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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봄 영화는 끝났지만..(황문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2-26 14:45
조회
170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1. 최근 얼마 전까지 같이 근무하던 직원이 사무관으로 승진했다는 연락을 전해왔다. 지난해 직장 상사로서 그 직원의 업무 능력과 몰입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승진에 누락되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터라 더없이 기쁜 소식으로 전해졌다.
 지방공무원 사회에서는 한때 ‘진포사’라는 말이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진포사는 ‘무관 급을 기한 주사’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사무관을 넘어 서기관까지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인지 이 말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한다고 한다. 경찰공무원 사회에도 ‘총포정’이라는 은어가 있다. 총포정은 ‘경을 기한 경’을  말한다. 총경은 ‘경찰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경찰 내에서는 영예로운 계급이다. 2022년 12월말 기준 13만1,004명이 넘는 경찰조직에서 총경은 0.5%에 약간 못미치는 638명에 불과할 정도로 귀하다. 경찰에서 총경 위로는 118명에 불과하고, 총경 아래로는 130,248명에 이른다. 일반공무원과 비교할 때 대개 한 부서의 과장을 맡는 서기관급에 해당하지만, 경찰 내에서는 한 지역(통상 시‧군‧구 단위)의 치안을 책임지는 기관장(경찰서장)이 될 수 있다. 특히 서울권을 제외한 시도경찰청의 총경은 그간의 관행상 바로 위 계급인 경무관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총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권을 제외한 시도경찰청에서 사실상 승진할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정년까지 보장되어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 조직에서 승진을 포기하거나 관심없는 구성원을 적절하게 통제할 장치는 별로 없다. 그러한 구성원이 특히 총경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경우라면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조직(궁극적으로 국민)에 대한 로열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2. 헌법에서는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2002헌바8)는 “공무원이 집권세력의 논공행상의 제물이 되는 엽관제도를 지양하고 정권교체에 따른 국가작용의 중단과 혼란을 예방함과 동시에 동일한 정권하에서도 정당한 이유없이 해임되지 아니하도록 신분을 보장하여 일관성 있는 공무수행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안정적이고 능률적인 정책집행을 보장하려는 민주적이고 법치국가적인 공직구조에 관한 제도 즉 직업공무원제도를 규정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한편으론 소극적인 의미에서 공무원의 ‘중립적인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공무원을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행정에 대한 정치의 개입을 차단하여 행정의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1960년 3.15 부정선거에서처럼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치권력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공무원을 부당하게 동원하거나 이용해온 역사적 경험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적극적인 의미로 공무원이 애초에 정치적 간섭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정치적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공무원에게 전문직업인으로 처신해 달라는 의미다.


출처: 여성신문


 그러나 정치적 중립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집권 정부는 새로운 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공무원들에게 중립적 태도보다는 열정적인 몰입을 요구할 것이다. 게다가 공무원은 (정권 내지 선출된 정무직) 상관에 대한 정치적 충성의무가 있다. 국가공무원법(제57조)은 공무원에게 상명하복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은 현실적으로 (집권 정부의 정책실현을 위하여) 정치적 충성을 다해야 할 의무와 그와 상충되는 전문직업적 접근을 강조하는 중립의무 사이의 딜레마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정치적 중립성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실제로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성에 관하여 규범적으로는 전문직업적 접근 의무를 진정한 중립의무로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적 충성의무를 상대적으로 우선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지자체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3.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12‧12 군사반란의 결과는 국민에 대한 로열티로 반란군에 맞선 군인들에게 (명예회복이 있었다고는 하나) 비참한 말로를 안겨주었지만, 정치적 충성의무로 가득한 반란군에게는 (그에 대한 사법적 심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광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자 했지만, 지난 정부에서 1979년 12월 12일 반란군에 우유부단하게 대응하던 장면과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 것은 필자뿐일까? 서울의봄 영화는 끝났지만, 어쩌면 역사는 또 되풀이될 수 있겠다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1979년 12월 12일 중앙청> 출처: 국가기록원