마을에 찾아오면, 앞서서 반기고, 마을의 궂은일들에도 늘 빠지지 않는다. 마을 평화축제 준비가 한창이던 8월 어느 날에 그는 주민들과 어우러지던 한밤의 취흥을 뒤로 하고 몰래 둘이 빠져나올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소주잔 하나 씩 만을 앞에 놓고 질퍼덕 주저앉은 마을회관 마당에서 난 그의 ‘개인’을 접할 수 있었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아파하고 있다. 동시에 지금 자신이 처한 고통을 감내하며, 또한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 했다. 그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부터 난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마을회관 바로 옆이 자기 집인데도, 집에도 가지 않고 회관에서 먹고 자질 않나, 예전에 알던 것 보다 부쩍 말이 없어진 모습 등에서 뭔가 사연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그에게서 직접 듣고, 나는 그가 그나마의 직장도 때려치우고 해군기지 막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어쩌면 그 고통과 방황을 의탁하기 위한 자구책이거나 혹은 치유하는 그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정마을의 평화박물관 사진 출처 - 필자 2. 얼마 전, 경희대에서 열리는 사회포럼에 갔었다. 지난 몇 달을 들뜨게 했던 ‘촛불’이 어떻게 평가되고, 어떤 의미로 얘기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촛불’과 관련한 이런 저런 글들을 살펴봤지만, 대체로 정치 민주주의 맥락 차원에서 얘기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촛불을 조명하는 첫 날의 대토론회에서 ‘아고라 논객’이라고 소개된 어느 토론자의 말이 쏙 들어왔다. 그는 지난 5월 시작된 촛불을 사실상 처음부터 주도한 ‘개인’으로 보였는데, 확산을 거듭하며 수십, 수백만의 촛불을 일으킨 그 힘은 바로 ‘개인’들의 의사가 결집되었기 때문임을 알렸다. 그런데 그 개인들의 의사란 매우 다양하고 다른 차원의 것들도 많았을 텐데, 이를 의사의 결집, 이른바 ‘의사결정’으로 이끈 것은 바로 토론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그 토론과정을 소화한 사람만을 일컬어 ‘네티즌’이라고 한다고 뼈있는 정의를 내리기도 했는데, 더 의미 있게 다가 온 것은 과연 그것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가능했겠나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여러 인간적 관계로 얽혀 있는 오프라인에서는 이런 개인으로서의 생각 드러내기와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임을 말하였다. 나는 한국사회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의 길을 걸어 왔다고 하지만, 적어도 사회문화적으로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즉, 정치경제적으로는 근대화와 탈근대를 경험해 오면서도, 사회적으로는 1차원적 연고주의와 온갖 집단논리가 주도하는 전근대의 작동논리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 즉 자신의 의사를 어떤 집단의 존재로서의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합리적 개인’이란 근대화의 당연한 결과여야 함에도 우리사회에 여전히 ‘개인’이란 없다. 누구나 국민 아니면, 도민으로서, 어느 회사에 소속된 과장이나 대리로서, 또는 동창이나 동문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문화영역의 담론이나 행위에서 탈근대의 현상과 양상을 소리 높여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이를 생산하는 담지자들의 영향력은 기본적으로 그들 세계의 전근대적 사회적 관계에 의해 창출되고 유지되는 것을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우리사회에 ‘합리적 개인’들이 출연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신념의 경계를 넘었고, 학교의 강요된 종교를 당당히 거부하는 어느 고교생의 이야기나 성소수자들의 이른바 ‘커밍아웃’과 같은 현상들에서 나는 줄곧 우리사회의 희망을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 없다거나,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도를 넘었다거나, 시장경쟁논리의 지배하에 양산되는 비정규직의 피곤한 삶 등 어디를 둘러봐도 암울하기만 한 우리사회의 자화상 면면의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합리적 개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번 촛불을 암울한 시대 뒤편에서 소수자로서의 삶, 경쟁으로 내몰려 깨어진 일상의 상처, 따뜻한 쉼과 나눔의 표상으로서 가족과 가정의 해체 혹은 유지의 고통, 집단과 ‘틀’이 강요한 억압 따위를 박차고 하나씩 터져 나오던 개인들이 마침내 거대한 집단(권력)에 대항해 일어선 ‘집단에 대한 개인의 저항’으로 보고 싶다. 사실, 이번 촛불의 기나긴 행진은 비단 광우병 쇠고기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강부자’, ‘고소영’, ‘S라인’ 같은 이 정권의 극에 달한 학벌, 종교, 계급의 집단이기주의가 우리사회의 개인(주체)이고자 하는 국민 혹은 민중들을 자극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끈 것은 탈근대의 시대에 전근대적인 방식의 지배구조에 숨 막혀 하며 하나씩 등장하곤 했던 합리적 개인들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한 교수는 어느 잡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1968년 5월, 프랑스 전역에서 풀뿌리 민중으로부터 이중 권력 기관들이 등장하면서 프랑스는 예상치 못하게 유사 혁명 상황 속으로 요동쳤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70년 5월 미국에서, 사백만 명의 학생과 오십만 명의 교수들이 전쟁과 경찰 폭력에 저항하며 전국적인 파업을 선언했다. 비록 이러한 운동 세력들이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발생한 문화적 전환은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조지 카치아피카스, 미국 웬트워스대 교수, 「5.18 기념재단」 발행 ‘주먹밥’21호 촛불의 와중에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의 투표율과 패배에 나는 매우 실망했었다. 