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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YTN 일개 기자만도 못한 한동훈 장관의 윤리의식(박록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1-03 09:03
조회
167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어느 직업이건 ‘직업윤리’라는 게 있습니다. 그 자리에 머무를 때 그 직업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이 있지요. 또한 그 직업에 대해 세상이 요구하는 규범이 있습니다. 공적인 책무가 있는 공무원, 특히 고위 공무원이라면 그 요구받는 직업윤리는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겠고요.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세금이나 국가의 비용이 투입되지 않더라도 언론의 업무 자체가 사사로운 이해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 공공의 책무를 갖고 있는 직무이기 때문이지요.


출처: 오마이뉴스


YTN 호준석 기자 겸 앵커가 12월 18일 퇴사한 뒤 다음날 국민의힘에 입당했습니다.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입니다. 동료의 새 출발에 대한 YTN의 내부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뜨겁습니다. YTN 기자협회는 “지난 9일까지 호 앵커가 진행했던 뉴스들은 이제 YTN 동료들에게는 '흑역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며 “일생의 절반, 30년 가까이 다닌 YTN에서, 호 앵커가 동료들에게 남긴 건 무엇인가. 낯 뜨거운 동료들과 후배들에겐 뭐라 할 것인가”라고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실제 여야를 떠나 YTN을 나서자마자 정치권으로 직행한 이들이 많습니다. 홍상표, 윤두현, 안귀령, 이기정 등입니다. YTN 윤리강령이 재직 중 정당 활동 하지 않기, 퇴사 후 6개월 이내 정치 활동 하지 않기 등을 명문화한 배경이기도 할 것입니다. 호 전 기자는 특별한 사과는 없었지만 이런 윤리강령을 의식한 듯 “그런 성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몸을 낮췄습니다.


출처: 매일일보


공교롭게 한동훈 법무장관 역시 사흘 뒤인 12월 21일 법무장관 퇴임식을 가졌습니다. YTN보다 한술 더 떠 퇴임하기 전부터 국민의힘은 그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라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모락모락 피웠고, 한 장관 역시 이를 한


번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날 한 장관 퇴임 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했습니다. 국민의힘과 사전에 충분히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습니다.


비대위원장은 사실상 정당의 대표 역할입니다. 첨예한 정파적 이해관계를 구현하기 위해 정쟁과 대결의 최전선에 서야 할 존재입니다. 각 부처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국무위원이 가져야 할 업무의 책임과 역할의 결이 조금 많이 다른 지위입니다.


하지만 한 장관이 퇴임 이틀 전 참석한 국회 법사위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묻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그냥 의원님 혼자 궁금해 하시면 될 것 같다”고 이죽대며 대답한 것을 보면 민영기업의 일개 기자보다 더 희박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국무위원은 모두 정무직 정치인”이라면서 야당과 싸움을 부추길 때 알아볼 일이긴 했습니다. 정부조직법에서 국무위원 등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분류한 이유는 여야 당파적 입장에 서서 활동하라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규정이 아니라 신분 자체가 직업 공무원과 달리 ‘선거에 의하여 취임하거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특수 경력직’이기 때문입니다. 국무위원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게 비뚤어져 있다 보니 한 전 장관도 일찌감치 자신이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긴 합니다. 노골적으로 “이게 민주당이다, 멍청아”라는 표현을 버젓이 자신의 SNS에 올리는가 하면, 사실상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놓고 저울질하는 상황에서 대구, 대전, 울산 등을 방문해 대중집회, 정치인 팬덤 집회를 연상케 하는 정치인 행보를 벌이는 등 정치적 중립 의무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장관으로서 과연 공정하게 관련 직무를 수행했는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 미뤄 짐작될 따름입니다. 그동안 야당 정치인에 집중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국회에서 정치적 설전 등을 보고 법무장관이 정치 중립을 잘 지켰다고 생각할 상식있는 시민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호준석 기자나 한동훈 장관도 당연히 직업 선택의 자유 차원에서 정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 모두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이 얼마 전까지 해왔던 업무 내용의 적정성, 정치 중립성, 공정성 등이 의심받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책임져야 할 상황 및 내용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물론 큰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최소한의 윤리의식, 혹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정도는 보여주길 바랄 뿐인데 그조차 사치스러운 기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