수십, 수백만이 연일 촛불을 들고 모였지만, 그들의 권력은 유지되었고 결과적으로 촛불은 어떤 제도적 힘이나 교체권력에 대한 기약과 상관없는 문화현상일 뿐인가 하는 생각에 무기력해 했었다. 그런데, 이 분명한 ‘문화적 전환’은 적어도 전체주의와 같은 우리사회의 서열과 집단의 작동논리에 큰 균열을 내는 사건일 것이고, 이는 권력유지수단으로서의 집단주의에 대한 획기적인 경종이 될 거라는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중심에 국민이 아닌 ‘개인’이 서 있게 되고, 이 개인들과 소통하지 않는 권력은 힘을 잃고 말 것이라는 훨씬 큰 기대도 얻게 되었다. 3.난 훈철이와 또래이자 교우였지만, 서로 기억조차 없이 살다가 10여년 만에 만나 비로소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동창으로서, 혹은 동문회를 통해 만나지 않았다. 이 시대를 사는 한 개인으로서 어떤 사건에 대한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만나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아무런 이해나 연고관계에 의하지 않는 만남이란 얼마나 될까. ‘보편적 합리주의’ 로 위장된 자본의 논리, ‘글로벌 스탠더드’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논거로 작동되는 시대에 ‘합리적 개인’이란 그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행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진 경제주체를 일컫는 경제학의 용어가 될 수 없다. 욕망의 정치, 파괴적 성장, 급속한 소용돌이의 비합리적 사회에서 진짜 합리적 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난 가끔 동창회나 동문 모임, 친족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 게 걱정될 때가 있다. 이런 모임들에서 제몫 다하지 못하는 게 이른바 공동체의 미덕에 역행하는 건 아닌가, 좋은 일 한다고들 하지만 나 좋자고 나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혼란도 겪는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친족이나 동문 같은 관계는 아니지만, 나와 함께하는 또 다른 많은 관계들이 나를 지탱한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후보지. 요즘 훈철이의 얼굴 같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리고 이내, 혼자 둘러댄다. “인생, 뭐 있어? 한 번 사는 거, 생각한대로 마음 가는대로 열심히 살자!” 내 친구 훈철이도 있잖아?
2017-07-20 | hrights | 조회: 238 | 추천: 0
이광조/ CBS PD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고 있던 탈레반이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해 세계 최대의 바미얀 석불을 파괴했다. 15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인류의 문화유산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이런 야만적 행동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그 복잡한 심사를 속속들이 알 길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추론해 보건데 파괴를 불러온 원동력은 그들의 신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면을 향한 신념이 아니라 권력과 결합돼 외부를 향한 독단적인 신념 말이다. 하지만 어디 탈레반뿐이랴.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에 가장 끔찍한 장면들은 이런 독단적인 신념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중세의 마녀사냥, 십자군전쟁이 그랬고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파시즘과 제국주의, 공산주의가 그랬다. 그리고 잠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유행처럼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세계는 독단적인 신념들의 각축장이 돼 버린 것 같다. 그 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종교적 근본주의다. 근본주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슬람 근본주의’를 떠올릴 것이다. 탈레반은 말할 것도 없고 여객기를 이용해 세계무역센터를 파괴한 알카에다의 초현실적인 테러를 목격한 마당에 ‘근본주의=이슬람근본주의’라는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세는 차치하고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개명된’ 기독교에도 이런 어두운 역사가 있다. 실은 우리가 ‘근본주의’라고 옮기는 ‘펀더멘털리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19세기 미국 개신교에서 발생한 보수주의 운동, 곧 천년왕국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서를 자구 그대로 해석하고 그 교리의 실천을 주창한 천년왕국 운동은 오늘날까지 미국사회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을 십자군 전쟁에 비유하는 일부 미국 개신교계의 모습이 그 단적인 사례다. 종교 전문가도 아니고 미국 전문가도 아닌 내가 빤 한 밑천을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보이는 세 가지 근본주의 흐름 가운데 두 가지가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사회에도 불행을 몰고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두 가지 흐름이란 다름 아닌 기독교 근본주의와 시장주의다(나머지 하나는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다). 근본주의는 자신의 신념체계 외에 다른 것, 즉 타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신념만이 절대적인 진리이자 선이며 다른 것들은 존재할 가치가 없는 미신이거나 악마, 무지 또는 탐욕으로 치부된다. 이런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신념과 권력이 결합된다고 생각해 보라. 권력은 타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러므로 근본주의와 결합된 권력은 타인의 육체와 노동뿐만이 아니라 신념체계까지도 조종하고 자신과 일체화시키려고 한다. 타자가 그것을 거부할 땐 응징과 폭력 또는 조롱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유럽을 피로 물들였던 종교 전쟁의 역사를 보라. 하지만 권력이 인간으로부터 목숨을 빼앗거나 노예로 부릴 수는 있어도 인간의 내면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하나의 신념체계로 통일된 세계 같은 건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공상에 불과하다. 뿐이랴. 근본주의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현실,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삶과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완벽하게 동질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근본주의는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분열을 가져오고 폭력을 확대시킨다. 종교 얘기는 접어두고 요즘 유행하는, 아니 권력이 강제하려고 하는 민영화(사유화) 문제를 보자. 민영화(사유화) 문제를 얘기하면서 장황하게 근본주의를 얘기한 것은 요즘 우리사회의 권력층이 민영화(사유화)의 근거로 내세우는 시장주의가 근본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긴 말 할 것 없이 요즘 우리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민영화(사유화) 대상들을 보자. 정부의 말이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상수도, 전기, 병원, 공항, 국책은행, 방송사 등등이 민영화(사유화) 대상에 포함된다. 공기업 또는 공공기관의 형태로 운영해왔던 이들 서비스를 선진화하기 위해 민영화(사유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선진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핵심은 결국 주인 없는 회사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주장에 뒤따르는 의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주인을 찾아주다니? 애초에 주인이 존재했다는 말인가. 물론 몇몇 방송사를 포함해 한 때 주인이 있었던 기관들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얘기하는 민영화(사유화) 대상의 대부분은 사회 전체의 필요 때문에 국민 대다수가 조금씩 주머니를 털어 만들고 정부가 국민의 위임을 받아 운영해 온 기관들이다(비록 내기 싫은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오만한 권력이 국민의 의사는 무시한 채 제멋대로 운영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기관에 주인을 찾아주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식민지 지배라는 아픈 역사 때문에 근대적인 제도와 기관들의 뿌리가 일본이고 보면 주인을 찾아주자면 일본인들에게 그 권리를 줘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는 선진화를 말하고 해당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말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에 필수적인 공적 서비스의 일차적인 목표는 국민의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가격에 말이다. 백보 양보해서 인류 역사에서 공기업의 민영화(사유화)라는 것이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길이라면, 그래서 민영화(사유화)와 경쟁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까짓것 한번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안이한 계산과는 달리 우리보다 훨씬 앞선 선진국에서도 민영화(사유화)가 실패한 사례는 너무 많다. 의식주와 교육, 보건 등 국민의 기본적인 욕구가 공공성에 입각해 제대로 제공되지 않을 때 사회 양극화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니 상상도 하기 싫지만 시장주의 개혁의 첨단을 달린 중남미 국가들의 사례를 보라. 납치와 범죄가 산업이 되고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사설경비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성장하는 것이 선진화는 아닐 것이다. 이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시장주의는 박제화 된 근본주의와 얼마나 다른가. 방만한 공기업들을 통폐합하고 필요하고 가능한 기관들을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민영화(사유화)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공적 영역=비능률, 그리고 민영화(사유화)의 대상이라는 단순 논리 앞에는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얘기가 길어졌다. 근본주의, 죽음을 불사하는 숭고한 신념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개인의 신념을 뛰어넘어 집단화되고 권력화하면 그 속에는 끝을 알 수 없는 탐욕과 폭력이 자라나기 십상이다. 미국의 역대 정부 가운데 시장주의의 기치를 가장 선명하게 내세운 부시 행정부에서 전쟁과 정경유착이 많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뿐인가. 시장주의의 전도사로 정부개입을 악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던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파산 위기에 직면해서는 경제위기 운운하며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는 이중적인 태도는 시장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독단적인 잣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사회는 미국과 얼마나 다른가. 탈레반은 멀리 있지 않다.
2017-07-20 | hrights | 조회: 17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